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이 파도의 물결을 만들어 내고, 내리쬐는 볕의 기운을 친구삼아 한라산을 오르면 수려한 경치가 몸과 마음의 평안을 선물하는 일상 속 충전지 같은 그곳 제주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간 젊은 목공예가가 있다. 제주 돌로 만들어진 창고의 담을 따라 넝쿨 식물이 자라고 그렇게 식물과 함께 숨 쉬며 생기를 채워가는 곳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바다 내음, 산 내음과 함께 나무 향이 한가득이다.
무대 위에서 새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그는 비보이(B-boy)였다. 비보이 외에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나무에 빠진 건 군 복무 시절이다. 목공병으로 차출되어 처음 접한 나무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그렇게 전통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목공예품을 만드는 공예가의 길을 걷게 했다. 처음 만지는 나무가 생소할 법도 한데 힘든 것 하나 모르고 군 생활을 했다. 내무반 액자부터 시작해 나무 상자, 선반, GP와 GDP 같은 최전방과 비무장지대 내 초소를 수리하고, 짓기도 하면서 작업에 흠뻑 빠졌다. 훈련 때문에 작업을 못 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군대에서 만난 나무는 그에게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다. 나무로 무엇인가 만드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꼈고 제대 후 본격적으로 나무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2004년 목공 입문 동호회인 ‘나무와 사람들’에서 기술과 이론을 배웠다.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니 하고픈 작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손으로 스케치하고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무로 자신이 생각한 것을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그를 더 큰 세계로 이끄는 촉매제가 되었다. 나무로 하고 싶은 게 많아진 그는 서울로 상경했다.
기술을 배우고 싶어 들어간 공방에서 톱, 끌, 대패 같은 수공구의 사용법, 나무의 재료적 특성 등을 배우며 한 단계씩 더 익혀갔다. 공방에서 본격적으로 목공예를 하며 그는 행복했다. 학창시절 비보잉을 하며 공연하고 베틀을 하러 다니던 그는 온데간데없고 그의 손엔 공구가 들려 있고 주변엔 나무가 가득했다. 목공에 푹 빠진 그만 보였다. 공방에서 디자인까지 하면서 스승에게 피드백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게 3년을 하니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스스로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디자인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나무 외 다양한 소재를 다루게 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구현 가능한 디자인도 많아졌고 제가 원했던 디자인 그 이상을 배울 수 있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동기들보다 나무를 오래 만져 온 탓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을 받을 때가 많았다. 당시 지도교수는 그에게 나무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처음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재료에 대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금속, 도자기, 가죽 등 다양한 재료 사용법과 원리를 이해했다. “다른 소재들이 가진 장점, 즉 나무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소재로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소재를 만지기 시작하면서 디자인의 범주는 넓어졌다. 알루미늄과 나무가 결합한 ‘덥석’ 시리즈, 도자기와 나무가 결합한 ‘청화 소반’ 시리즈, 가죽과 나무가 결합한 ‘반’ 시리즈 등이 그 결과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생각의 유연함”이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하는 그는 “아직도 어느 특정 소재나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종종 다른 공예 분야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본 기억이 있어 이유를 물었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작업하다 보면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의자, 테이블 등의 가구를 보면 소박하고 은은함 속에 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하지만 평범하지 않고, 구조미 속에 실용성도 있다. 나무는 숨을 쉬고 있는 듯 따뜻하다. 문득, 나무를 만지는 그가 어떤 과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알고 싶었다. “구조를 이루는 부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씁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오차 범위를 줄여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가 됩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비례나 형태가 주는 아름다움과 충분한 구조적 기능, 실생활에서 보는 즐거움이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며 앞으로도 잘 디자인되고, 잘 만들어진 작품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작업에 임할 것이라 했다.
시대를 이어오며 나무의 가치를 생활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목가구, 나무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말하길 “소재가 주는 ‘따뜻하다’라는 느낌을 작업자를 포함해 사용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자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나무의 ‘결’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무 한 그루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소재가 나무이지 않을까요?”
양웅걸 작가는 일상 속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며 원하는 가구가 있으면 일단 스케치를 해본 후 주변 사물이 가진 구조나 선을 보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우리 문화재 중 '소반'과 '사방탁자'를 좋아한다는 그는 “우리네 소반이 가진 아름다움 중 상판 변죽의 은은한 곡선 느낌이 좋아 저도 원반에 청화 백자를 덧대 현대적으로 풀어낸 소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방탁자는 간결함과 비례미의 극치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감히 시도해보지 못하고 있답니다. 디자인의 완성도를 더 높인 다음 제 나름대로 해석한 사방탁자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는 조금 더 쉬면서 여유를 가지고 싶어 올해 초 작업실을 제주도로 옮긴 후 아직 한 번도 전시회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와 수공구의 재미를 느끼며 '칼'맛 좋은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머지않아 전시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제가 만든 가구로 인해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래 조금 늦어도 괜찮다. 그는 나무와 함께 더욱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올 것이니 말이다.
원고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사진자료 제공 | 양웅걸 작가
목공예가 양웅걸 작가는 나무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소재와 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그중 청화 백자를 덧대 현대적으로 풀어낸 ○○소반은 도자기와 나무가 결합한 것이다.
마감날짜 2018년 11월 14일 ┃ 발표날짜 2018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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