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63호


가까이 두고 마음에 새긴 梅花
전시기간 : 2016.03.18~2016.05.15
전시장소 : 뮤진사이버전시실
전시에 앞서 <e특별전>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해석한 전시폼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겨울의 끝에 봄이 맞물릴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꽃 중에는 매화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을 알리려 꽃을 피운다는 매화는 선비정신을 표현할 때 자주 쓰입니다. 많은 유물에서 매화를 만날 수 있지만, 선비의 마음에 그 의미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을 법한 작품을 이번 E 특별전을 통해 소개하니 함께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1. 붉고 흰 매화가 방을 메우다 텍스트

붉은 매화와 흰 매화 紅白梅花圖

그림으로, 글로 매화를 예찬해 온 많은 선비들 중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시, 글씨, 그림 모두에 능했던 그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글씨는 추사체(秋史體)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과 매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가 75세에 자신의 삶을 정리해 펴낸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을 보면 그의 각별한 매화사랑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그린 매화 병풍을 방 안에 둘러치고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벼루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이라는 먹을 사용했으며, 매화시백영(梅花詩百詠)을 지어 큰 소리로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달여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거처를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고 이름 짓고 자신의 호를 매수(梅叟)라고 하였다는 내용을 서술했습니다. 또한 그는 몸이 허약해 젊은 나이에 사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78세까지 장수를 한 까닭이 매화를 즐겨 그렸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이렇듯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매화를 그린 병풍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아마도 방 안에 둘러쳐진 이 병풍으로 인해 방 전체가 매화로 가득한 듯 했을 것입니다.
조희룡은 당시 선비들이 추구하던 매화도의 형식을 벗어났기에 추사 김정희(金正喜)로부터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파묵법(破墨法)으로 강렬한 굴곡을 표현하고 꽃을 흐드러지게 그려 넣어, 보는 사람의 감각에 자극을 주는 화면을 구사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매화도를 그릴 때 그가 진심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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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벼루 함에 선비정신을 더하다 텍스트

붉고 흰 매화 무늬 벼루 紅白梅文庫硯箱

선비가 가장 가까이 하는 물품 중 으뜸이 바로 문방사우(文房四友)입니다. 붓(筆) ·먹(墨) ·종이(紙) ·벼루(硯)의 네 가지 도구는 선비에게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벼루 함은 이 문방사우를 담을 수 있는 상자로 필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만들어지지만 지금 소개하는 이 벼루 함은 2단으로 설계되어 문방사우를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벼루 함은 일본 공예가 모리야 쇼테이(守屋松亭, 1890-1972)의 작품으로, 외면의 장식을 보면 같은 매화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매화표현과의 차이가 확연히 보입니다. 매화 자체의 형태도 그렇지만 기법 면에서도 다릅니다. 일본의 장식기법 중 옻칠한 표면을 금분이나 은분으로 장식하는 것을 마키에(蒔繪)라 하는데, 이 작품은 문양 부분이 표면에서 조금 더 높게 올라와 도드라지도록 한 다카마키에(高蒔繪)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매화라고 하면 헤이안(平安) 시대의 시인이자 학자로서, 학문의 신으로 숭배되는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를 연상하는데, 매화를 각별히 여기는 그가 유배지에서 사망한 날 교토에서 규슈까지 매화가지가 날아와 밤사이 6000그루나 꽃을 피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렇듯 매화는 일본에서도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며, 벼루함의 장식으로 쓰이는 만큼 학문에 힘쓰는 사람들에게 가까이에서 마음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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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묵향과매화향 텍스트

달밤에 핀 매화 墨梅圖

익숙한 느낌의 이 그림은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이 그린 ‘달밤에 핀 매화 墨梅圖’로 오만원권 뒷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매화그림으로 삼절(三絶) 중 한사람으로 불릴 만큼 인정받는 선비화가였던 어몽룡은 조선 문인들의 매화에 대한 이상과 그를 반영한 형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비들의 그림에서 강조되는 혹은 요구되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는 글씨에서 향이 나고 글에서 기운이 흐른다는 해석이 그림에서도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로, 화려함과 재주를 드러내기를 추구하지 않고 절제와 고고함이 화면에서 느껴지는 그림을 높게 평가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이 말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내용을 기준으로 위의 조희룡 작품이 혹평을 받았다면 같은 기준에서 어몽룡의 이 그림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붓의 습기를 낮추어 붓 자국에 흰 공간이 보이는 비백법(飛白法)을 써서 부러진 가지와 늙은 둥치를 표현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도 가늘게 그러나 꼿꼿하게 솟아오른 작은 곁가지로 시선을 이끌어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달을 드러내는 화면의 구성은 공간감을 충분히 느끼게 하면서 여운이 남습니다. 동시에 매화꽃은 짙고 생동감 있게 표현해서 정중동(靜中動)의 묘미를 살렸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마치 매화를 사랑한 인물로 손꼽히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의 시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를 그림으로 옮긴 듯하니, 함께 감상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가지 위로 둥근 달이 떠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 불어와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뜰 안에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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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중함과 강인함이 표현된 항아리 텍스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 白磁鐵畫梅竹文壺

사군자 중 대나무와 매화는 추위와 혹독함을 견디는 식물로 선비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백자 항아리에는 표면의 한 쪽에는 대나무 나머지에는 매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매죽문은 매화나무에 매화와 대나무 잎을 함께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구분하여 그려져 있습니다. 대나무는 곧게 뻗은 줄기에 강하게 뻗은 잎을 몰골법(沒骨法)으로 표현해 항아리 자체의 장중함과 잘 어울립니다. 항아리의 어깨부분은 큰 곡선을 이루며 아래로 좁아져 가는데 대나무의 줄기와 잎이 형태에 맞추어 그려져 양감이 느껴집니다. 반대편의 매화는 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입니다. 항아리의 아래쪽에 강세를 두어 짙게 표현하고 얇은 가지들이 사선으로 뻗으며 항아리의 어깨 쪽으로 여백을 살립니다. 꽃은 작은 붓을 사용해 구륵법(鉤勒法)으로 그려 넣었는데 아래의 굵은 등걸과 대비되는 경쾌함이 느껴집니다. 잔가지가 사선으로 표현되었다는 점과 달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서 소개한 어몽룡의 그림과 유사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의 솜씨 뿐 아니라 왕실의 자기를 만드는 담당관청인 사옹원(司饔院) 소속 관리가 매년 궁중화원을 인솔해 왕실용 도자기의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궁중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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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매화의 곁에서 살다 텍스트

겨울산속의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 梅花草屋圖

선비들은 속세에서 학문을 익히고 벼슬길에 나아가 배움을 사회에서 실현하기를 꿈꾸면서도 늘 산에 머물고 자연과 벗하기를 바랍니다. 요절한 천재화가로 불리는 전기(全琦·1825-1854)가 그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는 이러한 바람을 잘 표현한 그림입니다. 산중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문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고산에 집을 짓고 주변에 매화를 심어 20년간 은거했던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조선의 문인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자신처럼 여겨 그림으로 가까이하곤 했습니다. 조희룡은 전기가 본인보다 36세나 어렸음에도 '전기를 알고부터는/ 막대 끌고 산 구경 다시 가지 않는다/ 전기의 열 손가락 끝에서 산봉우리가 무더기로 나와/ 구름, 안개를 한없이 피워 주니'라고 할 만큼 그림이 품은 의도를 잘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선비들의 바람만 담은 것이 아니라, 벗에 대한 깊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쓰인 글귀에는 매화를 좋아하여 ‘역매’라는 호를 썼던 벗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이 초옥에서 피리를 분다(亦梅仁兄草屋笛中)는 내용이 쓰여 있어 화면 한 편에 보이는 붉은 옷을 입고 거문고를 맨 인물이 전기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추위에도 창을 활짝 열고 벗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피리를 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 관해 현대 시인 정지원의 감상은 이해의 깊이를 더합니다.

큰따옴표  소중한 벗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활짝 열려 눈이 펑펑 내리는 산 어귀까지 추운 줄도 모르고 꽃불을 켜들고 기다리던 한 사람. 미나리꽝처럼 싱그런 초록빛 담채와 산뜻한 호분으로 그려낸 매화 향기 가득한 꿈길을 걷고 싶다. 너울너울 눈 속에 피어난 매화가 친구의 피리 소리를 따라 수줍게 웃고 다리를 건너는 내 가슴에도 꽃물결이 일렁여 온몸이 붉어진다.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마음보다 더디다. 내 기쁨과 슬픔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람. 내 꿈을 자신의 꿈처럼 귀하게 여겨주는, 함께 꿈꾸는 사람. 그런 네가 있어서 내 안의 매화들도 폭죽처럼 일제히 너를 향해 터져버린다.  큰따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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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E특별전의 작품들에서는 매화를 사랑한 선비의 마음과 그것이 표현된 그림과 공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사랑받았지만 그 향기와 형태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남아 일상에서 늘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봄에 희고 붉은 회화를 만난다면 더욱 반갑게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글: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