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은 속세에서 학문을 익히고 벼슬길에 나아가 배움을 사회에서 실현하기를 꿈꾸면서도 늘 산에 머물고 자연과 벗하기를 바랍니다. 요절한 천재화가로 불리는 전기(全琦·1825-1854)가 그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는 이러한 바람을 잘 표현한 그림입니다. 산중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문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고산에 집을 짓고 주변에 매화를 심어 20년간 은거했던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조선의 문인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자신처럼 여겨 그림으로 가까이하곤 했습니다. 조희룡은 전기가 본인보다 36세나 어렸음에도 '전기를 알고부터는/ 막대 끌고 산 구경 다시 가지 않는다/ 전기의 열 손가락 끝에서 산봉우리가 무더기로 나와/ 구름, 안개를 한없이 피워 주니'라고 할 만큼 그림이 품은 의도를 잘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선비들의 바람만 담은 것이 아니라, 벗에 대한 깊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쓰인 글귀에는 매화를 좋아하여 ‘역매’라는 호를 썼던 벗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이 초옥에서 피리를 분다(亦梅仁兄草屋笛中)는 내용이 쓰여 있어 화면 한 편에 보이는 붉은 옷을 입고 거문고를 맨 인물이 전기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추위에도 창을 활짝 열고 벗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피리를 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 관해 현대 시인 정지원의 감상은 이해의 깊이를 더합니다.
소중한 벗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활짝 열려 눈이 펑펑 내리는 산 어귀까지 추운 줄도 모르고 꽃불을 켜들고 기다리던 한 사람. 미나리꽝처럼 싱그런 초록빛 담채와 산뜻한 호분으로 그려낸 매화 향기 가득한 꿈길을 걷고 싶다. 너울너울 눈 속에 피어난 매화가 친구의 피리 소리를 따라 수줍게 웃고 다리를 건너는 내 가슴에도 꽃물결이 일렁여 온몸이 붉어진다.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마음보다 더디다. 내 기쁨과 슬픔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람. 내 꿈을 자신의 꿈처럼 귀하게 여겨주는, 함께 꿈꾸는 사람. 그런 네가 있어서 내 안의 매화들도 폭죽처럼 일제히 너를 향해 터져버린다.
이번호 E특별전의 작품들에서는 매화를 사랑한 선비의 마음과 그것이 표현된 그림과 공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사랑받았지만 그 향기와 형태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남아 일상에서 늘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봄에 희고 붉은 회화를 만난다면 더욱 반갑게 여겨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