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63호


한지의상으로 세계를 만나는 전양배 교수

만남에 앞서
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숨 쉬고 생활 하는 일상에서 ‘온고지신’의 의미를 찾습니다. 이를 위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여러 분야의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그 분들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 문화의 역사와 전통이 여러분의 삶에 격조 있게 스며들 수 있도록 좋은 말씀 많이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래에는 한복자락을 나부끼며 도심을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고궁 등을 방문하면서 일종의 이벤트로 자신의 것이나 대여한 것을 입는데, 새삼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을 실감하곤 한다. 특히 요즘 화제의 여행지로 급부상한 전주의 한옥마을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확연한데 한복을 입지 않은 사람보다 입은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다. 한복, 한지, 한옥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이번호 뮤진을 위해 만나게 될 전양배 교수의 한지의상이 전주에서 시작된 연유를 짐작할 만 했다.

우리의 종이를 알기 때문에 가능했던 실험 텍스트

한지(韓紙)의 도시로 알려진 전주에서 자란 전양배 교수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소재의 실험이 가능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때 한지를 소재로 하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평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질기고 튼튼한 한지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었던 그였기에 공예적인 측면에서 옷을 만들어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입을 수 있는 한지의상을 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던 것이다. 한지는 닥나무껍질로 만든 순수한 한국 종이를 말하는데, 색이 희고 그 질김이 비단 못지않다는 내용이 옛 중국문헌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한 한지를 더욱 질겨지도록 물에 적셔 밀착시켜 두드려 만드는 기법이 줌치기법이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 잘라내도 풀리지 않고, 염색이 잘 되는 한지의 특성에 부드럽지만 쉽게 찢어지지 않는 장점이 합쳐져 실용 가능한 의상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살린 디자인을 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양배지’라는 한지가 만들어질 만큼 한지의 가능성을 실험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1.한지지갑 2.위금넥타이 텍스트
  • 한지지갑
  • 위금넥타이

기능성, 장식성 그리고 환상성 텍스트

전양배 교수는 의상디자이너로서의 활동만큼이나 ‘한지수의’라는 검색어와 함께 노출된다. 수의는 마지막 모습이기에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옷인데, 한지는 화장과 매장에 모두 적합하고 생분해성이 높아 환경 친화적일 뿐 아니라 염색이나 장식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능성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또한 연극 등 무대에 쓰이는 의상은 시대배경에 따라 다양한 장식이나 오브제, 색상이 가미되는데, 이것을 한지로 제작하면 착용감이 좋을 뿐 아니라 염색이 잘 되어 질감표현이 용이하고 용도에 적합하면서도 가볍고 튼튼해 호평을 받는다. 한지로는 그 외에도 원하는 형태로 만들고, 원하는 색으로 채색할 수 있는 패션 주얼리와 다양한 장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순백의 색상 안에서 요청에 맞는 디자인을 할 수 있어 결혼식 드레스를 제작하기도 한다. 전양배 교수는 이러한 기능성과 장식성 외에도 한지의 장점으로 환상성(fantastique)을 꼽는데, 한지는 몇 겹인지, 어떤 방식으로 문양을 잡는지 등에 따라 빛을 투과하는 정도가 다르고 한지 자체가 빛과 만났을 때 발생시키는 정서가 있어 연극무대와 국내외에서 패션쇼를 할 때 그 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1.꽃문,연 2.매창 3.한지수의당의 4.16세기형 한지저고리-목화 텍스트
  • 꽃문,연
  • 매창
  • 한지수의당의
  • 16세기형 한지저고리-목화

한지의상, 우리 한지를 세계에 알리다 텍스트

그는 수십 번의 패션쇼를 통해 일본, 중국, 인도, 체코, 영국, 독일, 스웨덴, 스페인, 터키, 캐나다, 미국, 브라질 등 10여 개국에 한지의상을 소개해왔다. 해외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한국의 복식을 선보인다는 취지 때문에 전통의상을 선보이도록 요청받기도 하지만 우리 종이와 그 가능성을 알리고 싶다는 자신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일본의 화지(和紙)를 많이 알고 있는데 『고려사』에 고구려 영양왕 21년에 담징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해주었다는 내용이 있는 만큼 사실 그 원류는 우리의 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지가 해외로의 홍보가 부족하고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그는 패션쇼를 시작하기 직전 한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먼저 선보이고, 무대배경을 제작할 때 빛과 한지의 환상성을 활용해 그 장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 그는 한지로 제작한 의상에 한복의 실루엣이 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며, 우리의 것을 홍보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도 한다. 그가 한복의 형태로 의상을 제작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차별화를 이루고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도록 하면서 우리 종이의 우수성을 알리고, 장점을 활용하여 파티문화에도 적합한 의상제작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그의 활동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의 역사, 국가적 정서를 포함하고 있어 마음 깊이 응원하게 되었다.

브라질패션쇼 텍스트
  • 브라질패션쇼 이미지1
  • 브라질패션쇼 이미지2
  • 브라질패션쇼 이미지3
  • 브라질패션쇼 이미지4

전양배 교수의 문화재 텍스트

전주 한옥마을 세계화 포럼의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한옥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문화재로 전주향교(全州鄕校, 사적 제379호)의 명륜당(明倫堂)을 꼽았다.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慶基殿) 근처였으나 위치는 두 차례 옮겨졌으며 중수와 보수를 거쳐 현재의 위치와 모습이 되었고 갑오개혁 이후 교육기능은 사라졌다. 그러나 명륜당은 현재까지도 일요학교, 방학특강을 개설하여 어린이들에게 사자소학과 서예 학습, 예절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명륜당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은 그가 자연미를 살린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낸 것이 한옥이라 말하는 점과 맥이 닿아 있다. 기둥으로 쓰이는 나무의 단면 형태에 맞추어 건물의 주춧돌을 받치고 구불구불한 나무의 모양새를 그대로 사용하는 꾸밈없는 우리 건축과 정원의 모습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나부낌을 읽는다는 이야기는 그가 한지의상을 만들 때 담은 마음을 느끼게 하였다.

전주향교 명륜당 텍스트
전주향교 명륜당 이미지

전양배 교수는 “내 작품의 초석은 한지요, 기둥은 한국의 정서이다. 거기에 약간의 기교를 통한 장식으로 작품이 완성된다.”고 했다. 그는 한지는 만능이 아니며, 의상을 위한 최고의 소재도 아니지만 한지의 여러 장점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향후로도 경쟁력을 높여갈 수 있다고 했다. 동료와 제자의 결과물까지 소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한국적 정서가 담긴 한지의상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더욱 커졌다.

글: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MUZINE 편집실 / 사진촬영 제공 : 전양배 교수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