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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청명하고 높은 푸른색 하늘 위에 춤을 추듯 퍼진 선명한 흰빛의 뭉게구름을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이 계절에는 주말이면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로 여기저기 붐빈다. 박물관을 찾은 날도 그랬다. 한강 변에는 걷기대회를 하는지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움직이고, 한강의 어느 다리 위에서는 수많은 인파가 일렬로 다리를 건너고 있다. 여기저기 축제가 끊이지 않은 가을.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에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가을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뮤진도 가을을 즐기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박물관 숲에서 가을을 만나다>는 짙어지는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석조물정원과 어린이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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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실내에 전시된 유물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박물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외석조물정원과 용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의 다양한 나무와 꽃, 석조물이 일상의 산책을 문화 향기로 채운다. <박물관 숲에서 가을을 만나다>의 출발지인 보신각종 앞에 엄마와 함께 손잡고 온 아이, 중년의 부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이들이 프로그램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두 명의 숲 해설사가 한 시간 반 동안 관람객과 동행하며 진행된다. 박물관은 60세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숲 해설사 신청을 받아 소정의 절차를 통해 선별된 분들을 일정 기간(3개월)동안 숲 해설 교육을 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관람객과 만나게 하였다. 숲 해설가들은 박물관의 ‘숲’이라는 공간을 폭넓고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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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 프로그램 첫날인 10월 13일에는 이태환 해설가가 프로그램의 시작 부분을 맡았다. 박물관 및 석조정원이 자리한 부지의 역사부터 설명을 시작해 함께 걷다보니 어느새 소나무 숲과 참나무가 있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솔잎을 이용해 소나무의 다양한 이름과 국적을 알 수 있다는 점, 솔방울을 활용한 놀이, 참나무와 도토리, 구절초와 들국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십 분간의 휴식 시간 후 숲 탐방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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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후 이어진 프로그램 2부를 맡은 박희순 해설사는 나뭇잎이 제각각 가을 옷을 갈아입는 시기에 단풍나무에 대한 설명으로 모두를 집중케 했다.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직접 준비해 들려주는 배경 음악으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긴 시간 동안 설명 듣는 것이 지루할법한 아이들은 한쪽에서 풀잎, 잎사귀, 씨앗 등을 관찰하느라 정신없다.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식물에 대한 지식들도 얻게 되었다. ‘소나무가 일 년 내내 푸른 이유?’, ‘도토리가 제일 맛있는 참나무?’, ‘고로쇠의 역사’, ‘교육열을 높이는 나무’, ‘단풍나무 구별법’ 등 박물관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법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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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숲에서 가을을 만나다>의 종착지는 박물관 내 ‘미르폭포’이다. 미르는 ‘용’을 뜻하는 옛말로 박물관이 위치한 ‘용산’의 지명에서 따왔다. 우리 전통 조경을 엿볼 수 있도록 꾸민 미르폭포는 유난히 반짝였다. 미르폭포 감상 및 설명에 이어 다 함께 손잡고 타원을 만들어 진행하는 ‘자연사슬풀기’ 놀이로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여덟 살 된 딸과 함께 온 진승혜 씨는 “평상시에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서 누리집을 자주 살핀답니다. 토요일 오전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충분했습니다. 직접 관찰하고 만져볼 수 있어서 아이가 더 즐거워했습니다. ”라며 소감을 밝혔고 옆에 있던 딸 나연 양은 “설명을 듣고 체험하면서 신기한 것들이 많았어요.”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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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 어린이 가족과 함께 한 <나의 달콤한 정원>은 프로그램명만 들어도 향긋하고 달콤한, 과즙미를 팡팡 풍겼다. 달콤한 간식이 생각날 시간! 어떻게 알았는지 프로그램을 진행할 어린이박물관 내 ‘생각쑥쑥교실’에 여러 종류의 과자가 쌓여 있었다. 어린이박물관 야외정원에 심긴 꽃과 나무를 관찰한 후 이 과자들을 이용해 ‘나만의 작은 정원 만들기’ 체험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은 인솔 교사와 함께 야외공간 뜰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프로그램이 진행된 날 미세먼지 안내판은 ‘보통’을 가리켜 맑은 햇살이 따스하게 아이들을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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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안은 고요했지만, 가을을 맞은 자연이 화려한 색들을 뽐내어 떠들썩한 느낌이다.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잘 익은 감이 달려 있고, 툭 하고 떨어진 감 반쪽은 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바람에 날리고 이름 모를 꽃 위로 벌과 나비가 바삐 움직인다. 밖으로 나와 신이 난 아이들은 가을 하늘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새 소리에 귀 기울였다. 교사들이 미리 준비해 둔 그림에 나오는 색을 자연 속에서 찾아보고, 투명 셀로판지로 되어 있는 다람쥐 · 새 · 나비 등 동물 · 곤충 모양의 그림판을 꽃과 나무에 갖다 대며 자연에서 직접 색을 찾아 옷을 입혔다. 아이들은 두 가지 체험을 통해 가을의 색은 따뜻하고 풍성하다는 걸 확인했다. 나무에 달린 가을 열매도 놓칠 수 없는 노릇! 산사나무와 산수유 열매를 만져보고 궁금한 점은 질문하면서 야외공간에서의 관찰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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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5~6가지 종류의 과자와 투명 컵, 종이 등을 이용해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펜과 색연필을 이용해 종이에 꽃을 그리고 나무젓가락으로 줄기, 셀로판지로 잎사귀를 만들어 장식했다. 과자를 빻아서 흙처럼 만들고, 그 위에 형형색색의 과자를 쌓고, 지렁이와 버섯 송이를 닮은 젤리와 초콜릿 과자로 마무리를 한 후 과자로 만든 흙더미 사이로 미리 만들어 둔 꽃을 심었다. 아이들의 창의력이 담긴 꽃은 과자로 만든 흙더미 속에서 활짝 웃었다. 중간 중간 과자가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하니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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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딸과 함께 온 전혜정 씨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신라 금관 이야기를 듣고 박물관에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금관을 보러 왔다가 우연히 프로그램 신청이 가능해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뜻밖의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몰랐는데, 앞으로는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라며 참여 소감을 밝혔다.
사람들이 가을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박물관에서 만드는 가을의 한 페이지가 울긋불긋 다양한 색의 단풍 물결처럼 가을의 정취와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길 희망해본다.
원고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