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관 따라 가는 여행, 매력이 넘치는 가야, 김해를 가다
  • 박물관 따라 가는 여행

    500년 남짓한 역사로 한국 고대사의 한 자락을 장식했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가야가 최근 들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고대 교류의 중심이자 국제적인 색채가 가득했던 매력적인 가야문화는 인도에서 온 왕비와 김수로왕의 신화 속 러브스토리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가야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김해지역에 산재한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워낙 방대한 규모와 거리 문제로 망설여 질 때는 박물관에 먼저 들러 가야로의 역사여행을 위한 지식을 습득한 후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가을이 깊어져 가는 어느 날 매력적인 가야를 만나러 국립김해박물관으로 느린 발걸음을 옮겨 본다.

  • 가야를 담아내는 공간

    우리는 으레 박물관에 가면 멋진 큰 건물과 화려한 황금 유물 또는, 보석들로 넘쳐나는 광경을 기대한다. 파란 가을하늘아래 소나무 숲길을 지나 국립김해박물관에 당도하면 건축물의 위용에 새삼스레 놀라고 만다. 철기문화의 상징인 철광석과 숯을 연상케 하는 잿빛의 벽돌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은 시선을 압도하며 아름답게 녹이 슨 외장재는 빈티지함의 정점을 달린다. 처음 보는 이에게 조차 이 독특하고 웅장한 모습에 건축물의 사연에 대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작고한 건축가 장세양(1947~1996)의 유작으로도 잘 알려진 국립김해박물관의 건축은 평소에 대지나 여러 가지 제약조건들로부터 건축적 아이디어를 비중 있게 다루어 온 건축가의 철학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오래된 민낯들을 만나다

    전시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투박한 느낌의 석기와 토기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빗살무늬가 다소 희미한 빗살무늬토기부터 소나무를 고이 다듬어 만들어 낸 신석기시대의 배와 작은 낚시 바늘 그리고 조개껍질들이 소박했던 고대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선사시대의 색채가 옅어질 즈음 우리는 다호리의 목관과 늑도의 유물, 부산 복천동에서 출토된 보물 제1922호 금동관과 가야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유리구슬과 수정, 옥을 마주하게 된다. 장신구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美를 탐하는 인간의 본능을 미리 눈치 채고 있기라도 하듯 아름다운 빛을 한껏 뿜어내 보인다. 도자기처럼 매끈하지도 윤기가 흐르지도 않지만 어둡고 투박한 표면에서 은근한 빛을 뿜는 가야의 토기들이 전시실을 걷는 내내 가득하다. 특히 오리나 거북이의 모양을 한 토기와 그 장식들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 뒷동산에서 계절 만끽하기

    다소 어두운 조명의 박물관을 벗어나면 각종 나무와 풀 향기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준다. 가슴을 활짝 펴고 신선한 공기를 가득 마시며 초록이 가득한 박물관 뒷동산을 오르면 이름 모를 새부터 운 좋게는 청설모까지도 만날 수 있다.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오르면 김수로왕 신화로 유명한 구지봉을 건너 허왕후의 능까지 쉬엄쉬엄 역사의 현장을 산책할 수 있다. 나무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마주하면 소소한 행복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질 수도 있는 소중한 산책길이다. 봄여름에는 꽃과 푸름이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기다리고 있으니 꼭 들려보자.

  • 국제교류의 중심

    고대부터 가야는 국제교류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역만리 길을 건너 가야로 전해진 로만글라스와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의 여러 유물이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2018년을 기준으로 김해시의 외국인 거주자는 2만 6천명에 이른다. 그 옛날부터 외국인이 정착하기 좋은 위치였기 때문인지, 개방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가야인의 친화적 기질 탓 인지 고대에는 일본, 중국 등과 다양한 교류를 해왔고 마치 전통이 이어지 듯 21세기에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김해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해시 동상동 소재의 ‘종로길’을 방문하면 마치 동남아나 중국 여행을 온 듯 풍경이 펼쳐지는데 정겨운 재래시장 탐방과 함께 거리 전체에 독특한 향기가 가득하다. 걷다보면, 낯선 글씨의 간판이 즐비한 베트남, 중국, 몽고, 우즈베키스탄 등 이국적인 아시안 푸드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 빈티지한 활기가 넘치는 봉리단길로 가자

    김해시 봉황동은 유적이 산재해 있어서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마치 어렸을 적 할머니 댁 같은 다정한 느낌의 낮고 오래된 집들이 여기저기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유적지 문제로 도시가스나 소방도로를 설치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 복고풍 바람이 불면서 봉황동 일대에 ‘봉리단길’이 조성되어 각종 카페, 음식점, 세컨핸즈 소품샵, 베이커리들이 성업 중이다. ‘하라식당’, ‘낭만멸치’, ‘오토리스시’ 등의 식당과 ‘봉황1935’, ‘낙도맨션’, ‘폴양과자점’ 등의 카페 그리고 ‘봉황상회’ 같은 빈티지 숍들이 손에 꼽힐 만하다.

  • 박물관 따라 가는 여행

    기존의 주택을 리뉴얼해서 상업공간으로 활용한 가게들이 많아서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의 느낌과 복고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이 지역의 독특함이 더 해지면서 현재 주말이면 인근은 주차난을 겪을 정도로 활기를 띄고 있다.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곳도 있는데 193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집을 리뉴얼해서 카페로 꾸몄는데 사장님께서 어렸을 때 사셨던 집이라고 하신다.

  • 이번 주말 김해로 발걸음을 옮겨 볼까

    우선 김해는 공항과 철도가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다. 박물관에서 철도역, 공항까지는 경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아침에 일찍 도착할 수 있다면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1박 2일 코스로도 아주 적합하다. 편안한 숙소와 먹거리도 많아서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또한, 박물관에서 구지봉과 대성동 고분군, 김수로 왕릉, 봉황대, 봉리단길은 도보로 천천히 30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반경에 위치해 있다. 자연을 만끽하고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박물관 방문에서부터 다문화의 독특함까지 맛볼 수 있는 작은 여행을 당장 실행에 옮겨 보면 어떨까?

    오늘도 이 소소한 행복을 위해 길 위에서 살며시 발걸음을 옮긴다.

    원고 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