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천연색으로 정성스레 물들인 천 조각이 시선을 이끈다. 긴 시간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그 색은 수고로움을 잊게 할 만큼 신비하고 오묘하다. 천 조각을 이리 접고 저리 접으니 재미있는 무늬가 생겼다. 여기 바느질을 더해 하나하나 꿰매고 연결하니 멋스러운 공예품이 만들어졌다. 한 번쯤 만져보고 싶은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섬유공예가 조하나의 작품은 그렇게 첫인상을 남겼다. 섬유공예에 규방의 지혜를 담는 조하나의 이야기를 뮤진에서 함께 풀어본다.
인터뷰를 약속한 카페에 들어서면서 한눈에 그가 ‘섬유공예가 조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슴 한 쪽에 달린 그의 브로치 작품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섬유공예를 전공한 그는 학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장신구, 소품 등 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 “천과 실 그리고 바느질, 거기 종이까지 늘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던 환경이 오늘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라며 대화는 시작되었다.
한복을 좋아하는 할아버지 덕에 할머니 곁에는 늘 천과 실, 바늘이 있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손에 자랐고 그런 할머니 품에서 바느질은 그에게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지회사에 근무한 아버지 덕에 집에는 항상 다양한 종이가 넘쳐났고 천, 종이를 자르고 접으며 실로 꿰고 무엇인가 만드는 놀이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화가가 될 줄 알았다는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그가 가진 손재주는 운명처럼 공예가의 길로 걷게 했다. 종이가 익숙했던 그는 학부 시절 한지에 매료되어 ‘종이’와 ‘천’의 물성이 가진 장단점을 보완해가며 작업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견고하고 단단한 종이와 부드러우면서 구조적 형태가 가능한 천을 활용해 작업을 이어갔다.
천연염색과 전통 접기 방식을 접목하고 여기 손바느질을 더해 전통을 기반으로 한 섬유장신구를 이미지화했다. 천연염색까지 직접 한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염색 수업 시 색의 변화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단 한 번도 같은 색이 나오지 않을 만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색이 주는 감흥이 제게 또 다른 작업의 원천이 됩니다.”라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색을 구현해 내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장점도 덧붙였다.
천연염색을 하며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은 아쉬움보다 생각지도 못한 색의 발견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오고 그렇게 기대감이 생긴다. 이렇게 자연으로 물들인 천에 기법이 더해지는데 접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작업 과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접기. 종이배, 종이비행기, 종이 상자 등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종이접기라는 행위가 그의 작품에 중요한 표현 기법이 된다. “종이를 한 번 접으면 한 면이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두 번 접으면 한 면이 더 안 보이게 됩니다. 또한, 종이는 규칙적으로 접을 수도 있고 불규칙적으로 접을 수도 있습니다. 접기를 하다 보면 공간의 변용이 생기고 새로운 조형성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평면적인 것을 입체화시키기 좋은 방법이 접기입니다.”
접기의 방법론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나라 종이접기도 삼각 접기, 문 접기, 방석 접기 등 10가지 기본형 구조가 있으며 이는 전통 접기를 기초로 한다. 선조들의 삶에서도 접기 기법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대부분 생활과 밀접해 있다. 실첩, 쌈지, 부채, 주모니, 갈모 등의 생활용품과 승경도, 딱지치기, 동서남북, 고깔 등 놀이나 주술적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있다. 그는 작품에서 책 주름 접기, 병풍 접기, 복 주름 접기 등 전통의 방식을 활용하며 조상들의 미적 감각과 규방 공예의 지혜를 지키고 있다. (그는 각 접기 직물장신구로 디자인 및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염색한 천을 자르고 붙이고 다시 접어 손바느질한 그의 작품을 보면 ‘정말 한 땀 한 땀 손으로 다 처리했을까?’하는 의구심도 살짝 든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손바느질이 지닌 모던한 멋과 그 자체가 자아내는 리듬감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손바느질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작품에서 감칠질(땀 수를 넓게 혹은 촘촘하게 바느질하는 기법), 꼬집기(접혀진 선을 따라 홈질로 꼬집으며 고정시키는 기법), 박음질(두꺼운 천을 접을 때 모양을 튼튼하게 고정하기 위해 쓰는 기법), 징금수(자수 기법 중 직선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기법), 단추구멍수(재단된 부분의 올이 풀리지 않도록 고정하거나 장식할 때 쓰는 기법) 등 다양한 바느질 기법을 볼 수 있다.
전통에 매료된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규방 공예의 시작은 전통에서 찾을 수 있지만,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깊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것을 빼면 정체성이 없어지고 가치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근원을 찾아서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이 공예의 가치를 높이는 것 아닐까요? 옛것을 발전시켜 ‘자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의 소견을 차근차근 밝혔다. 전통을 공부하기 위해 따르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옛 유물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도서나 커리큘럼이 없어 아쉽답니다.”라며 자료 정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규방에서 태어난 공예품에 옛 여인의 정성과 그들의 삶이 반영된 탓일까. 한 번 한 번 꾹꾹 눌러 접고, 한 겹 한 겹 붙이고, 한 땀 한 땀 꿰맨 작품 속에 따스함이 전해진다. 최근 소소화(小笑話)라는 ‘작은 것에서 웃음을 주고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주제로 작품을 선보이는 중인데 그가 만든 목걸이, 브로치, 스카프, 가방 등을 통해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의 문턱에 따스한 온기를 더 해봐도 좋을 듯하다. 작업, 전시 준비, 강의 등의 활동으로 올 하반기에도 전통을 재해석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을 그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문화의 예술적 풍요로움이 올가을,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종로구 가회동 예올, 인사동 · 북촌 아원공방과 그의 블로그(blog.naver.com/hanajj0411)에서 확인 및 구매 가능하다.)
섬유공예가 조하나는 천연염색과 전통 ○○ 방식을 접목하고 여기 손바느질을
더해 섬유공예에 규방의 지혜를 담는 작업을 합니다.
마감날짜 2017년 9월 14일 ┃ 발표날짜 201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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