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박물관 밖 또다른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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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다는 말은 다양한 뜻과 감정을 내포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기쁨과 만족 그리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도 보다 더 큰 만족을 위해 어떻게 하면 그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열망의 일환으로 사람들은 신체와 의복에 꾸밈을 더하게 되었고 이러한 용도의 물건들로서 다양한 기능과 형태의 장신구가 탄생하고 발달하게 되었다. 멋진 옷에 어울려 한층 아름다움을 더하는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 각양각색의 장신구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대의 장신구들이 의외로 과거와 아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시대를 따라 변해간다지만 그 본질적인 가치는 영속적이어서 그러할까? 이번호 뮤진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의 옛 장신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이미지 장인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부부총 금 귀걸이

    찬란한 황금문화를 자랑하는 신라시대의 장신구 중에서 첫째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국보 90호인 이 금 귀걸이일 것이다. 0.5.mm도 되지 않는 금 알갱이로 표면 전체를 꾸민 이 귀걸이는 시각적인 화려함도 대단하지만 장식의 정교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둥근 중심고리는 두껍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데, 사실은 60g이 채 되지 않는 정도로 가볍다. 금판을 이어 만들어 속이 비어있는데, 그 경계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하니 감탄할 만한 일이다. 또한 중심고리를 가로지르는 노는고리에 연결한 샛장식과 드림의 움직임이 만드는 변화가 화려한 아름다움을 한껏 보탠다. 달랑이는 아랫부분의 화려한 달개들은 또 각각 금선을 두르며 장식을 가했고 하나하나 볼록하게 눌러 양감을 주었다. 게다가 맨 아래 드림에는 금 알갱이까지 부착해 최고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금이라는 묵직함, 형태의 균형감과 변화의 조화에 이러한 화려함까지 더했으니,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한 장인의 손길을 다시 한 번 느낄만한 장신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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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太環耳飾), 신라 6세기, 국보 90호

    -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太環耳飾), 신라 6세기, 국보 90호

    -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太環耳飾), 신라 6세기, 국보 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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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노서동 출토 금목걸이

    보물 456호인 이 목걸이는 대부분 5세기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시 노동동, 노서동의 큰 무덤 중 노서동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최상류층의 무덤으로 보이는 만큼 이 목걸이의 화려함과 세공기술 역시 매우 뛰어나다. 눈 목( 目)자처럼 생긴 가로세로 형태인 새김눈장식을 한 가는 금 고리를 위아래로 각각 6개씩 연결해 구슬모양을 만들고, 가는 금고리 사이사이에 나뭇잎모양 달개가 5개씩 달렸다. 부부총 금귀걸이와 이 달개의 모양이 유사하게 볼록한 모양으로 입체적인 느낌을 주어 목걸이 전체의 양감을 높인다. 이 구슬에 달개를 더한 조합이 총 77점, 그 중심에 금빛과 잘 어울리면서 포인트가 되는 곱은 옥 하나를 연결해 신라시대 가장 화려한 목걸이가 된다. 이 목걸이는 발견되었던 당시 파견되었던 일본인이 일부를 일본으로 반출을 했다가 1966년 한일협정을 통해 반환받아 2개의 유물번호를 지녔다는 사연까지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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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금목걸이(慶州 路西洞 金製頸飾), 신라, 보물 456호

    - 금목걸이(慶州 路西洞 金製頸飾), 신라, 보물 456호

    - 금목걸이(慶州 路西洞 金製頸飾), 신라, 보물 456호

    팝업이미지 금목걸이(慶州 路西洞 金製頸飾), 신라, 보물 4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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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예복을 빛나게 해주는 대삼작 노리개

    노리개는 저고리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여성용 장신구이다. 목걸이나 귀걸이와 같은 이전시대의 장신구가 쇠퇴하면서 가장 발달한 장신구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의 의상에 다양한 색과 형태로 아름다움을 한층 더하는 역할을 했다. 노리개는 패물의 크기나 종류 혹은 크기 등에 따라 대・중・소삼작으로 구분되는데 대삼작 노리개는 궁중에서 주로 중대한 의식 때 입던 예복에 많이 달았다. 대례복의 봉띠에 차는 대삼작 노리개는 대성하라는 의미의 산호가지를 보는 방향의 가장 왼편에, 부부금슬이 좋기를 바라는 한 쌍의 나비를 중앙에 그리고 가장 오른편에는 가정의 평화를 비는 밀화불수 (蜜花佛手)를 삼대가 조화로운 가정을 이루고자하는 염원이 담긴 낙지술에 각각 달아 띠돈이라는 것에 매어 연결했다. 패물들은 각각 사람의 손바닥만 한 크기이고 양쪽의 산호가지와 부처님 손바닥모양의 호박보석 사이에 백옥나비 위에 진주, 청광석, 산호 등의 구슬을 놓고 금속세공을 한 나비 한 쌍을 위 아래로 놓은 장식을 놓아 천연의 아름다움과 인공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미지 - 대삼작(大三作) 노리개

    - 대삼작(大三作) 노리개

    - 대삼작(大三作) 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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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궁중여인들의 필수 장신구, 봉황 장식 비녀

    비녀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으리라고 추측되지만 장신구로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것은 모든 부녀자의 머리모양을 쪽지도록 한 조선 후기 영조(英祖) 대부터로 보인다. 이때 기혼 여성의 머리모양을 국가가 지정할 정도였으니 머리를 꾸미는 장신구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을 쏟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쪽진 머리가 일반화되고 비녀를 주로 사용하게 되면서 비녀도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졌다. 또한 비녀는 신분에 따라 만드는 재료가 달라져 당시 사회적 계층을 나타내어 주는 역할도 하였다. 비녀를 머리에 찔러 넣는 반대편을 잠두라 하는데, 이 잠두의 모양에 따라 비녀의 이름이 달라졌다. 이 비녀는 잠두가 도금된 봉황장식이기 때문에 금동봉황잠( 金銅鳳凰簪)이라는 한자 이름을 가졌다. 봉황은 주로 궁중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미지로, 양반가에서조차 결혼 등 큰 예식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비녀의 봉황은 큰 벼슬과 긴 깃털이 잘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크고 화려한 모양이 아니라 간략하면서도 정교함이 드러나는 형태이다.

  • 이미지- 봉황 장식 비녀(金銅 鳳凰 簪), 고려

    - 봉황 장식 비녀(金銅 鳳凰 簪), 고려

    - 봉황 장식 비녀(金銅 鳳凰 簪),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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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한 마리 나비가 앉은 듯 은제 산호 머리꾸미개

    이 머리꾸미개의 다른 이름은 ‘떨잠’이다. 용수철 모양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떨리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왕비와 궁중의 여인들, 상류층의 여인들이 머리를 장식할 때 가운데와 양 옆에 꽂았던 장신구로, ‘떨철반자’라고도 부른다. 둥근 모양, 각진 모양, 나비모양의 옥판 뒤쪽에는 머리꽂이를 붙이고 앞은 옥, 산호, 진주, 비취, 칠보를 부착한 후 사이사이에 용수철기둥을 세운다. 용수철기둥은 5cm에서 7cm가량이며 그 끝에 나비나 꽃 등을 달아 움직이면 떨리도록 만들었다. 이 머리꾸미개는 은으로 만들어 도금한 것으로 옥판 위에 꽃과 잎 덩굴문양이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어 복잡해 보이면서도 유사한 장식이 여섯 번 반복되어 구성되어 있다. 용수철 기둥은 원 위에 같은 간격으로 6개의 끝이 뾰족하고 움푹한 반구형 장식 위에 부착되었는데 끝에는 벌, 새, 꽃 등이 달려있다. 이 떨잠의 한 가운데는 산호가 붉은 색으로 꽃모양의 중심이 되어 장식적인 효과를 더욱 높인다.

  • 이미지- 은제 산호 머리꾸미개(銀製 鍍金 琺瑯 簪), 조선

    - 은제 산호 머리꾸미개(銀製 鍍金 琺瑯 簪), 조선

    - 은제 산호 머리꾸미개(銀製 鍍金 琺瑯 簪), 조선

    팝업이미지 은제 산호 머리꾸미개(銀製 鍍金 琺瑯 簪),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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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말이 있다. 비단에 꽃을 더한다는 뜻인데, 이번호에 소개한 장신구들과도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옛 장신구들은 예쁜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아무나 쉽게 해내지 못할 뛰어난 세공기술을 보여주고, 겹겹이 담아낸 길상의 의미에 색을 활용한 디자인과 음직임까지 더한 소위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옛 장신구들은 대량으로 무엇이든 풍부하게 기계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지금의 장신구들과는 사뭇 다른 희소가치를 지닌 우리의 유산이면서 당시의 삶에, 현재 우리의 역사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시품들의 곁에는 또 다른 많은 아름다운 장신구들이 함께하니 꼭 함께 즐겨주기를 바란다.

    원고 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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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비와 궁중 또는 상류층의 여인들이 머리에
    꽂았던 장신구로,
    움직일 때마다 용수철 모양
    장식이 떨리는 모습에 착안해 지어진
    머리장식의
    명칭은 무엇일까요?

    마감날짜 2017년 1월 15일 ┃ 발표날짜 2017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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