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생명력을 가지고 과거로부터 계통을 이루며 전해 오는 다양한 양식들이고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지금을 반영 하면서 현재에서 그 의미를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활동들을 해 나가는 것이다. 뮤진의
<전통, 젊음과 어울리다>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현재와 맞물리며 다시 하나의 전통이 되어 가는 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소개해 나갈 예정이며, 이번 호에서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옛 우리 그림의 양식과 어우러지도록 한 작품으로 알려진 손동현 작가를 만나보았다.
작가 손동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에는 전통회화의 확장이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이렇듯 매번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전통과 현대가 회화로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자리 잡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분야에서 우리의 전통회화를 꾸준히 이어가는 작업방향은 동양화를 전공한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고민과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이며 작가 스스로 해결해 나갈 문제이므로 손동현 작가처럼 자신의 화법 혹은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확립해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설치전경 갤러리 Villain전
작가는 학창시절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전통과 현대의 극명한 경계 앞에서 현 상황들에 맞서 작업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그리고 동양화가에 대해 고민하며 돌파구를 마련해나갔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이미 정형화된 형식의 동양화가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고 동아시아 회화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받아들인 동양화이기에 ‘자기화’가 가능한 지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 Master Correspondence, 견본수묵채색 8곡 병풍
고민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의 여러 측면을 조사하고 진정으로 자기화하며 실험적인 태도로 작품 활동에 임한 작가는 2005~2007년에는 만화영화 ‘슈렉’ 속 주인공 슈렉과 당나귀를 그린 초상화인
<막강이인조술액동기도(莫强二人曹述厄童奇圖)>에서 작품제목을 지을 때 슈렉을 소리 나는 대로 음역한 ‘술액’이라고 하거나 십장생도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상징물들을 ‘닌자거북이’나 ‘밤비’ 등으로 대체해 현 세대의 감수성을 반영하고, 만화에 등장하는 오리나 호랑이 캐릭터를 그리고
<영모도>나
<송하맹호도>라는 작품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 막강이인조술액동기도, 지본수묵채색
2008년에는 마이클 잭슨이 공식적으로 ‘팝의 황제’로 명명 되기 전과 후를 공신( 功臣 )초상과 어진( 御眞 )으로 구분하여 전통화법의 형식에 맞추어 그렸다. 조선후기 화가인 이명기( 李命基 )가 그린
<오재순초상( 吳載純肖像 )>을 참고했다고 하는 이 연작은 형식에 엄격하면서도 그려지는 대상의 인생관이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조선시대 초상화기법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후의 영화 속 영웅입상, 악당과 그의 상징을 그린 연작에서도 형식이나 화면구성의 충실함을 유지하면서 색감, 두루마리형식이나 병풍을 활용하여 면을 분할하는 등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 Portrait of the King, 지본수묵채색
손동현 작가의 작품은 과거에서 현재까지도 초상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작품의 표현방식은 지금까지 거듭 변화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외관상 형식의 틀을 넘어 자유로운 가운데에서도 더욱 동양화의 작화태도에 가까운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말이 안 되거나 다루지 않는 것 혹은 못할 것 같은 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하고자 신선도( 神仙圖 )나 불교회화의 사천왕도( 四天王圖 ), 무협판타지의 한 장면 같은 수묵화들이 그려졌다. 소나무의 특성이나 동양적 시각에서의 상징을 의인화 한 연작과 동양화의 육법( 六法 )을 인물을 통해 시각화하는 요즘 작업들은 이전의 작품에 비하면 낯설지만 오히려 어떠한 구체적인 대상에서도 관념과 대상의 정신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전통회화의 근본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island_independence day, 지본수묵담채
우리의 전통회화 중 관직에 오른 사람의 자화상은 흔하지 않다. 게다가 형식을 조합하는 파격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가 꼽은 문화재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70세
<자화상>(조선 1782년, 보물 제590-1호)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몰락한 양반가의 아들로 60세까지 그림을 그리며 험한 삶을 살았던 그는 61세에야 관직에 오르는데, 그 세월을 느낄 수 있을 법한 안면부 묘사에 눈빛만은 형형하게 그리고 관리들이 쓰는 모자에 평상복을 입는 당시로서는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보이는 형식에 상징과 의도를 포함하고,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파격을 숨기지 않는 이 자화상에서 작가가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는 그의 작품이 말하고 있다.
- 자화상, 김세황, 조선 1782년 개인소장
젊은 현대미술분야의 화가가 동양화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든,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현대미술분야에서 우뚝 선 것이든 말이 다를 뿐 의미는 같다. 그는 동양화의 작화태도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성을 반영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극복이 아니라, 전통적인 의미나 형식에 현재의 정신을 어우러지게 하는 도전인 손동현 작가의 활동에서 진정한 의미의 계승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