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이홍근 선생(1900-1980)은 30년간 수집해온 우리의 유물을 사후 국가에 기증하도록 하였으며, 가족들이 그 유지를 받들어 198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총 5,215건, 10,202점의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국립중앙박물관 동원컬렉션은 수량에 있어서 뿐 아니라 서화, 도자, 불상, 금속공예, 석조물, 고고자료 및 기타분야 등 분야에 있어서도 방대하다.
- 이홍근 초상
상사회사를 경영하며 자수성가한 선생은 상거래를 하며 알게 된 일본인들의 문화재 감상태도에 영향을 받아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고자 밤낮으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상인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집하였다. 당시 선생은 한국전쟁 이후 인사동 골목 등으로 쏟아져 나오는 고미술품을 감정하지도 않고 구매하며 수집했는데, “위조품도 사야 진품을 구할 수 있다.”, “좋지 않은 유물을 가지고 온 상인에게도 돈을 주어야 그 돈으로 다음에 좋은 유물을 사서 가지고 올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 문화재 수집에 열과 성의를 다했다.
선생은 미술품을 사 모으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문화재 수집 철학을 세우고 관련 서적을 읽으며 전문지식을 쌓아갔다. 그는 “누구의 감정을 받지 않고 내 눈으로 보고 샀다. 그래야만 감식안이 생긴다.”라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스스로 감식안이 발달하기도 하였거니와 최순우, 진홍섭, 황순우와 같은 동향의 미술사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상의하면서 문화재를 보는 안목의 깊이는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선생은 세 미술사학자들에게도 본인의 컬렉션은 사유화하지 않고 모두를 위하여 기증할 것임을 밝혔는데, 그래서 더욱 살아생전 소장품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 동원 이홍근 선생 기증 문화재 조사 모습
그는 방대한 양의 수집품 관리를 위해 1967년 종로구 내자동에 미술관을 설립하였고, 1971년에는 수장고와 진열실을 갖춘 전문미술관을 지향하여 성북동에 새로이 설립된 동원미술관으로 수집품들을 이관하였다. 선생은 1층에 직접 기거하면서 외부인의 지하 수장고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수집품 관리에 각별함을 보였는데, 일례로 기름 값이 오르면 자신의 거주 공간 난방비는 줄이더라도 지하 수장고의 냉·난방, 제습시설은 가동할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또한 수집한 유물은 일일이 실측해 기록한 후, 딸과 며느리가 만든 비단주머니와 비단보에 싸고 오동나무상자에 넣어 막내아들이 찍은 사진과 함께 꼼꼼히 기록한 유물정보를 상자 겉면에 부착하는 등 체계적인 소장품 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 동원 미술관 전경
이렇듯 정성어린 관리 후 박물관에 기증된 우리 문화재들 중에는 국보 제175호 ‘백자 연꽃넝쿨무늬 대접’, 보물 제1067호인 ‘분청사기 연꽃넝쿨 무늬 병’, 전기의 ‘매화초옥도’, 표암 강세황의「송도기행첩」등 잘 알려진 주옥같은 명품들도 있지만 온전하지 않은 반쪽짜리 문화재들도 수두룩했다. 깨진 도자기 파편 한 조각조차도 온전한 문화재들만큼이나 선생한텐 소중한 우리의 보물로 여겨져 쉽사리 내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선생의 정성어린 수집과 보존으로 지켜온 보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의 ‘동원 이홍근실’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선생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국가 환원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전시실에서 귀한 문화재들을 만나는 행운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