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누정문화 땅과물의 경계에서
  • 이미지 누정문화

    누정
    문화

    산야에 피어난 꽃소식이 들려와 들썩이는 마음이 들자 어느새 경치 좋은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봄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흐르는 맑은 물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을 향하면 대부분 그 길목 어딘가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난다. 관람객이나 등산객을 위하여 길가에 의자나 전망대를 근래에 조성해 놓은 곳도 있지만, 바라보는 풍광에서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정자도 매우 많다. 이렇듯 자연에 둘러싸여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하는 정자는 누각(樓閣)과 아울러 누정(樓亭)이라 통칭하기도 하는데, 이번호 뮤진에서는 수도 많고 의미도 컸던 누정문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 남원시 소재 광한루

  • 이미지 1.누정을 지은 까닭

    1.
    누정을 지은
    까닭

    누정은 현재 가장 많이 남아있는 우리나라 옛 목조 건축물로, 1970년 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에만 2,122개의 누정이 있다고 하니 일부가 소실되었을 것을 감안 할 때 더 많은 수가 존재했을 것이다. 각종 기록에는 누, 각 외에도 다양한 이름으로 누정을 기록하였는데, 여러 자료를 살펴볼 때 이층의 구조로 평지보다 높게 지어 올린 경우 누각이라고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는 공공의 장소로써 관청에서 세우고 관리하며 행사를 치루는 용도로 쓰이는 곳을 누각으로 칭하며, 개인이 사적인 모임의 용도로 쓸 때 정자로 구분한다.

    - 세검정도 중 부분 |
    유숙(劉淑, 1827-1873

    - 세검정도 중 부분 | 유숙(劉淑, 1827-1873

  • 이미지 생각을 나누다

    누정은 단칸의 정사각형에서부터 직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십자형, 부채꼴까지 다양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주로 궁이나 관에서 지어 관리하는 경우 다양한 형태와 화려함을 겸비한다. 그리고 누정을 짓는 목적도 다양했는데 궁궐이나 관아에서는 공식적인 연회의 장소로, 사찰에서는 입구의 기능과 종교 활동의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또 각종 계의 모임, 교육의 장소, 수련장, 방어와 감시를 위해 건립되기도 하였다.

    특히 누정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경치 감상과 선비들의 교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누정은 주로 산과 강 그리고 바다에 지어졌고 많은 경우에 땅과 물의 경계지점에 지어졌다.

    - 풍악도첩 중'백천교도'부분 | 정선(鄭歚, 1676-1759)

  • 2.
    옛 선인들의
    누정 이용법

    사람들은 보통 녹음이 짙고 물이 맑은 곳에서 휴식을 하고 안정을 얻는다. 선비들도 그러한 장소에서 문인으로서 혹은 세상에 닥친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으로서의 활동과 삶의 이치를 생각하기를 즐겼다. 높은 지대에 있는 계곡의 물은 빠른 속도로 쉼 없이 흘러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는 선비가 추구하는 경지로 인식되었고, 길게 뻗은 강 줄기나 끝없는 바다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해지는 자신을 돌아보며 그 감상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개인이 건립하여 지인들과 자연을 감상하고 이에서 깨달은 바를 적은 시를 ‘누정시(樓亭詩)’라고 따로 분류할 정도였는데, 이러한 활동과 관련한 누정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고, 건축내력 및 일화가 남아있다. 또한 누정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강학(講 學) 과 친목모임인 계회(契會)의 장소로도 쓰였기에 누정문화에서 선비들의 활동은 큰 축을 형성했다.

  • 이미지 우리나라의 누정

    우리나라의 누정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炤 知 王, 재위 : 479~500) 이 488년 정월에 천천정(天 泉 亭)에 행차했다는 내용이며, 천천정은 궁 안에 조성된 연못이나 물가의 가운데나 곁에 지어진 누정으로 추정된다. 정사를 돌보는 왕과 관리의 휴식처이기도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직무에 임할 수 있는 장소,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자리였을 궁내의 연못과 정자는 경복궁과 창덕궁 등에서 지금도 그 멋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미지 3. 박물관에서 체험하는 누정 문화 강과 누정 이미지

    3.
    박물관에서 체험하는
    누정문화

    도심을 떠나 먼 거리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의 정자를 찾는다면 더 없이 좋겠으나, 여건이 힘들다면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보자. 한국의 토종 식물들로만 구성된 조경이 마련되어있고 연못과 정자가 있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 위치하여 멀리 남산 N타워까지 비추는 거울 못, 야외석조물정원 쪽으로 접어들면 도착하는 작은 폭포가 있는 미르 못, 폭포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모이는 나들 못, 그리고 박물관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면 만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한적한 후원 못 등 네 개의 연못이 있다.

  • 이중 미르 못과 거울 못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이 조성되어 있는데, 용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미르’로 이름 지은 미르 못은 폭포와 주변을 한국적 산수정원의 핵심인 심산계곡(深 山 溪 谷)으로 연출하여 우리 전통 조경을 표현하였고 폭포와 연못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거울 못의 입구방향에는 2009년에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청자정(靑 瓷 亭)이 있다. 지름 150m에 이르는 연못을 이 정자에 앉아 바라보면 물 위에 떠 있는 듯 착각을 하게 되는데 주변을 높은 건물이 에워싸지 않아 바람이 불어오고 연못에 비치는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고 전시 또한 관람할 수 있으니 이 봄에는 박물관의 연못과 정자가 주는 휴식을 꼭
    누려보기를 권한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