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박사교실
- 유물박사교실 코너에 대해
- <유물박사교실 코너에 대해> 62호 'E-특별전'에서 관람한 미술품들이 위치한 사랑방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봅니다.
62호
조선 시대는 이전과 달리 국가통치이념인 성리학 영향으로 남녀의 역할과 지위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 집안 내에서도 생활공간을 분리하였습니다. 여성의 공간이 안방이라면 남성이 거처하는 공간은 사랑방입니다. 사랑방은 당시 선비들에게 있어 머무는 공간, 즉 주거공간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먼저 각 집안의 학문에 대한 숭상을 상징하는 사랑방은 주인을 닮았으며, 그 집안을 이야기해주는 첫 번째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랑방은 선비가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던 곳 이외의 여러 가지 기능을 합니다. 시 · 서 · 화를 중심으로 예술 활동을 하며 많은 이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시를 읊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문인들과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예술적 소양을 쌓아갔습니다. 학문 수양이라는 이성과 예술 활동이라는 감성의 조화를 통해 이상적인 인간상을 실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사랑방에서 낮은 담장 사이로 자연을 감상하고 풍류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등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사랑방은 이와 같이 단순히 주거생활공간 이상의 의미로서 학문을 연마하고 문방으로 예술 활동을 하며, 벗과 교류를 나누는 남성의 또 다른 사회생활 공간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사랑방에 놓인 가구는 왜 모두 하나같이 소박할까요? 사랑방의 집기 또한 주인의 안목과 품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비들에게는 근검과 절제가 미덕이기도 했고 이 때문에 가구는 검소하면서도 깔끔함이 배어 나온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구 또한 당시 선비들의 윤리관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부귀를 직접 드러내는 행동을 속된 것으로 여겼으며 고고한 지조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구의 배치 또한 복잡하지 않았는데, 여기에도 그들의 윤리관이 반영되었습니다. 곧고 맑은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번잡하거나 복잡한 장식도 없고 배열도 단순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방은 그러한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 속에 절제의 미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공간이지요. 이렇듯 조선 시대 사랑방은 선비의 철학과 생활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되려는 지혜가 담긴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