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24년 경북 경주 노동리 금령총 발굴 시 신라 금관 출토 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은 유물이 있습니다. 금관 아래 있던 유물 2점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국보 91호인 기마인물형 토기입니다. 완벽한 조형미와 더불어 토기에 표현된 의복, 장신구 등으로 신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로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는 하나의 조형예술품이기 이전에 또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 이야기를 찾아보기 위해 이번 달 뮤진 확대경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 따 제작한 토기라고 하여 붙여진 ‘기마인물형토기’는 주인과 하인의 토기 두 개가 한 쌍을 이룹니다. 발굴 당시 두 개의 토기가 나란히 묻혀 있었습니다. 하인이 앞장서 가고 주인이 그 뒤를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주인으로 추정되는 토기가 하인 토기보다 사람과 말의 모양이 훨씬 크고 장식이 화려합니다. 이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먼저, 주인 형상의 토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인상은 높이 23.4cm, 길이 29.4cm 입니다. 주인은 관모를 쓰고 있으며 갑옷과 격자무늬의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얼굴을 살펴보면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올라가있으며 얼굴을 측면에서 보면 뒤통수가 길게 올라간 형태의 두상입니다. 코는 날카롭게 솟아 있고 눈매가 움푹 패여 서구적인 느낌을 줍니다. 코끝이 뾰족한 신발이 발걸이에 걸려 있는 부분의 묘사에서 세심함이 엿보이고, 왼쪽 허벅지에는 칼을 착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토기의 말 내부는 240cc 정도의 액체를 담을 수 있도록 비어져 잇습니다. X-ray 검사를 통해 비어 있는 속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이 토기의 또 다른 용도는 바로 물이나 술을 따르는 주전자입니다. 주전자와 비교하면 말꼬리는 손잡이, 말 가슴에 있는 대롱은 물을 따르는 물대 역할입니다. 주인 토기 말의 엉덩이 윗 부분에 안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솟은 장식이 붙어 있는 수구가 있습니다. 이는 내부를 통해 가슴에 있는 주구(注口)로 물이 흘러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인 형상은 높이 21.3cm, 길이 26.8cm로 주인 형상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하인 형상은 주인과 달리 매우 간략한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관모를 쓰지 않고 이마에는 띠 같은 것을 둘렀으며, 상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를 하고 등에는 짐을 메고, 오른손에는 자루가 달린 방울을 들었습니다. 말 안장에도 방울이 매달려 있는데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방울은 토기를 해석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는데, 주인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하기 위해 하인이 방울을 흔들며 앞서가는 의미로서 이와 같이 표현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인 토기의 말 입구 아래쪽에 물을 따르는 대롱이 있고 말 엉덩이 위에는 아래로 구멍이 뚫린 등잔이 있습니다. 비어 있는 말의 뱃속을 통해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갖춤 장식도 주인에 비해 간소하고 발걸이와 다리는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주인 형상처럼 화려하지 않고 다소 투박하지만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마인물형 토기가 발굴된 금령총은 다른 유물들의 화려함으로 봐서 신라 왕족의 무덤으로 추측됩니다. 기마인물형토기와 같이 사람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像形土器)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것이라기 보다는 제사와 같은 의례 시 죽은 이의 안식과 사후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염원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말을 토기 디자인에 응용한 까닭 역시 말이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잘 인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나 말 모양의 토우, 토용 등을 보아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영생을 기원’하는 신라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