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도 온도계는 영하의 기온을 벗어날 줄 몰랐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에 달하며 추위가 절정에 달했던 2017년 12월의 어느 날,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전수 교육 조교 박선경 씨를 만났다. 대를 이어 매듭의 아름다움을 잇고 있는 그녀는 마침 평촌의 한 아트홀에서 전시 중이었다. 오색찬란한 고운 빛깔의 매듭 장신구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그곳에서 가업(家業), 매듭 이야기, 고민 등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뮤진에서 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본다.
그녀는 평생을 매듭과 함께 살고 있다. 어릴 적 매듭은 놀이였고, 조부모와 추억이 깃든 보물 상자였다. 늘 익숙하게 마주하던 풍경이었고, 이젠 그 풍경 속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듯 하루를 보낸다. 1968년 초대 매듭장으로 지정된 고(故) 정연수 씨가 그녀의 외할아버지이고, 매듭장 명예 보유자였던 고(故) 최은순 씨가 외할머니이다. 조부모의 맏딸이었던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매듭장 정봉섭 씨이다. 대를 이어 전통문화를 지키는 이들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몇 대가 이어지는 건 드물다.
전시장 내 설치된 장비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들어진 작품을 보니 쉬이 그냥 되는 일이 아닌 듯싶다. 손으로 하나하나 엮고 힘을 줘 묶고, 작업 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허튼 생각을 하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매듭. 실을 염색하는 것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손수 진행한다. 생사(生絲)를 타래에 얹어 풀고, 일주일 정도 염색 작업을 해 색을 만들고, 물레와 얼레에 풀어 꼬는 등 뭐 하나 남의 손을 빌리는 일이 없다. “명주실 생사를 푸는 건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염색 역시 한 번도 같은 색이 나오지 않을 만큼 다양합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도,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과정도 없습니다.”라는 이야기에 ‘매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무색하게 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장신구로 늘어뜨리는 유소(流蘇)가, 가운데에는 노리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유소는 주로 그녀의 작품이고, 노리개는 어머니 정봉섭 씨의 것이다. 매듭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전통을 이어왔다. “할아버지가 활동하시던 1960~70년대에는 상여, 악기, 사찰 등에서 매듭을 많이 사용하여 주문도 많았습니다. 한때 집안의 장식품으로 매듭 붐이 일기도 했고, 1980년대에 한복 입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노리개를 많이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현대식 옷차림에 어울리는 장신구로 제작하다보니 목걸이와 같은 형태의 작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듯 매듭은 일상의 요구에 맞게 제작·조율되어 변천하여 왔다.
요즘 매듭의 수요는 줄어든 대신 퀄리티는 상당히 높아졌다. 과거보다 섬세함이 더 많이 요구되는 편이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나의 작품에도 여러 가지 기법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똑같은 것 하나 없다. 매듭은 확장성에 있어 맺을 수 있는 수가 무궁무진하지만,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매듭 종류는 30여 가지이다. 그중 주로 사용하는 것은 15가지 내외로 장신구 하나를 만들 경우 5~6가지에서 많으면 7~8가지 기법이 쓰인다. 매듭 명칭은 국화, 나비, 생쪽, 안경 등 생활 주변에서 이름을 만든 것이 많으며, 같은 기법이라 할지라도 지방에 따라 명칭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생강 쪽처럼 생긴 생쪽매듭과 매듭 중간에 가락지처럼 끼워 장식하는 가락지매듭을 많이 사용한다. 하나의 매듭을 완성하기까지 열 가지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끈목을 걸고, 돌리고, 모양을 만들고, 통과하고, 교차하고, 잡아당기고, 조이고 하는 등 과정마다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좌우대칭의 균형미가 있어야 하고 완성된 매듭은 앞뒤가 같고, 중심에서 시작해 중심에서 끝내야 하는 매듭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 과정이 매우 질서정연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작업을 하다 보면 무상무념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거든요. 이런 것이 무아지경인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실 생각이 많으면 손에 작업이 잡히질 않아요. 실이 먼저 안답니다.”
사실 그녀는 무용을 전공했지만 성장하는 내내 늘 실과 함께 했던 탓일까 자신도 매듭장으로서의 길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그렇게 19살에 전수생으로 등록, 30살에 전수 교육 조교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매듭을 해오는 동안 한 번의 슬럼프도 느끼지 못했다는 그녀. “작업하다 보면 어릴 적 조부모와 함께한 추억이 더 짙어집니다. 조부모님에서 어머니 그리고 저까지 몇 대를 이어 가업으로 해오면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울림 있는 몇 마디 말에 매듭이 곧 그녀의 인생인 듯했다.
매듭에 임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그녀에게 작품 활동보다 더 고민이 되는 일이 있다. 대를 이어 지켜온 이 매듭을 누군가 계속해서이어야 하는데, 매듭장의 생활이 녹록지 않다 보니 선뜻 손 내밀지 못한다. 어머니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딸 중 누군가가 이어받길 내심 원하는 눈치이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녀처럼 누군가 자연스럽게 이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할머니와 어머니, 어머니와 자신처럼 모녀 관계를 넘어 스승과 제자 그리고 서로에게 힘과 의지가 되어주는 조력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롤 모델, 힘들고 어렵지만,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전통의 맥을 지키기 위해 함께 걷는 동반자처럼 말이다.
“우리 생활에 보면 매듭이 사용되지 않은 곳이 없어요. 고궁에 가도 매듭 장식을 유심히 보게 되고 불교 미술에서도 매듭 관련 문양과 조각을 살피게 된답니다.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도 매듭의 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매듭은 태초의 멋입니다.” 엮고 맺고 짜는 일을 매듭이라 여기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이 매듭이다. 매듭 속에는 정신적인 미와 외형적 아름다움이 함께 공존한다.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매듭은 섬세함을 보여주는 선( 線 )의 예술이자 보통 끈기와 인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인고의 예술이기도 하다. 차분하게 하나씩 천천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한 매듭. 그렇게 오늘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전수 교육 조교 박선경 씨는 전통의 가치를 일깨우는 당찬 손길로 매듭의 시간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 매듭의 종류는 30여 가지이다.
그 중 가락지처럼 끼워 장식하는 듯 매듭짓는 것을
○○○매듭이라 한다.
마감날짜 2018년 3월 14일 ┃ 발표날짜 2018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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