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공예가 오늘날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바탕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공예가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개발, 다양한 시도, 관계 기관의 정책과 지원 등. 많은 이들이 기울이는 다방면의 노력은 우리 문화가 퇴색되지 않고 그 명맥을 지켜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뛰어다니는 남자가 있다. 전통문화가 시대와 요구에 맞게 사용될 수 있도록 지침서를 만들어주는 사람 바로 디자이너 조기상이다.
인터뷰를 위해 이른 아침 창덕궁을 벗 삼아 걸으며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여름이 시작된 날이었지만 아침 공기는 딱 기분 좋을 정도였고 복잡과 주말과 달리 평온함 자체인 풍경이 상쾌함을 더했다. 창덕궁 돌담을 마주하고 있는 사무실은 흔한 간판하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도심 빌딩 숲처럼 복잡하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층인 사무실을 올라가는 계단에는 다양한 종류의 패키지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대뜸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수식어가 그를 말해주고 있지만 스스로 내리는 정의가 궁금했다. ‘디자이너’라며 말문을 연 그는 ‘소수를 위한 디자인’을 주로 했다고 밝혔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과 소통하며 그들이 원하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일을 했지요. 정확한 영역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들어주는 편이었죠.”
그는 전직 요트 디자이너였다. 운송 수단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국내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이탈리아 IED(Istituto Europeo di Design) 대학원에서 요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유수의 요트회사에서 일하며 최고의 수공예품이라 일컫는 요트를 디자인했다. 1,200억 원대의 최고급 요트를 디자인한 그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럭셔리 산업은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고 요트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남부 지역에 있는 조선소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지요. 결국, 생존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탈리아에서 계속 정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지기 시작했고요.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제 대학 시절 우상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의 우상은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이다. 18년 동안 BMW 수석디자이너였고 당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힌 인물이다.
2010년 자신의 우상이었던 크리스 뱅글 집에 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 질문을 받게 된다. “‘너희 나라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이지?’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지요. 결국 ‘우리 디자인은 뭘까?’라는 물음을 가슴에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거든요.” 자신의 우상이 던진 질문은 그의 항로를 또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방향키가 되었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처음 한 프로젝트는 농부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농부가 정성 들여 키운 사과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과 잘 만날 수 있는지 그 접점을 찾았다. 그렇게 농부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 지방자치단체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국립무형유산원 등의 기관에 자문 일을 맡으면서 곳곳에 있는 전통공예 장인들을 만났다. 사과가 그랬고 대기업의 상품이 그렇듯 한 브랜드가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일이 재미있기 시작했다.
‘방법을 조금만 달리해도 전통공예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장인들과 많은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요트를 종합예술이라고 부릅니다. 요트의 80%가 건축이지만 그 안에는 가구 제품 등이 모두 들어가지요. 요트를 만들면서 ‘촉’을 기르는 능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습니다. 국내에 돌아와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분야가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저는 개인을 위한 고민보다 전체를 위해 고민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죠.” 이후 지역 장인들과 함께 해당 지역을 살리기 위해 ‘액션 서울’을 설립,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전통문화 후원에 힘쓰는 (재)예올의 프로젝트,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름지기’의 아시아 공예·디자인 프로젝트 등 여러 활동은 물론 자신의 브랜드 ‘페노메노’,‘아우로이’도 런칭했다.
그렇게 전통 공예와 연을 맺고 있는 그가 브랜딩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지역의 스토리와 문화 연구이다. “안성에 유기, 전주에 한지, 나주에 염색이 있죠!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 생겨나고, 쌓이는 문화죠. 공예의 가치는 물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그 물성을 이해하려는 관심이 점점 생겨나는 것 같아 일하면서도 기운을 많이 얻습니다.”라고 말하며 안동 하회 윷을 보여줬다. 거기 스토리도 덧붙였다. “안동을 대표하는 것이 하회탈인데, 요즘은 탈을 쓰기도, 걸어두기 쉽지 않잖아요. 하회탈이 놀이였다는 점에 주목해서 대중화할 수 있도록 문화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지요. 윷 끝부분에 하회탈의 웃은 얼굴을 조각해 넣고 네 종류의 말도 양반, 선비, 중, 하인을 상징해 만들었답니다.”
물성이 가진 이해, 공예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며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이 기계로 찍어 내는 산업화 된 제품과 같을 수 없다. 도자기를 굽다 보면 색이 진하게 나오기도 혹은 아니기도 하고, 선이 매끈하게 되기도 혹은 퉁명스레 되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용 여부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작품과 제품의 차이일 뿐이지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수공예가 가진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유기장 김수영과 함께 협업해서 만든 유기 반상기는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인의 쌀 소비가 감소한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그릇의 규격을 줄여 현대인의 변화된 식생활을 반영했다. 유기가 ‘무겁다’는 단점도 보완했다. 유기를 최대한 얇게 깎았고 뚜껑 안쪽에 굽도 달았다. 재질 차이로 변화를 줘 활용도도 높였다. 냉장고 보관 용기, 텀블러, 양식용 포크와 나이프 등 일상에서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테이블 위에 있던 가방도 소개했다. 갓 장인과 함께 만든 손가방은 신선했다. 갓의 모자 부분을 가방 몸체, 갓끈을 손잡이로 해 만들었다. “유기는 인체에 유해한 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어요. 음식을 신선하게 유지하고 인체 해로운 성분이 닿으면 색이 변화되지요. 우리 전통 공예가 가지는 특징이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것들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죠!”
글로벌 시대에 전통공예가 갖춰야 할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세계 시장에서 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방식의 것이 필요해요. 우리 조상은 ‘물성’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물질 만능 시대의 사회에서 정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죠. 제품의 질적 수준은 일본과 대만, 규모나 화려함은 중국 시장이 선점해버렸어요. 우리가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하는 건 물성에 대한 지혜, 정신문화에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뛰어나다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훗날 해외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하고 싶다며 그 나라는 아마 독일일 거라 밝혔다. 이유인즉 독일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품에 대한 인문학적 배경이나 철학이 우리 전통공예품과 통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