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절경, 작품이 되다
  • 싱그러운 푸름이 온 세상을 뒤덮고 나면 살랑 불던 바람의 기운도 제법 뜨거워지고 이마에서는 땀 한 방울 ‘쓰~윽’하고 맺히게 되는 계절, 여름이 시작된다. 우리 조상은 초복이 지나면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된다고 여겼다. 7~8월은 초복, 중복, 말복, ‘삼복’이라 부르며 ‘삼복 동안은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무더위와 싸우게 되는 계절이다. 문명의 혜택이 적었던 당시 우리 조상들은 한여름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피서 요령을 찾아 즐겼을 터이다. 이번호 뮤진에서는 아름다운 명승지를 찾아 자연 속에서 무더위를 피하는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 꿈엔들 만날까. 금강산 전경

    이 향로가 주는 첫인상은 금강산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함께 설렘을 느끼게 한다.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다는 그 모습과 일만 이천 봉우리에 대한 상상을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된다. 금강산이 가진 아름답고 웅장한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장식 기법을 사용해 과장된 형태로 만들어졌다. 향을 피우면 우뚝 솟은 봉우리의 구멍을 통해 연기가 분출되는 방식으로 상·하부는 각각 분리된다. 동체 상부에는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소나무, 인물, 누각과 정자 등을 두텁게 첩화, 양각하여 입체감을 더하였으며 소나무 아래 앉아 있는 인물은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모습과도 같다. 이는 조선 후기 유행한 도석인물화의 화풍이 공예로 확산된 영향이다. 하부는 중심에 원통형 기둥이 부착된 형태로 동체 상부의 문양 구성과 합을 이루지 않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서 제작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 - 백자 금강산 모양 향로, 조선 19세기
  • 연적을 통한 중국 여행

    마치 여덟 폭에 담긴 병풍을 보거나 앉아서 중국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연적이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옆면이 여덟 면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큰 백자 연적이다. 푸른색 코발트 및 청화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이 연적의 각 면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경치 소상팔경(샤오상 팔경)을 그렸고, 윗면은 음각, 양각, 청화 기법을 적절히 사용해 뭉실 피어난 구름 사이에 용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나타냈다. 먼저 옆면을 살펴보면 가운데 출수구( 出 水 口 )가 있는 면에는 그림이 아닌 시를 묘사했다. 나머지 면은 소상팔경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소상팔경은 중국 악주의 동정호 남쪽 소수와 상수가 합쳐지는 곳의 늦가을 여덟 가지 경치를 말한다. 팔각형 형태와 당시 시대적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회화적인 기량이 돋보여 19세기 제작된 연적 가운데 대표작으로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다.

  • -백자 소상팔경 무늬 팔각연적, 조선 19세기, 보물 제 1329호
  • 부산에 가면

    마치 꿈속에서 나올 것만 같은 평온한 풍경이 시선을 잡는다. 부드러운 필치와 따뜻해 보이는 화면이 부산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게 하는 한 폭의 그림이다. 《사로승구도( 槎 路 勝 區 圖 )》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부산에서부터 일본 에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통신사 여정의 사실적인 묘사와 일본 명승지와 사행 중 겪은 순간 30여 장면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그중 한 장면인 <부산>은 부산진성과 자성대를 중심으로 묘사, 1748년 당시의 부산포를 표현한 것이다. 그림 앞쪽에 있는 것이 영가대 선착장이고 그 뒤로 부산진성이 보인다. 부산진성 앞 바위처럼 보이는 것이 영가대로 상세히 묘사되었다. 부산진성 남문 앞으로 난 도로를 중심으로 마을이 발달한 상황을 볼 수 있으며, 포구 형태나 특정 기물이 당시 지도나 회화작품과 비교했을 때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실경에 매우 충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 사로승구도 중 부산, 이성린, 종이에 엷은 색, 1748년
  • 금강산의 둥근 절벽

    화면 왼편의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외로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점점 흥미로워지는 그림이다. 정선의 기년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화첩으로 여행 중 들른 금강산의 명소를 그린 13폭의 그림 ‘풍악도첩(風樂圖帖)’ 중 독벼랑이라 불리는 <옹천(甕遷)>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옹천’은 바다로 바로 접하여 있는 둥근 형태의 절벽이다. 바위를 향해 파도는 계속 넘실대고 있으며 바위 사이로 나 있는 길은 매우 좁고 경사가 심하며 험해 보인다. 바위는 적묵을 통해 음영을 주고 있으며 실선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화면 가득 묘사하는 대담성을 보여준다. 바위와 바다를 대비시켜 균형을 이루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화면 중간 중간 나무를 제외한 세세한 묘사는 무심하게 생략했다.

  • 신묘년 풍악도첩 중 옹천, 정선, 비단에 엷은 채색, 1711년
  • 신의 섬

    비와호( 琵 琶 湖 )의 명승지인 지쿠부 섬은 그림 속에서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며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일본화가 니시야마가 그린 <지쿠부 섬>은 일본 비와호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고대부터 신이 머무는 섬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 곳이다. 오늘날에도 여행객에게 사랑받는 비와호이지만 조선통신사 역시 지쿠부 섬을 목격하고 비경에 반해 이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긴 것으로 보아 시공간을 뛰어넘어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만월 아래 수묵만으로 묘사했으며 야경의 적막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바위, 파도, 나무, 절 등 대상마다 필선의 차이를 보이고 수풀이나 언덕 부분은 먹을 겹쳐서 칠함으로 원근감을 살렸다. 먹의 농담은 질서 정연하게 화면 속에 조화를 이룬다.

    원고 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 지쿠부 섬, 니시야마 스이쇼, 수묵화, 193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