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전통에 오늘을 반영하는 열린 마음 소목장 이수자 권원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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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은 가구를 만들어진 기성품으로 쉽게 주문하고 똑같은 가구가 판매되어 여러 사람에게 배달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의 가구는 같은 이름과 구분 안에서도 만드는 이가 하나하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다. 그 매력 안에서 나무를 만지며 작업하는 소목장 이수자 권원덕은 그가 이해하고 지켜나가는 전통적 요소에 지식과 경험을 반영하며 변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2016년 구조와 내용에 있어 충분히 전통적이고, 보이는 모습에서 현대적인 요소가 반영된 가구를 만드는 그를 이번호 뮤진에서 만나보았다.

  • 이미지 만지고 싶었던 것, 나무

    나무가 가득한 권원덕 작가의 작업실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부터 짙게 나무 본연의 향과 난로에서 나는 나무 태우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정말 나무를 좋아하고 자신과 잘 맞는다는 그의 말과 일치되는 풍경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무를 만져왔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는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나무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건축을 하고 싶었으나 반대에 부딪혀 반도체 분야를 공부했던 그는 2007년 전북무형문화재 제19호 소목장 조석진 선생 문하에서 도제를 시작했다. 무형문화재에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대목장과 소목장으로 구분하는데, 주로 건축적인 큰 규모의 나무작업을 하는 이들을 대목장 그리고 그에 대비해 소규모 건축 관련 작업과 여러 가구와 도구 등을 만드는 이들을 소목장이라 한다.

  • 이미지 권원덕 작가

    권원덕 작가는 주로 목가구를 만들어 어디에서건 분야가 ‘소목’으로 쓰인다. 상업가구를 만드는 일을 했었던 그는 다음해 조석진 선생님을 만나 전통적 방식의 작업을 시작했다. 자신도 기성품 가구를 구매해 사용하기도 한다는 그가 오로지 판매목적의 가구제작이 아니라 소목장 이수자가 된 것은 우리 목가구에 대한 애정과 나무를 통해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보람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지 권원덕 목가구의 전통 - 현대화

    그의 목가구가 지닌 가장 큰 전통적 요소는 짜맞춤방식이라는 점이다. 짜맞춤 가구 는 금속으로 만든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데 나무들 끼리 잘 맞물려 견고하게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말 꼭 맞아 간격이나 흔들림이 없도록 하는 면밀한 설계와 가공과정이 필요하다. 표면의 나뭇결 문양과 틀어짐이나 변형까지 예측한 짜맞춤은 그야말로 장인의 노하우가 아니면 실현하기 힘든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짜맞춤은 만드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방식을 조금씩 가미하고 변형해 장인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스승 조석진 장인 작품의 분해도, 도해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전시에서 선보였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목가구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외관에서 느끼는 ‘전통적’이라는 느낌과는 다른 내용들을 알게 된다. 짜임의 방식, 공간의 구획, 필요에 따른 설계와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전통가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미지 아일랜드 조리대

    예를 들어 그가 직접 제작한 아일랜드 조리대라고 불리는 부엌가구의 한 쪽에 채용한 찬장의 형태는 나무가 나무를 밀며 열리는 미닫이문의 매력이 향수를 불러왔고, 그것은 형태보다는 감각에서 묻어나는 전통에 가까웠다. 또 엄격한 사각형의 가구는 전통가구의 곡선미나 문양장식이 없어 언뜻 모던함을 느끼게 하는 서양풍으로 보이지만 나무를 결합한 방식, 인두로 표면을 태워 강도를 높이고 색감과 재질감에 변화를 주는 과정(낙동) 등은 바로 우리의 전통방식인 것이다. 그가 이어나가고 있는 전통과 현대화는 설계와 제작의 전통적 근본 위에 외관의 새로움, 현재의 미를 짜맞춤 하듯 세심히 기획해 실현하는 과정이라 느꼈다.

  • 이미지 시너지,그리고 움직임

    근래 아트퍼니처를 공부한다는 그는 제작이 아닌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가구는 아니지만 솔 르윗(Sol LeWitt)과 같은 미니멀한 작품들에 영향 받는다며 협업이 내는 시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보여준 조석진 장인과 동양화를 전공한 아트디렉터의 협업으로 제작된 가구는 초현실적인 느낌의 풍경화나 서예의 필묵을 연상시켰다. 그 두 사람의 차이를 확인 후 조율하며 하나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새로운 에너지, 그것이 동력이 된다는 것을 그는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 ‘농방’을 지속해나가면서 지금부터 개인작업의 전시와 함께 협업의 시너지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고자 한다며 나아갈 길의 비전을 품은 모습이었다.

  • 이미지 권원덕 이수자의 문화재 -익산 미륵사지

    사적 150호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절터이기도 한 익산 미륵사지를 자신의 문화재로 꼽으며 편히 웃는 권원덕 작가의 모습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이 절에는 보물 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서석탑이 있는데 1974년과 1975년 원광대학교 발굴조사 때 동탑지가 조사되어 동서 쌍탑의 배치임이 밝혀졌고, 동탑은 1993년 복원되었다. 이 탑은 목탑의 양식을 돌로 잘 재현해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이야기된다. 이렇게 복원되기 전 미륵사지는 논밭과 민가로 존재했는데, 절에 쓰였던 돌로 된 부분들은 대부분 담장이나 주춧돌로 사용되고 있었다. 권원덕 작가는 탑이 복원되기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많지 않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고 기대며 지냈던 곳이 바로 미륵사지라는 것이 놀랍고, 그만큼 특별하다 했다. 마한의 도읍지였을 것이며 삼국의 기술이 모여 지었던 절이니만큼 비록 허물어져 논밭과 집에 어우러졌으나 그 기운은 느껴졌을 것이다. 그 안에서 지내며 성장한 그이기에 우리의 것에 대한 애정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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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디자이너라기보다 테크니션”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가구에 있어서도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도 장인의 마음과 디자이너의 마음이 함께하며 오늘의 우리 가구를 만들어갈 그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소중한 우리의 것 위에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반영하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며 발생하는 차이와 결과를 즐길 줄 아는 그이기에 겉에서 보기에 어떠한 모습이든, 우리 가구의 맥이 늘 함께하는 ‘권원덕의 가구’들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원고 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