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60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전쟁한번 치루지 않고 일본이 우릴 먹었다” 올 여름 최고의 화제작인 영화 ‘암살’에서 나온 대사이다. 영화 초반부에 힘없이 무너져버린 한 나라의 역사적 비극이 함축된 이 단 한 문장이 관람객 개개인에게 주는 충격은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일제강점기 때의 비극적 역사는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한국정치외교사에 예민한 화두로 남아있는 까닭에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로 이와 관련된 각종 문화행사나 전시 등의 일정이 여름을 가득 메웠다. 그중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대한제국, 근대국가를 꿈꾸다>가 조용히 이목을 끈다. 130년도 아닌 단 13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존립했던 국가 대한제국.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국가로서 새롭게 발돋움 하고자 했지만 결국 좌절되었던, 시대적 비극의 기로에서 잠시 스쳐간 대한제국의 일장춘몽을 이 작은 전시를 통해 살펴보았다.
전시실로 들어서기 전 입구에 걸린 ‘데니 태극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서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오웬 니커슨 데니가 선물 받은 것을 그의 후손이 기증한 것이다. 이 전시품은 태극기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종황제와 인연이 깊은 덕수궁 석조전의 건축양식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 근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전시실 내부로 들어서면 대한제국의 존립을 증명해주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진열장 너머로 차분히 놓여있다. 역시 ‘프롤로그’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안중근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 있으면서 쓴 글씨로 “재주가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나무나 진기한 나무를 잘 다루지 못한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인재를 기용하라는 의미로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897년 10월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자주독립 국가를 천명하고 근대화를 위해 광무개혁을 추진하는 등 황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많은 일들이 시행되었다. 전시에서는 이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한후 일제강점기까지 여러 전시품들을 통해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1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 선포’에서는 황제의 나라로서 대한제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물이 소개되는데, 그중에서도 고종황제의 어보-왕의 도장-는 대한제국으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왕의 어보는 거북이 모양을 차용하지만 황제의 어보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인 이화문이 새겨진 황후의 옷본에서 조차도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또한 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의 ‘서울풍경’에는 경복궁과 신문로 일대의 풍경 속에 거리를 거니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까지 담겨있어 역사의 현장을 실감케 했다.
2부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한 노력’에서는 근대화 사업의 중심이 되었던 궁내부宮內府의 현판, 이화문이 새겨진 의례용 칼 등을 선보이며 고종황제의 근대화의 시도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해주었고, 3부 ‘좌절된 대한제국의 꿈’에서는 이러한 개혁의 시도가 일제에 의해 좌절되며 경술국치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헤이그 특사에게 보낸 고종황제 위임장’, 일제가 한국병합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만든 ‘한국병합기념장’ 등을 통해 이야기해주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박은식이 집필한 ‘안중근 전기’, 윤봉길과 이봉창 의사의 ‘한인애국단 선서문’ 등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 때 자주독립 국가를 꿈꾸며 헌신한 독립운동가들 관련 유물을 통해서 그들의 숭고했던 꿈과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나는 적성(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장엄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한 이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문은 구국활동에 목숨을 내던진 당시 독립 운동가들의 강한 의지와 열의가 한 획, 한 획에 묻어 있는 듯 했다. 안중근의 유묵으로 시작해 역시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로 마무리 지은 이번 전시는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장식품에서부터 그림, 사진, 문서 등 다양한 종류의 전시품들로 잊혀 지기 쉬운 짧은 역사를 다시금 인지케 하여 광복의 의미를 새겨본 알찬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