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청명한 하늘, 황금 물결로 넘실거리는 들녘, 풍성한 곡식과 과일로 가득한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름내 햇볕과 푸른 기운을 머금고 완연한 모습으로 여물어가는 자연의 모습은 풍성하고 탐스럽습니다. 이번 호 E-특별전에서는 과실 모양 문양이 있는 유물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 조상의 삶에서 과일은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이 주전자는 매우 창의적 모양을 보여주는 청자입니다. 동식물을 본떠 만든 상형청자는 대부분 문양을 조각해 사물을 형상화하는데 이 주전자는 네 개의 석류를 조합하여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전자 아랫부분인 몸통에 세 개의 석류가 있고 그 위로 또 하나의 석류가 올려져 있습니다. 안정된 삼각형 구도를 띄고 있으며 여기에 잎, 씨, 손잡이, 주구를 만들었습니다. 석류 씨를 알갱이처럼 퇴화기법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였고 주전자 입구인 ‘주구’ 부분은 짧지만, 석류의 꼭지처럼 뭉툭하게 그 모양을 사실적으로 반영했습니다. ‘석류’는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과일로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서양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붉은 주머니 속에 씨앗이 빈틈없이 들어있어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과일이 되었으며 또한, 맛이 시어 임산부의 입맛을 돋웠기에 출산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 연적은 당시 사용된 일반적인 연적보다 다소 작은 크기입니다.
단단하게 영근 복숭아 모양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으며 복숭아 줄기와 잎까지 함께 표현하고 있어 그 크기가 작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리가 주성분인 동화 안료와 코발트, 철 등 화합물로 구성된 청화 안료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자줏빛의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가 산뜻하게 잘 반영되었습니다.
‘복숭아꽃’은 우리 조상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로 특히, 동양에서는 ‘신선화’로 불리며 불로장생을 상징합니다.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 도연명의 산문 <도화원기>에서 묘사한 무릉도원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으로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즉, 신선이 사는 이상향입니다.
또한, 중국 고대 신화에 ‘동방삭’이라는 사람이 여신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장수를 누리게 되었다고 하여 불로장생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에 조상들은 노인의 잔치에 복숭아꽃을 바치거나 복숭아가 담긴 바구니를 항상 올렸습니다.
조선 중기 문인화가인 이계호가 그린 그림입니다. 여덟 폭으로 구성된 긴 화면에 포도 덩굴이 가득합니다. 화면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풍성한 포도 덩굴은 화면 왼쪽에는 원, 오른쪽으로는 반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 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또한, 곡선을 이루는 줄기에서 율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포도송이보다 덩굴에 더 초점을 맞추어 그린 것으로 포도송이는 잎사귀와 덩굴에 비해 작게 그렸고 먹이 강조된 색의 대비와 입체감이 잘 드러나는 등 ‘이계호가 포도를 잘 그린다’라는 소문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입니다. 포도는 한 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다산을 상징합니다. 또한 척박한 땅에서도 죽지 않고 잘 자라 강인한 생명력과 장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화장호는 조선 시대 효종의 장녀인 숙신공주 무덤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항아리 안에 화장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화장 용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뚜껑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학이 조각되었으며, 몸체에는 석류, 복숭아, 불수감으로 보이는 과일을 나누어 배치하였습니다. 이 과일은 모두 최고의 길상적 의미로 쓰이는 문양입니다. 복숭아는 신선들이 먹는 과일로 불로장수, 석류는 다손(多孫)과 다남(多男), 불수감은 모양이 부처의 손가락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으로 ‘불수(佛手)’의 ‘불(佛)’이 ‘복(福)’과 발음이 비슷해 행복을 상징하였습니다. 즉, 삼다(三多)인 복숭아, 석류, 불수감은 인생 최고의 즐거움과 행복을 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