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60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김홍도의 작품 <무동> 속 정지된 무동에게 움직임을 부여했더니, 관람객의 어깨가 덩달아 움직인다. <대장간> 작품에선 실제로 한 장정이 힘차게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대장질을 하고, <무동> 속 무동이 움직여 대장간에서 춤을 춘다. 음악과 대장질 소리도 들린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작품도 새 생명을 부여 받았다. LED 화면에 그려진 <금강전도>에는 물소리, 새소리가 들리고 산등성이 사이 군데군데 엿보이는 네온 사인이 가득한 도심의 모습 그리고 금강산 위를 헬리콥터와 전투기가 가로 지른다. 액자 안에 갇힌 회화를 디지털 기술을 통한 움직임, 소리 등을 더해 TV, 모니터 등으로 확장하여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MUZINE을 통해 만나게 되어 반갑다.”라며 즐겁게 봐 달라는 그의 인사와 함께 인터뷰는 시작된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인 조소를 전공한 작가가 ‘미디어’를 접하게 된 건 1997년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이다. 한 대학의 애니메이션 학과에서 강의 중이던 작가는 학생들의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본 후 신기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무엇을 상상하든지 간에 컴퓨터는 현실로 척척 보여주었다. 드로잉, 채색, 움직임, 소리가 하나 되어 완성된 결과물은 그에게 신세계였다. 당시 ‘애니메이션 기법을 미술에 응용하면 또 다른 무엇이 창조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미디어 아티스트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8폭 병풍’을 선보였다. 이는 김홍도의 <묵죽도>, 모네의 <해돋이>를 결합한 작품으로 인물과 풍경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한 폭 한 폭이 병풍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쉬운 예술이었다. 국내외 명화 작품에 움직임을 부여해 생기를 불어넣고, 소리를 삽입해 사실감과 현장감을 더한다. 즉 예술에 기술을 더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순수미술학도가 컴퓨터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다뤄야 하는 법을 익히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접한 관객은 예술이라는 무겁고, 기술이라는 어려움이 아닌 흥미진진한 예술 세계의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모네, 세잔, 김홍도, 신윤복 등의 명화를 차용해 관람객이 좀 더 친근하게 작품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그 이면에 명화 차용이라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그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저는 대중이 이미지를 아는 것으로부터 소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명화를 차용했지요. 하지만 가벼워 보이는 등 여러 위험성은 있을 수 있어요. 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저만의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보이려는 시도를 많이 한답니다.” 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작품의 시작은 명화이지만, 구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또 상상 이상의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명화를 차용해 새로움을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편안함과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로 작품을 구성하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지 못하는 것, 혹은 쉽게 지나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이다. 하루가 다르게 사람도 자연도 변화하지만 바쁜 현대인은 그런 것을 잊고 살아간다. 때로는 생명의 소중함 마저 잊는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이남 작가의 작품을 보면 동양+서양, 과거+현재, 아날로그+디지털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것이 하나로 결합하고 이것이 또 다른 신선함을 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서로 다른 것이 하나 되어 혼합 되는 ‘비빔밥’에 비유한다. “전혀 다른 동서양의 문화, 정지와 운동, 과거와 현재의 시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비가 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마치 비빔밥처럼 재료는 각기 다르지만, 비비고 섞고 나면 맛있는 요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아 연결하는 그의 창의성은 이미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크리스티, 소더비, 등 해외 경매시장은 물론, 독일 퀼른, 두바이, 베이징 아트페어 등 국제 미술 시장에서 앞다투어 러브 콜을 보낸다. 반기문 UN사무총장 집무실 입구에도 그의 작품 <신(新) 묵죽도>가 걸려 있다. 김홍도의 <묵죽도>를 디지털로 재해석해 바람의 흐름과 설경을 표현,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무엇이든 시도하고 도전하겠다.”라고 말하며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 속에 담긴 작가의 무한 상상력이 또 어떤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하게 한다.

그는 오래된 그림을 좋아한다. 그 중 으뜸은 김홍도의 작품이라며 자신이 작품에 많이 활용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바래진 느낌의 종이와 손때 묻은 그림, 그리고 우리 조상의 삶을 엿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느낄 수 있어요. 깔끔하게 잘 보존되고 복원된 유물보다 세월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회화 작품이 좋아요. 그런 작품에 매력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