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7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만남에 앞서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선생님의 작업실은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작품과 추억들로 가득해서 정말 직접 그리신 작품의 화면 같은 동화적인 인상이 곳곳에 묻어났다. 실물의 작품이 이미지보다 더욱 동화적이었으며 그냥 평면이 아니라 세부가 나누어지는 부조로서 가진 섬세함이 시선을 끌었다. 그 색감과 섬세함에 감탄하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색감과 세부에는 어른의 시선이라기보다는 천진함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박현웅 선생님이 추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를 집안의 분위기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적부터 집안 어르신들이 서예나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특히 아버지께서 종종 그림을 그려주시곤 하셨는데 색을 쓰는 방식이 특이하셨다고 한다. 이렇듯 그림을 그리는 어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유년기의 인상은 추억과 작품 활동의 연결고리가 되었고, 아버지가 그려주신 그림의 독특한 색감은 작품의 색감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환상이 구현된 느낌의 색 사용과 각각의 부분이 따로 나누어진 상태에서 결합시킴으로써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은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 가지고 있는 장난감과 인형이 등장하며 이야기처럼 구성된 꿈을 꾸었을 때의 어느 장면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렇듯 작품은 다소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만 사실 모든 이야기가 선생님의 추억에 맞물려있다. 꿈꾸었던 슈퍼카, 점점 자라는 자녀의 모습,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 댁에서의 기억들이 작품에 남아있다. 직접 그림에 곁들이는 짧은 글들에서도 주변사람들과의 추억이 작품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됨을 느낄 수 있다. 선생님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는 것들이 작품에 반영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쉽게 ‘여행’이라는 테마를 찾아낼 수가 있다. 그것은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거나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서가 아니라, 건축물의 특징적인 모습이나 여행간 장소의 대표적인 모습이 작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근래의 작품에는 여행과 생활이 녹아들어 있다. 초창기 작업은 톤이 지금보다 조금 무거웠으나 자녀가 태어나면서 작품은 동화적인 요소로 채워졌다. 그리고 원래 좋아하시는 수집취향이 반영되었다. 선생님은 컵, 라디오, 모형자동차 등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그런 요소들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자녀의 출생과 성장은 이전보다 더 국내여행을 많이 가도록 했다. 속초, 인제, 강릉 등을 여행가며 그 곳의 유적지를 다니게 되었고 전통적인 건축물이나 문살 등 목재를 이용한 요소들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유적지 주변에 있는 수백년 살아있는 나무들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도 하셨다. 작품의 소재가 나무이기에 가지는 관심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변치 않고 자리를 지키는 우리의 것에 대한 애틋함도 하나의 이유였다. 이런 애틋한 정서는 한국적인 요소들과 상통하는 면이 많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흐드러지게 핀 목련 같아 보이는 꽃, 외갓집는 길 끝의 초가집모양 등에서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선생님은 여행뿐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가족들과 박물관 나들이를 자주 하시는데 박물관에서 만나는 유물들이 가진 현대적인 문양에 놀랄 때가 정말 많다고 하셨다. 단청, 귀얄문 등에서 현대화 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찾게 되며 그 내용들은 작품을 위한 자료가 된다고 하셨다. 보여주시는 소품들에서 그런 경험과 공부를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박물관과의 협업으로 소품을 제작한 경험이 많으신데, 작품은 선생님의 작품양식과 전통이 놀라울 만큼 잘 어우러져있었다. 이 소품들이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시의 홍보를 위하여 협업이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협업”의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소품들이었다. 세계의 샤머니즘을 주제로 하는 전시가 있을 때 제작된 소품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각 나라의 샤먼복장을 하고 있다. 교자상 등 ‘상’을 주제로 한 전시는 상을 만드시는 분과 협업하여 소품임에도 상의 디테일을 잘 살려 선생님 특유의 디테일한 작업방식의 강점을 드러내었다. 상 위에 놓인 화병과 그릇, 항아리 등의 묘사 역시 실물에 대한 관찰과 공부가 기반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아리의 형태, 꽃꽂이 된 가지의 방향과 균형감각 역시 그저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많은 작품을 보고 공부했기에 낼 수 있는 분위기와 비율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고분인 무용총에서 볼 수 있는 복식을 한 인물과 꽃이 배치된 소품에서는 원형의 형태를 수용하면서도 전체적인 어울림을 중시한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우리가 무용총의 인물과 수렵도를 보면 낯이 익다 생각하면서도 그 이미지가 가진 의미는 지나치게 학술적이고 그림은 유물이라고 생각해버리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문화로 들어와 새롭게 주목받고 재해석되는 것으로 그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이 전통을 현대화하고 세계화하는 방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이 되고 원형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유물 들이 가지고 있는 모던함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잘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생각에 적극 동감한다.

선생님은 협업을 위하여 평상시보다 더욱 세세히 쌍사자석등을 관찰하면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다. 또한 무용총 수렵도의 이미지에서 각각의 인물과 산, 동물의 표현이 가진 현대적인 요소와 독특함에 영향 받았다고도 하셨다. 이렇듯 우리의 문화재를 세세하고 바라보고 마음에 담는 성향은 개인적인 인연으로 자주 방문했던 부여의 박물관에서 접하게 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 국립부여박물관 소장)를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로 꼽는 큰 이유가 되었다. 이 백제금동대향로는 산, 꽃, 사람, 상상의 동물 등 방대한 것들이 하나에 표현 된 걸작으로, 1993년에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되어 우리가 살펴볼 수 있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문화재라고 소개해 주셨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시대부터 유행했던 박산(博山)향로를 백제에 맞도록 새로이 구현한 것으로 뛰어난 조형성에 감탄하

게 된다. 구름의 형태와 어울린 용이 고개를 치켜들고 향로를 받치고 있고 패턴화 된 잎으로 채운 연꽃형태의 향로 하부와 첩첩산중임을 알 수 있는 산의 모습, 인물・물고기・들짐승과 날짐승이 묘사된 뚜껑은 한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산의 꼭대기에는 보주(寶珠) 위에 기세를 떨치며 선 봉황이 장식되었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한 이 향로는 성왕이 추구했던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하며 보완하는 태평성대의 이상을 모두 담고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장식적 요소가 함께하며 살펴볼 수 있는 세부가 유물 전체를 메우고 있다. 선생님은 바로 이런 점이 이 문화재를 최고의 문화재로 꼽게 된 이유라고 하셨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추억과 현재 그리고 전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욱 가까이에서 원형과 변용이 생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더 많은 고민을 해 나가야 하는 것과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주변의 사물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실물이 존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임을 상기할 수 있었다. 박물관 문화재단과의 협업, 여행과 일상 속에서 깨닫게 되는 우리의 정서, 잦은 박물관 방문 등이 작품과 감성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은 그러한 맥락에서 큰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향후 선생님께서 가진 전통적인 요소에 대한 정보들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