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8년부터 고려미술관과 인연을 맺어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9년에 고려미술관연구소가
설립되었는데, 저는 당시 미술관 근처에 살고 있어서 공사현장을
종종 지나치곤 했었죠. 그러다 미술관에 학예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친구가 일본의 다도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다며
저한테 연락을 주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있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연구소에 들어 와 처음에는 아리미쓰 교이치 선생님의 문고정리라든가
고려시대 찻그릇에 관한 문헌자료 수집 같은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기획전시 업무를 비롯하여 전시출품 작품 선정,
유물 조사연구 업무들을 맡아 왔는데, 현재는 소장품 연구조사와
전시기획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고려미술관은 재일한국인 1세 정조문(1918~1989)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1988년 10월 설립한 미술관입니다. 1700여 점에 가까운 소장품을 갖고 있는데,
정조문 선생님이 모두 다 한국에 되돌려 보낼 목적으로 전부 일본에서
수집한 유물들입니다. 그러다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어느 한쪽으로만
유물을 보낼 수 없게 되자, 다음 세대들을 위해 선생님이 자택에 미술관을 세워
유물들을 전시하게 되었죠. 그런 의미에서 고려미술관은 조국 통일에 대한
정조문 선생님의 염원과 재일한국인들의 망향의 아픔이 깊이 스며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설립 취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만,
고려미술관은 한국의 고미술을 연구·조사하는 일본의 전문박물관으로서
일본에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연구·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교토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고려미술관과 한반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문화적 역할을 주요 목적으로 설립,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기관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