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화로 담아낸 현대 여성의 일상 화가 신선미
  • 전통을 잇는 사람들

    요즘 들어 동양화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전공자의 대부분이 입시 미술을 하는 동안 서양화로 그림을 배우고 입시를 치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전통적 방식이 유행을 반영하지 못해 진부하다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뮤진이 만난 화가 신선미는 이런 세태 속에도 오랜 시간 동양화의 매력에 빠져 꾸준히 한 길을 걷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전통 기법을 활용해 현대적 주제를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작품 속에서 동양화의 매력을 느껴보자.

  • 신 풍속화를 보다

    전통 풍속화 속에서 볼법한 한복을 입은 여자의 일상은 입가의 미소를 머금게 한다. 철부지 어린 소녀가 사뿐히 걷는 걸음걸이 속에 즐거운 희망이 담겼고, 춘향이를 떠올리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엔 봄꽃의 수줍음, 단아한 어미의 모습 속엔 모성애가 넘쳐흐른다. 한복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동양화가 신선미. 작품을 통해 만나는 한복을 입은 현대 여성의 아름다움과 일상 속 담백하고 진솔한 삶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학 속 드러나는 인물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르겠다.

  • 비인기 그림이 어때서? 소통하는 법을 연구하다

    작품 속 전통과 현대의 매력적인 만남은 시선을 꽤 오래 붙잡는다.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과 표정도 한 몫을 더한다. 그렇게 미소 짓게 되는 그녀의 작품은 장르로 치면 동양화에 속한다. “한 선배의 그림이 유독 눈에 띄었답니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필력과 색에서 서양화와 다른 우아함이 느껴졌습니다.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 그녀는 동양화를 시작했고 빠르게 흡수했다. 하지만 대부분 주변 사람들은 비인기 분야라며 한사코 반대했다. 그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좋은 것을 묵묵히 그려나갔다. 질감이 좋은 한지에 스르르 물드는 듯 선과 색, 단아한 멋스러움까지... 그렇게 하나둘 그려가며 동양화에 매료된 그녀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고민에 빠졌다.

  • 한복과 일상으로 공감을 불러내다

    고민에 빠진 그녀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전통 의상, 한복이었다. 아름다운 한복의 섬세한 색감은 전통 종이인 한지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그리고 가공의 이야기와 꾸밈을 더하기보다 가장 솔직한 모습을 선 하나하나에 담았다. “소재가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저의 일상을 담고 있지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즐거움, 잔잔한 감동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분들과 공감하고 싶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신선미’다운 것, 가장 자신다운 것을 그릴 때 편안함을 느낀다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작품 속에 담았다. 작품은 상상화처럼 보이지만 과거에 자신이 경험하고 믿었던 일을 하나둘 풀어냈다.

  •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를 잇다

    2005년 선보인 ‘그림 속 그림이야기’ 시리즈는 그림 속 배경에 바로 이전 그림이 그려지면서 스토리가 연결되는 작품이었다. 한복을 입은 단아한 자태의 여인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반전 있는 모습을 보여 솔직담백한 현대 여성상을 재치있게 풀었다. 2006년부터는 ‘개미 요정’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어린 시절 회상했다. 이 캐릭터는 점점 더 확장되어 ‘당신이 잠든 사이’ ‘다시 만나다’ ‘웰컴’ 등 다양한 작업으로 이어진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개미 요정은 그림 속에서 또 다른 인간과 만나는데 이는 과거와 현대의 결합처럼 시대의 확장을 보여준다. 마치 개미 요정은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실타래 같다.

  • 일상이 곧 그림이고 이야기가 되다

    핸드폰을 하는 한복 입은 여인, 한복 입고 춤추는 여인, 화장하는 여인, 최근 작품에는 작은 남 자아이가 등장하는 데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이다. 육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일상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림 속 스토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평범한 부모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각박한 생활에 지치다가도 아이를 보면 흐뭇해지잖아요. 특히 나와 닮은 버릇이나 생각을 보면 잊고 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죠.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들에게 찾아온 작은 기적들이 지금 내 아이에게도 찾아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그림으로 나누고 싶어요.”

  • 추억 속에서 전통의 흔적을 보다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전통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해 질문을 이어갔다. 그녀의 유년 시절 추억을 답으로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 댁이 오래된 기와집이었답니다. 혼자 놀아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신기한 곳이었어요. 낡은 가구와 병풍, 여닫을 때마다 흔들리는 창호지 문과 문고리, 마루 밑 가지런히 놓여있던 고무신 등 참 정겨웠어요. 지금은 허물고 다시 지어 옛 모습이 없어졌지만, 추억만큼은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곳이에요.”

  • 그림 스토리, 책으로 세계와 만나다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오며 그림 속 스토리 때문인지 출판사의 러브콜도 종종 받았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육아하며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작업을 진행했고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나온 책이 『한밤중 개미 요정』(창비, 2016), 『신선미의 한복유희』(한림출판사, 2017) 등이다. 대중과 좀 더 가까이 공감하기에 며칠 만에 끝나는 전시보다 책이 효과적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책은 곧 이탈리아어로도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의상인 한복이 현대의 여성과 만나 담아내는 이야기가 더 넓은 세상에서 공감을 준비 중이다.

  • 전통을 잇는 사람들

    앞으로도 스토리가 담긴 그림을 책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작가 신선미. 작업에 변화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 중이지만, 억지로 변화를 주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변화로 다시 돌아올 그녀의 숨 고르기에 뮤진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원고작성 및 편집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사진제공 | 작가 신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