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은 경주 서봉총瑞鳳塚 에서 출토된 금관을 주제로 한 테마전 <과학으로 풀어 보는 서봉총 금관> 을 4월 21일부터 6월 21일까지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경주 대릉원 옆 노서동 고분군에 위치하며 노서리 129호분이라고도 불리는 서봉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선보입니다. 5~6세기 신라 무덤인 서봉총은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발굴에 참여하여 금관을 직접 수습하였습니다. 출토된 금관의 꼭대기에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봉황의 ‘봉鳳’자 앞에 스웨덴(瑞典國)의 한자식 표현인 서전국瑞典國의 ‘서瑞’ 자를 붙여 무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서봉총 출토 유물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이 봉황을 장식한 금관으로 금드리개와 함께 보물 3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금허리띠 장식, 금귀걸이, 금팔찌, 금반지, 금그릇, ‘연수’라 새긴 은그릇, 유리잔 등이 함께 출토되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금관입니다.
이유인즉슨 가운데 세 마리로 이루어진 봉황 장식이 붙어 있어 다른 신라 금관과 명확하게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이 금관은 발굴 당사자이기도 하였던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평양부립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이듬해인 1935년 평양 기생의 머리에 씌워 사진을 찍은 사실이 1936년 신문에 보도되면서 큰 충격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서봉총 금관은 높이 약 35㎝, 지름 18.4㎝이며 드리개(垂下飾)의 길이는 24.7㎝입니다. 긴 관테는 상∙하에 삼각점으로 물결무늬를 찍고 볼록 무늬를 만든 후 달개와 곱은옥으로 장식했습니다. 관테 위에는 다섯 개의 가지를 금못으로 세웠는데 중앙과 그 좌우의 세 개는 맞가지 모양입니다. 맞가지 모양 장식의 좌우에는 엇가지 모양 장식을 하였습니다. 가지의 테두리에는 2줄씩 점선을 찍어 금판이 휘지 않도록 하였으며, 볼록 무늬를 만들고 달개와 곱은옥을 달아 장식하였습니다.
최초로 금관이 확인된 금관총金冠塚이나 황남대총 북분皇南大塚 北墳에서 출토된 금관과 기본 형태는 같지만, 안쪽에 2매의 금판을 십자형으로 교차시켜 모자 모양을 만든 후 그 꼭대기에 세 줄기의 나뭇가지 모양을 만들고 그 끝에 봉황 세 마리를 장식한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금관에는 굵은 고리에 길쭉한 사슬 모양의 샛장식과 펜촉 모양이 붙은 드리개(垂下飾)를 달았습니다. 드리개는 삼국시대 고분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는 것으로 금관 좌우에 붙여 늘어뜨려 금관이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신라 금관은 나뭇가지 모양으로 세움 장식(立飾)을 도안한 특징을 지닙니다. 전형적인 신라 금관은 맞가지(對生枝) 세 개와 엇가지(互生枝) 두 개의 세움 장식이 조합되어 있습니다. 상징적 측면을 살펴보면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라 금관은 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황남대총 북분에서 전형이 완성되었는데, 금관총과 서봉총 금관과 더불어 맞가지의 마디가 3단입니다. 이후 만들어진 금령총金鈴塚과 천마총天馬塚의 금관은 맞가지의 마디가 4단인데 이를 통해 신라의 나뭇가지 모양 금관은 맞가지의 마디가 3단에서 4단으로 바뀌면서 전체적으로 점점 빽빽해지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화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봉총 금관 제작에 사용된 여러 기술을 중점적으로 조명합니다. 삼국시대 금 . 또한, 제작 당시와 같은 기술로 금관 재현품을 만들어 이를 함께 전시합니다. 첨단화된 방법을 통해 금 관을 비롯한 여러 금 제품의 제작 기법과 성분 등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데, X-ray 촬영으로 금 제품의 제작 과정과 XRF(X선 형광분석)를 통해 금의 순도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파괴 분석법으로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금관의 새로운 복원안을 제시합니다.
<과학으로 풀어 보는 서봉총 금관>전을 통해 신라 금관의 제작에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지, 또 박물관에서는 이를 밝히기 위해 어떤 과학적인 분석법을 사용하였고 조사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뜻 깊은 전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