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8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우리가 사찰에서 만나는 전각과 석탑, 법당 안의 불상과 불화, 범종과 금고는 과거 누군가가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후원하여 제작된 것이다. 불사(佛事)란 이처럼 사찰을 세우며 석탑을 건립하고, 법당 안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며 경전을 간행하는 것이며, 불사에 참여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큰 공덕을 쌓는 것이다. 발원(發願)이란 공덕을 쌓으며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은 바로 이러한 발원의 산물이며 수많은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제작될 수 있었다. 이번 특별전은 바로 불교미술의 후원자와 그들의 소원, 그리고 후원의 목적을 살펴보는 전시로 시대마다 달라지는 후원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는 중앙집권적 국가 성립의 토대를 마련한 정신적 토대였으며 사찰의 건립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국가와 왕실에서 사찰의 중심인 탑을 세운 것은 국가의 안위와 선대의 명복을 기원한 간절함뿐만 아니라 국력을 과시하고 국왕의 권위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석탑 안에 봉안한 화려한 사리구는 고대 불교에서 가장 큰 후원자가 왕실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려 왕실은 수도 개경의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 의식과 행사를 주관하며 수많은 불사를 후원하였고, 귀족과 중앙 관료와 같은 최고 권력자들 역시 개인 원당(願堂)을 세우고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이들의 후원이 두드러진 분야가 바로 경전 관련 불사였다. 대장경은 이민족과의 전쟁을 맞아 고려 왕실이 국력을 결집하고 부처의 힘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조성한 것으로 국가적 사업이었다. 반면 사경(寫經)은 값비싼 재료인 금이나 은으로 경전의 내용을 옮겨 써서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주로 왕공, 귀족, 고위 관료가 후원하였으며 개인적인 발원 내용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법당 안에 봉안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사찰에서 신앙의 대상을 모신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불사였다. 고려시대가 되면 불상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후원자들이 비단이나 종이에 불상을 조성한 경위와 자신들의 이름을 써서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13세기부터 여러 물건을 불상 안에 넣는 복장(腹藏) 의식이 유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봉안 형식의 등장은 후원 계층의 확대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의 불상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봉사, 그리고 물질적·정신적 지원이 이어졌으며 임금, 신하, 백성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동참하였다.

사찰에서 예불 의식에서 사용되었던 범종과 금고, 향완, 촛대와 접시 등은 사찰에서 필수적이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불교공예품이다. 왕실에서 후원한 대형 범종을 제외하면 후원자들은 주로 지역 사회의 불교 신앙 공동체인 향도(香徒)들이 중심이 되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중앙의 고위 관료, 지방 행정 관료, 하급 관료, 무관, 여성, 향촌민 등 다양한 향도 집단이 등장하였다. 불교공예품에서 이들의 제작 후원이 활발하였던 이유는 지역 사찰에 필요한 의식구나 공양구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불교미술의 중요한 후원자로 고려시대부터는 다양한 계층에서 발원의 주체로 부각되었다. 여성의 발원 내용을 살펴보면 딸, 아내, 어머니로서 부모와 남편, 자식의 안위 또는 명복을 기원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억불숭유 정책을 폈던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어져 왕실 여인들은 사찰의 건립과 중창, 불상과 불화의 봉안, 범종 제작 등 모든 영역에서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는 여성의 권한과 역할이 상당히 컸던 고려시대의 전통이 남아있고, 권력 지향적인 비빈들이 불교미술을 크게 후원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체코의 예술가들은 유리를 순수 미술의 매체로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뛰어난 조형성과 철학적 내용을 담은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예술품으로서 유리의 발전을 불러왔다. 유리 예술의 영역은 공공미술로도 확장되어 1950년대부터는 여러 공공기관, 문화시설 등에 유리 작품이 설치되었다. 현대 체코의 유리 예술은 여러 국제 전시회 및 박람회에 성공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