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8호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며 감탄할 때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자연에 대해 느낀 감상을 표현한 것이 바로 산수화입니다. 과거 동양인들은 산수를 우주의 근본이자 우주를 한 자리에 모아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자연의 섭리를 순응하고자 했던 우리 선조의 정신이 담긴 산수화를 이번 호 E특별전에서 살펴봅니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는 마음 편하게 ‘분별을 초월한 세계’에서 풍류를 즐겼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화첩은 사계절의 풍경을 그린 여섯 폭의 산수화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중 E특별전에 소개하는 작품은 여름 풍경을 그린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입니다.
맑은 시야의 넓은 수면과 강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가까이 보이는 경치에는 언덕과 소나무가 강조되어 표현되었고 그 뒤로 긴 나무다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다리 위 사람과 동물을 표현한 것을 살펴보면 짐을 실은 나귀와 시종, 봇짐을 긴 가지에 걸어서 어깨에 맨 시종을 앞세우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선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작품 가운데 거대한 암석과 폭포, 그 뒤편으로 강가와 마을, 멀리 있는 산을 표현한 먹빛의 시원함과 바위의 표면, 입체감 있는 산의 표현은 중국 송나라 작가인 하규(夏珪)와 매우 비슷한 화풍입니다. 하지만 하규와 마원(馬遠)이 이룬 마하파 화풍은 대자연 일부를 잡아서 그림 하단 한쪽 구석에 치우치게 표현하였고 나지막한 산과 넘칠듯한 물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하여 이 작품은 그것과는 큰 차이를 드러냅니다. 즉 그림 한 쪽 부분에 중요한 경치나 물체를 가까이 부각시켜 표현한 구도가 그림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 가까이에서 뒤쪽으로 거리가 멀어지면서 먹의 농도가 엷어지는 것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림 가까이 두 그루 소나무가 서 있는 언덕이 화면 중심에 있고 산이 삼각형이기보다 덩어리 형태를 하고 있으며 강가와 마을이 꺼질 듯 엎드린 모습을 한 점, 거리감이 강조된 점입니다. 이는 하규 작품 형식보다는 조선 중기의 특징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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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5세기 후반 중국 명대 직업 화가들의 화풍인 절파(浙派) 영향이 두드러진 작품입니다. 9장으로 된 「산수화첩(山水畫帖)」은 모두 모시에 수묵담채로 그려져 있으며 화폭의 크기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뉩니다. 1~3엽과 5엽은 사각형의 화면이고, 4~7엽은 작은 화폭으로 동그란 원 모양의 화면에 그려졌습니다. 그 중에서 E특별전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1엽 입니다. 다리를 건너는 선비를 그린 것으로 인물 묘사는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전체 화면 분위기에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 가운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연기가 감돌아 거친 필묵을 다소 차분하게 해주고 대기의 느낌이 공간감을 형성합니다. 자유로운 먹의 농도를 볼 때 빠른 속도의 붓놀림으로 그렸을 것이라 추측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엉거주춤한 인물 묘사는 이런 붓놀림 사용에 결과입니다. 윤곽선이 선명히 드러나고 바위에 난 이끼를 나타내는 표현 방법과 그림 가까이 묘사한 바윗돌이나 산 표면에 가해진 흑백대비의 먹 사용법 그리고 메마르고 까칠한 나뭇가지 표현에는 명대 직업 화가들의 특징이 두드러지면서도 화면 한편에 무게를 주는 구도와 산의 형태는 조선 초기 대표 화가인 안견(安堅)의 영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징은 줄곧 안견파 화풍 같은 전통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던 시대 가장 유행했던 화풍에도 적지 않은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는 점을 작품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선배 화가들의 다양한 화법을 활용한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회화의 역사에서 의미와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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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당해 군에 종사하고 있을 때 그렸다고 알려진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무이한 작품이자 대표작입니다. 북송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1183년 제자들과 함께 중국 북건성 무이산에 은거하며 강론과 저술에 몰두했습니다. 주희가 머물던 무이산은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산세가 험난하고 협곡이 발달해 있어 외지인에 접근이 힘든 곳이었습니다. 높고 가파른 지형만큼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으로 특히,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 불리는 아홉 개의 물줄기와 절벽은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입니다. 「무이구곡도」는 주희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중국에서부터 그려졌습니다. 송나라 시절에는 단순히 경치를 그리는 목적으로 그려졌지만 원나라 때 주희의 시를 그림에 적어넣는 등 성리학의 장소로 의미가 부각되면서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림을 그려졌고 조선 시대 신유학자들 역시 주자에 대한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작품 가운데 높이 솟은 봉우리가 대은병(大隱屛)입니다. 그 아래 담으로 둘러쳐진 집이 주희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 주위로 보이는 누각과 집은 무이정사무이정사의 부속 건물입니다. 무이정사 뒤쪽 바위 가운데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바위인 나한동(羅漢洞)을 그린 것입니다. 중간중간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움직이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이곳의 인기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후 강세황이 그린 「무이구곡도」, 「고산구곡도」 등이 있으나 모두 「무이구곡도」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 이성길이 남긴 단 한 점의 그림은 우리 회화의 역사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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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식의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는 ‘도원으로 배를 저어 간다’라는 의미로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와 함께 중국 고사인 무릉도원경(武陵桃源境)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청록산수는 안중식의 기량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르로 독특한 산의 형태, 화려한 채색, 치밀하고 세밀한 붓의 사용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특한 채색 역시 안중식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도원행주도」에 나타나는 골짜기의 기이한 형태는 청록색의 농담 변화와 짙은 색깔의 소나무, 흐드러지게 핀 꽃과 함께 장식적이고 화려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높은 산의 모가 난 바위, 묵직한 감을 주는 윤곽선이 꺾이거나 혹은 둥글지 못하고 뾰족하며 특이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청록색의 몽롱한 분위기는 환상적인 입체감을 보이며 아주 꼼꼼하고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어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평가되고 있습니다.
「도원행주도」는 배 한 척과 한 사람 외에는 인위적인 것이 전혀 없는 자연 순수한 고도의 경지를 표현합니다. 물줄기가 열세 번이나 꺾이며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활짝 핀 복사나무 크기로 그림에서 공간의 깊이 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가운데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거리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림 왼쪽 부분에 세 그루의 큰 나무를 그렸는데 이는 오른쪽 가운데 부분에 위치한 작은 나무의 크기와 지나칠 정도로 차이를 내 거리감을 뒀습니다. 푸르른 산 사이로 난 물길 표현을 살펴보면 물결은 ‘~’ 형태로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주변 산색이 청록색으로 되어 있어 물결에 색채를 표현하지 않아도 마치 물색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물 표현에서 붓의 움직임이 치밀하고 섬세하여 부드럽게 느껴지며 화려한 청록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줄기를 따라서 겹쳐지는 언덕 부분은 멀면서도 가까운 거리로 표현하면서 화면 멀리 바위산을 솟아오르게 그려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사꽃 표현에 사용된 작은 점 모양의 채색은 그림에서 화사한 느낌을 줍니다.
작품 위쪽에 적힌 ″을묘년 늦은 봄 심전 안중식(時乙卯暮春心田安中植)″이라는 글을 통해 1915년, 즉, 안중식의 만년기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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