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6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만남에 앞서

반 층 정도 계단을 내려가자 조명과 크리스털 장식이 반겨준다. 입구 한 쪽에 있는 오브제들을 지나 좁은 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소품들이 가득한 광경에 놀라움을 느꼈다. 홍현주 선생님의 작품들에서 화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세월에 따른 묵직함과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식으로 반짝였던 작품들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가운데 마음을 끄는 대화를 나누어 주신 선생님과 매우 닮아 있었다.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공예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결혼 후 해외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거주했던 첫 번 째 집에서 받은 인상 때문이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 가구와 소품으로 집의 내부를 구성해 놓은 유럽의 집에 강한 부러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부러움의 이유는 좌식문화가 중심인 전통생활환경을 현대화하는 데 소홀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서운함일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환경은 근대화, 현대화를 겪으면서 빠르고 쉽게 사라져 갔고 그 격동의 시간 동안 잊혔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다시 역사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것들에 대해 애틋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선생님의 작품에서 유사한 느낌을 받는 것은 작품에 쓰인 고재 역시 수백 년 전부터 전해오던 전통을 입은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바가지, 놋쇠숟가락, 고리달린 문짝 등 오랜 기간 쓰였던 물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잃었던 생기가 돌아오는 것에 비유할만한 일이다.

선생님은 한국의 오래된 생활물품들이 있는 장안평, 황학동 등을 찾아다녔으나 온전한 것들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었기에 있는 원래의 모습대로를 보여줄 것을 생각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기능을 잃은 바가지, 문짝, 소반 등이 가진 틈이나 손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본래의 기능을 잃은 물품을 어떻게 채워주고, 다시 사랑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되었고 여러 가지 실험으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본래 모으시던 꾸밈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고재와 접목해보았다.

그 중에서 크리스탈과 만났을 때 고재 자체의 아름다움과 크리스탈의 매력이 제대로 상생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짙은 색 고재의 틈을 크리스탈로 메우고, 원래 가진 자연스럽고 기교가 없는 선과 결을 살려내었다. 크리스털과 그것의 반짝임을 묵묵히 받치는 고재가 서로를 더욱 돋보이고 반짝이게 하는 좋은 합임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으면 간직하지 않아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물품들에서 원래의 아름다움을 찾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마음에 새기게 한다.

간결한 화법과 명료한 표현은 선생님의 작품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잘 드러나며, 선생님은 그 공통적인 맥락을 ‘정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종종 사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생각을 원칙 없이 퍼뜨리다가 뒤죽박죽이 된 내용을 스스로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난감해하곤 한다. 선생님은 자신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생각에 할애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셨는데, 이것은 고재가 자신의 매력과 존재를 잃지 않는 정도의 장식을 가미하는 균형을 잡는데 핵심적인 원칙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재뿐 아니라 옹기, 농기구, 숟가락 등을 보고 작품을 먼저 계획한다기보다 현재 쓰임이 없는 이 물건들을 다시 사랑받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선생님은 훼손되었거나 틈이 벌어진 곳을 찾아 채우고 아름다울 수 있는, 그 작품을 가지고 싶어 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꾸밈을 추구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처음에도, 지금도 공간을 지향하고 계신다고 한다. 작품이 자리 잡을 곳에 한해 공간에 대한 상담을 하시는데, 차후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공간에 관한 것을 생각하고 계신다 하셨다. 선생님은 특히 민가를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자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공간이 간직한 전통적인 요소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최소한의 부분에 선생님의 재해석과 보완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 안에는 분명 전통과 현대, 삶과 자연의 매력이 공존할 것이다. 집은 안정적이면서도 일상과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공간이다. 선생님은 지금 살고계시는 집의 작은 뜰에도 동네의 아기고양이, 새들이 찾아와 조용한 듯 여러 가지 일들이 쉴 틈 없이 일어나는 시간들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선생님의 미래에 있는 우리 전통의 공간이 원형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변화하고 다시 사랑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선생님은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는 내소사(來蘇寺)라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 원래의 것에 변형을 가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철학과 매우 닮아있는 절이 바로 내소사이다. 이 절은 수백미터의 전나무 숲을 지나면 낮은 담장과 아주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입구를 지나는 동안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내소사는 아주 적은 인공(人工)으로 만들어진 즉, 자연에 가까운 것을 중시하는 선생님의 원칙에 가까운 문화재이다. 내소사의 봉래루(蓬萊樓)는 생긴 그대로의 돌을 주춧돌로 사용하여 높낮이가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기둥의 길이도 모두 다르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꽃살문은 나무의 본래 결 그대로를 사용했고,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설선당(設禪堂)은 자세히 보면 자라며 뒤틀린 나무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기둥이 곳곳에 보인다. 이미 산 속에 있는 절임에도 깎고 다듬어 본연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내소사는 천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온 것 그대로를 해하지 않고 본래의 돌, 본래의 나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것으로 인한 자유와 상통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갈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해 갈 것이다. 좌식에서 입식중심으로 우리의 생활이 변하면서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생기는 것처럼, 신소재개발로 더욱 싸고 세척이 편한 식기들이 생기면서 더 이상 놋쇠숟가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도 새로운 생활을 위한 것들이 생기는 만큼 우리의 생활에 함께 해 온 것들이 과거가 되어 조용히 멀어져 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큰 변화를 바꿀 수는 없지만 홍현주 선생님처럼 전통의 온기를 놓아버리지 않고 전통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활로 가져올 수 있다.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과거의 것 중에서 현대에서 본받고 배울 수 있는 많은 전통적인 것에 애정을 쏟고 의미를 부여하면 되살려 곁에 둘 수 있게 된다는 시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공예를 통해 작가로서 전통을 기본으로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선생님의 의지가 앞으로 어떤 활동으로 이어질지 큰 기대가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