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만 연안의 폼페이
유적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걷고 있는 도로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의 세트장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약 2천여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도로, 집의 벽체, 원형경기장, 공연장 등이 너무도 잘 남아있기 때문이다.
각 건물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사용된 물건들도 원래의 장소에 그대로 잘 남아있어 그 집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죽은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과거 사람들의 일상을 추정할 수 있는 증거들이 무궁무진한 폼페이 유적의 매력은 고고학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폼페이는 베수비우스 산에서 분출된 용암대지 위에 자리한 660,000㎡ 규모의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였다. 총 길이 3,200m의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출입을 통제하는 7개의 성문이 있었다.
시내에는 동서로 뻗은 2개, 남북으로 뻗은 3개의 중심도로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100여 채 이상의 집단 주택이 있었다.
이곳에는 지금도 도시 기능을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신전을 비롯한 공공건물과 개인주택, 상업․농업시설 등이 확인된다.
이번 기획특별전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도시문화에 관한 것이다. 79년 8월 24일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로서 어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총 9개의 주제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하였다.
로마제국의 번영과 함께 폼페이에서도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판매되고 있었고, 곡물을 빻아 만든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상점들도 있었다. 고대 로마의 요리법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육류와 생선이 널리 소비되었으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조리법이 사용되었다. 로마인들의 식탁에는 야채, 과일 그리고 주로 빈곤층의 주식이었던 콩류가 올라왔다. 빵도 곁들여졌는데, 폼페이 유적에서 확인된 화덕과 빵 덩어리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음식을 할 때는 잘 손질된 생선을 소금에 절인 ‘가룸(garum)’을 조미료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폼페이에서 만들어진 것이 유명했다.
기원후 79년 8월 24일 폼페이는 사라져 버렸다. 그날 베수비우스 산이 막대한 양의 화산재와 용암, 유독가스를 뿜어내며 갑작스럽게 폭발하여 폼페이와 함께 주변 도시들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사건 발생 17년 전인 62년에 일어난 격렬한 지진 때문에 폼페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진 발생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베수비우스 산이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이 화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것이 기원전 7세기였는데, 이때는 아직 도시 폼페이가 생겨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8월 24일 화산의 길었던 휴지기가 끝났을 때 그 폭발 위력은 가공할 정도였는데, 이는 폭발 잔여물의 분석 결과와 폼페이의 화산폭발을 직접 목격했던 소(小) 플리니우스(Plinius the Younger)가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두 편의 편지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당시의 참혹한 죽음의 모습은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 교수가 찾아낸 캐스트로 확인할 수 있는데, 사람이나 동물 등이 묻혀 있다가 만들어낸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그 형태를 찾아낸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쭈그린 채로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남자의 캐스트와 밀려드는 화산재를 막기 위해 엎드린 채 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의 캐스트는 죽음의 순간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