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6호


뮤진 칼럼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개인도 여러 가지 주변을 정리하는 등 준비를 하지만, 나라에서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다양한 준비와 행사를 개최한다. 이러한 새해맞이는 분명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전통 있는 행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새해 첫날이라는 것은 매해 반복되는 것이지만 다른 어느 궁중행사 못지않게 당시 왕조의 번영을 위하여 화려하게 의례(儀禮)를 치렀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대적인 새해맞이 행사를 했을 왕실의 새해 첫 날 풍경은 어떠했을까? 이번호 뮤진칼럼에서는 왕실이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였던 ‘정조하례 正朝賀禮’와 하례 이후에 이어졌던 연회인 ‘회례연 會禮宴’에 대하여 알아보고 늘 다시 오는 새해이지만 시작되는 나라의 한 해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축하한 행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한다.

정조하례란 정월 초하루 아침에 조정 대신들과 관리들이 임금에게 올리는 축하 인사를 뜻한다. 다른 명칭은 하정례(賀正禮)·정단례(正旦禮)·조하례(朝賀禮)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朝元殿)에 가서 백관의 정조하례를 받으니, 하정례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7세기에 쓰인 『수서(隋書)』·『당서(唐書)』에서도 신라의 정조하례에 대하여 “매년 정월 원단에는 서로 경하하고, 왕이 연회를 베풀어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볼 때 정조하례는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정조하례는 『고려사(高麗史)』에 「가례(嘉禮)」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날 문무백관이 대관전(大觀殿)에 모이는데, 이날은 특별히 여러 지역에서 선사한 물품목록을 바치며, 각 도의 축하장을 가져온 관리들이 임금께 축하인사를 하도록 했고, 이에 왕은 문무백관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조선시대의 정조하례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가례(嘉禮)」에 새해 첫날에 궁궐을 향하여 절을 하고, 중국사신에게 황제에게 전할 표문(表文)을 사신에게 건네며 왕세자 및 왕세자빈 등이 임금께 하례 드리는 내용과 그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새해가 된 날로부터 3일 동안은 승정원(承政院) 각 방에서는 공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관청과 시장이 문을 닫았다고 하며, 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도 “의정대신(議政大臣)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신년을 하례하는 전문과 표리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가서 조하(朝賀)를 올린다. 8도의 관찰사과 각 주(州)의 목사(牧使)도 전문과 고장의 특산물(方物)을 바친다. 주·부·군·현의 호장리(戶長吏)도 와서 반열(班列)에 참례(參禮)한다.”고 기록이 남아있다. 이 행사에 아주 넓은 범위의 관리들이 참여하여 축하인사를 전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으로, 그만큼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를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하례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행사이다. 그러나 하례이후 문무백관의 새해축하에 화답하며 베푸는 연회의 의미와 규모 등이 주목받고 현대에 와서도 재해석 되는 것은 조선시대 특히 세종조에 치러진 연회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이유는 유교를 토대로 하는 왕실의 의례를 정리하는 작업을 세종대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제례(祭禮)에 사용되었던 전통 궁중음악 즉, 아악(雅樂)을 재정비하고, 연구•실험하여 연회의 형식을 확립하여 자주적인 문화를 만들고자했던 세종대왕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의지는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서적으로 만드는 국가사업으로 연결되었다. 고려시대까지도 오례(五禮)에 관련된 의식은 지속되어왔지만, 그 내용에 관련한 규범이 확립되어 진행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정치이념이 된 성리학적 질서가 적용된 의식을 정리하여 규범화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에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등 오례(五禮)에 관한 예법과 절차를 기록하는 편찬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이며 이 때가 세종대이다. 8권 8책으로 규장각에 보관되어있는 이 책은 세종대에서 완성되지 못하고 성종5년(1474년)에 의해 완성되었다. 오례(五禮) 중 정조하례가 속해있는 가례는 모두 50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과 왕세자 및 백관들의 설날 하례인 조하의(朝賀儀), 궁궐에서 행해지는 납비(納妃) · 책비(冊妃) 등의 의식절차, 왕세자의 관례, 국왕이 참여하여 베푸는 각종 잔치와 양로연(養老宴) 등에 관련된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편찬으로 비로소 조선시대 의례와 관련된 기본 규칙이 정해졌으며, 향후 일부 사항을 보완하여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가 간행되기도 하였다. 1744년에 왕명에 따라 개정편찬된 『국조속오례의』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들은 같은 분류를 시대변천에 따라 정리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각종 의례를 연구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서, 의례의 변화 과정과 각종 연회의 절차, 규모 등 형식 전반에 관하여서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깊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두 차례의 회례연이 개최되었는데 동지와 설날이 연회가 있는 날이다. 현대로 보자면 한해의 업무를 시작하는 행사인 시무식(始務式)과 마치는 행사인 종무식(終務式)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연회에는 왕세자(王世子) 및 문무백관(文武百官)이 모두 참석하며 동시에 중궁전(中宮殿)에서도 내외명부(內外命婦)들을 위한 회례연을 개최하도록 되어 있었고 이 연회를 각각 남성중심의 외연(外宴)과 여성중심의 내연(內宴)으로 구분했다.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은 禮法(예법)과 音樂(음악)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의 정치이념에 따라 1424년 (세종6년) 박연(朴堧)에게 악학별좌(樂學別座)라는 벼슬을 지내고 대제학이었던 맹사성(孟思誠), 문신 정인지(鄭麟趾), 과학자 장영실(蔣英實) 등이 참여하여 율관 제작, 악기 제작, 악보 발간, 아악 정비, 신악(新樂) 창제 등의 활동을 장려하고 예악의 정리에 박차를 가하였다. 율관을 통해 고정된 음률의 악기인 편종과 편경을 제작했고, 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악보인 정간보(井間譜)를 창안하는 등 문화적 위상을 높이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연구와 실험에 쏟았고, 1433년 1월 1일의 회례연에서 그 성과를 보여주었는데, 그 규모와 화려함이 역대 최고였다고 한다. 이 연회의 내용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되어있어 실제로 경복궁에서 300여명이 투입되어 세종조 회례연을 개최하는 모습을 일반인과 외국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기도 했고, 이 내용을 복원한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연회는 임금님이 사정전(思政殿)에서 근정전(勤政殿)으로 이동하는 전하출궁(殿下出宮) · 임금님께 절을 올리는 배례(拜禮), 선사하다, 선물하다의 뜻인 ‘진(進)’을 앞에 붙이고 각종 용기, 상차림, 꽃, 탕, 술, 식사를 임금님께 올리는 진주기(進酒器) · 진찬안(進饌案) · 진화(進花) · 진반아(進盤兒) · 진소선(進小膳) · 진탕(進湯) · 진제1작(進第一爵) · 진제2작(進第二爵)···그리고 연회를 마치며 마시는 술인 파연작(罷宴爵) · 진탕(進湯) · 진대선(進大膳) · 배례(拜禮), 임금님이 다시 사정전으로 돌아가는 전하환궁(殿下還宮)의 절차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철차 사이사이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음악과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며, 무동 등이 춤을 추는데 탕을 올릴 때는 춤을 추지 않는다. 연주와 춤도 매 절차마다 다른 인물들이 부분부분 투입되어 이 회례연을 위하여 얼마나 세심한 설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왕실의 새해첫날은 나라를 다스리는 문무백관이 하례를 올리고 이에 답하여 연회를 여는 형식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지금까지 규범화되지 않았던 예론을 정리하고, 아악을 정리, 연구, 개발하여 회례연에 도입함으로써 유교를 중심이념으로 통치하는 국가의 위상과 자주성을 드러내는 행사를 다른 날이 아닌 설에 개최함으로써 국왕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었다. 이렇듯 왕실의 새해맞이는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에, 국가의 통치이념을 담고, 표방하는 바를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되는 행사이다. 다가오는 설에는 주변과 덕담을 주고받고 행복한 새해를 축원할 때 우리 왕실의 새해맞이를 떠올리고 관련 행사를 참관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