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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ZINE

56호


기마병 철제금은입사호등

우리나라에는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의 문양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십장생문(十長生紋)은 다른 문양에 비해서 산수화풍으로 표현되어 비교적 사실적인 형태를 나타냅니다. 십장생문은 조선시대의 복식·가구·도자기·민화 등에 즐겨 쓰이는데 모든 십장생이 한 화면에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 수화로와 같은 소규모 공예품에는 십장생에 해당하는 해·물·돌·산·구름·소나무·불로초(不老草)·거북·학·사슴을 한꺼번에 모두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조합하거나 다른 긍정적인 상징물을 함께 그려 넣는 형식을 보여줍니다.
화로의 각 면에는 십장생 중 사슴이 두 면, 학, 거북이가 각각 원 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각 면의 동물은 모두 쌍으로 표현되어있으며 배경은 모두 가로줄무늬로 메웠고 동물은 면입사와 선입사를 사용하였는데, 동입사의 붉은 색으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사슴은 깊은 산속에 살며 약초를 먹기 때문에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동물로 여겨졌고, 아름다운 외형과 온순한 성격으로 우애를 뜻하기도 하며, 사슴 녹(鹿)자와 벼슬 녹(祿)자는 같은 음이라는 점에서 벼슬을 상징합니다. 도교의 성립과 함께 신선사상(神仙思想)의 문양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경우 사슴한 쌍이 등장하여 부부가 항상 화목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수화로에서 사슴이 있는 두 화면 중 한 면에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포도를, 반대편의 면에는 십장생 중 소나무를 함께 표현하였습니다. 학의 문양은 청동기시대부터 여러 가지 공예품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매우 성행한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장수, 행복, 풍요를 상징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날개를 펼치고 다리를 쭉 뻗는 형태였고, 조선시대는 날개나 다리가 구부러진 형태로 실제의 학에 더 가깝습니다. 이 수화로에서는 가운데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놓고 양쪽에 학을 배치하였습니다.
마지막 한 면에는 거북이 한 쌍이 물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거북이는 장수와 지혜를 의미하는데 미래를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신의 뜻을 전달해주는 동물로 여겨져 거북이는 길흉을 점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수화로의 뚜껑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나라 태극기에서 볼 수 있는 모양이 동으로 입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건곤감리(乾坤坎離)라고도 하는데, ] 네 문양이 각각 팔괘(八卦) 중 사괘(四卦)에 해당합니다. 이 문양은 천지일월(天地日月), 사시사방(四時四方), 인의예지(仁義禮智) 그리고 정의, 풍요, 생명력과 활력, 지혜와 정열을 뜻합니다. 각 괘는 3단의 가로줄로 되어있고 가운데가 갈라진 것이 음(陰), 이어진 것이 양(陽)을 나타내어 각각 의미에 맞는 음양의 조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윗면은 사괘의 형태로 인해서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삼각모줄임 구조와 닮아있습니다. 사괘가 만나는 사각형의 안에 각 선의 중점을 이은 형태로 각 모서리를 삼각형 모양으로 줄인 사각형이 존재하고 이것이 뚜껑으로 이어져 반복됩니다.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무늬에 면분할을 모줄임 형태로 함으로써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뚜껑의 손잡이는 상하의 두 개의 사각형과 삼각형 여덟 개 그리고 네 개의 마름모꼴로 이루어진 십사면체의 형태이며 각 면은 다시 무늬로 가득합니다. 윗면과 손잡이의 형태는 새삼 이 화로가 얼마나 세심하게 계획되고 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화로 뚜껑에는 몸체에 있는 문양이 골고루 사용되었습니다. 각 모서리는 모두 동으로 선입사를 하여 구획을 선명하게 나누었고, 상부와 측면 사다리꼴형태의 네 면의 가장자리는 뇌문(雷紋)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뇌문은 번개문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도자기 중 향로의 입부분이나 병의 어깨부분 등에 돌려지던 띠문양의 하나이며 모양이 연속외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무한함과 영구함 그리고 결실을 의미합니다.
이 네 사다리꼴에는 각 면마다 박쥐가 한 마리씩 입사로 표현 되어있습니다. 형태와 날개구분선 등은 동입사로 외곽선표현을 하였고 면은 가로줄과 세로줄무늬를 사용하여 메웠습니다. 동입사 바깥쪽으로 작은 간격을 두고 은입사로 외곽선을 넣어 박쥐의 형태가 더욱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박쥐문은 한자로 편복문이라고 표현하는데 박쥐는 장수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강한 번식성을 뜻합니다. 『천문지(天文志)』에 의하면 박쥐는 직녀성의 정령이며 직녀성은 베 짜고 옷 만드는 일과 살림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지상에서는 박쥐가 이를 관장하여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격과 관련하여 편복문은 여성물품에 문양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수화로는 몸체와 뚜껑 모두에 많은 기하문이 쓰였습니다. 뇌문도 기하문에 속하며, 가로줄문, 세로줄문, 삼각문 그리고 박쥐바깥쪽을 메운 사각문, 칠보문 등이 이 화로에 다양하게 반복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기하문은 단순히 면을 채워 넣고 공예기술을 뽐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장수나 해로(偕老) 등 길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로는 보온, 차를 달일 때, 난방, 가마 안에서 사용하는 것 등 쓰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사랑방에서 손을 쬐는데 이용하거나 담뱃대에 불을 붙이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화로를 작게 만들어 시집가는 딸의 가마 안에 넣어주는 것을 수로(手爐, 손화로)라고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철제은동입사손화로는 높이가 20센티미터 남짓 입니다. 또한 한 쌍의 동물로 몸체의 각 면을 꾸몄고, 뚜껑에는 음양의 조화가 다루어진 사괘와 여성물품에 주로 나타나는 편복문이 표현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들어서 생각해 볼 때 이 손화로는 시집가는 딸이 앞으로 화목한 부부로 조화를 이루며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마에 넣어주었던 용도일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호 뮤진에서 소개한 수화로는 기능의 면에서도 따뜻했겠지만, 이것을 만들어 건넸던 사람이 받는 사람을 위해 표현한 행복을 비는 마음의 따뜻함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수, 지혜, 화목, 다산 등 많은 인생의 행복을 하나의 물품에 응축해서 담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우리 조상들은 상대에게 전하는 물품에 이러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취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