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밖에서 한국미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이 큰 반면, 가끔 난관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아직도 한국전쟁 직후 미국의 원조를 받은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가진 분들을 만나면 참 난감합니다. 저보고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를 물어오는 사람이 아직도 있으니 웃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국외 소재의 한국 유물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도 재미있을 때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독립된 한국 미술실을 가진 박물관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힙니다. 중국실이나 일본실 안 모퉁이에, 혹은 통로 사이에 놓인 몇 개의 전시장에 한국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많습니다. 한국 유물이 푸대접 받는다고 언짢아하는 바로 그 관람객들이 어떤 때는 훌륭한 한국 유물이 외국에 왜 나와 있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국 밖의 유수한 공공 기관에서 국위 선양을 하는 유물들에 대한 바른 시각이 절실합니다. 또한 좋은 유물들과 전시를 통하여 한국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이 요구됩니다.
- 이 전시는 제가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기기 이전에 이미 결정이 되어있었어요. 처음에는 주어진 전시라서 부담이 있었는데, 공부하면서 열정과 흥미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이 전시가 우리 미술관의 성향과 맞는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특별전은 조선시대 잔치와 축하의례의 모습을 다양한 기록화와 공예품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저희 미술관은 이러한 전문 주제를 다루는 데 적합한 곳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전시가 다양한 예술 장르를 다루고 있어서 더욱 묘미가 있습니다. 미술은 물론, 음식, 음악, 무용, 복식을 포함한 종합예술전시이기도 해서, 전시 기간 중에 다양한 대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시 자체에서는 유물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21세기에 맞게 재해석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향연과 의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잔치와 향연은 세계 공통의 의례입니다. 조선시대의 잔치에 따른 미술을 통하여 관람객들이 각자의 인생 속 향연을 다시 짚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지난 가을부터 올 초까지 열렸던 분청사기 전시가 호응이 좋았고,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한국 현대도자 전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공항의 무빙워크 옆의 전시 케이스들 안에 한국의 과거를 재창작한 현대 도자들을 어떻게 선보여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미국 내 한국소장품들 중 회화, 전적류 유물들의 장황(표구는 잘못된 용어입니다)은 국적불명 혹은 구제불능일 경우가 많습니다. 제대로 한국 전통 장황을 연구하거나 연구하고자 하는 보존처리 전문가도 드뭅니다. 교육적 목적에서라도 한국 장황 전시가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전시는 항상 제가 고민해온 부분으로 크거나 작게 실행에 옮겨 왔습니다. 특히 한국 밖에서 전통미술을 전시하는 데에는 현대를 끌어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관람객은 모두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며 현대의 눈으로 과거의 유물을 보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계속적으로 현대작가들에게 저희 유물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커미션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소장 대표작들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겠고요. 더불어 한국 미술이나 문화에 심취되었던, 혹은 한국 미술과 연관이 있는 미국 현대 작가들과 한국의 전통 유물들이 대화하고 조화를 이루는 색다른 전시를 꿈꾸기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흙으로 시를 빚다> 입구 ⓒImage courtesy of 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 Photo by Kaz Tsuruta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흙으로 시를 빚다> 특별전 전경ⓒImage courtesy of 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
Photo by Kaz Tsurut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