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9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폴란드, 천년의 예술>은 공예, 회화, 조각 등 그야말로 장르를 총체적으로 망라한 ‘폴란드 문화 알리기’ 종합전시이다. 폴란드는 흔히 ‘동유럽의 대한민국’이라 비유된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에 위치해 외세에 끊임없이 시달려온 까닭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폴란드. 대다수는 이번 전시의 부제인 ‘쇼팽과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을 보고서야 ‘아! 그들이 폴란드인 이었구나’한다. 하지만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그들의 문화와 예술수준을 얕본 것이 미안할 만큼 이번 전시는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크라쿠프 국립박물관, 바르샤바 왕궁 등 폴란드 전역의 19개 기관을 훑어서 엄선한 250여 점의 국보급 예술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게다가 해외에서 폴란드 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최근 70년 동안 폴란드 문화부가 기획한 전시들 중 역대 최대 규모이다. 전문가들조차 현지에서 발품을 팔아도 다 보기 힘든 작품들이 왔다고 할 정도이며, 특별히 아시아 지역 관람객들을 배려하여 의미가 잘 전달될만한 작품들을 골랐다고 한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서기 966년 지배층의 기독교 공인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들을 통해 폴란드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게끔 되어있다. 1부에서는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 국민의 신앙심이 표출된 중세의 조각들과 제단화 등이 소개되고, 2부에서는 16~18세기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며 번성했던 당시 폴란드의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회화, 공예 등이, 3부와 4부에서는 삼국분할 이후 10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된 식민 기간 동안의 폴란드 예술을 조명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1918년 독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폴란드 미술을 이끌어 왔던 다양한 흐름과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전시실 도입부에서는 이번 전시의 주조색인 붉은 바탕의 벽면을 배경으로 배열된 15세기 교회 건축의 중심이었던 제단을 장식한 조각과 제단화들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특히 극적이고 생생한 표정에 풍부한 색채가 특징적인 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피에타 상은 미화되지 않은 자연스런 표정과 포즈에 인간적이고 친근한 느낌마저 든다. 2부 ‘사르마티안 시대의 예술’에서는 폴란드 전통예술 중 당시 중심적인 사상이었던 ‘사르마티즘(Sarmatism)’이 반영된 미술품들을 주로 보여준다. 2세기 페르시아 부근, 동방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상상의 나라인 사르마티아(Sarmatia). 폴란드 귀족들은 스스로를 사르마티아인의 후손이라 여기며 동방문화에 심취하였는데 ‘콘투시(Contouche)’라는 두루마기 같은 옷에 변발, 휘어진 긴 칼 등의 복식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러한 사상은 근엄한 표정과 카리스마가 압도적인 <스테판> 차르니에츠키>와 같은 전신 초상화에서 잘 엿볼 수 있는데 가문의 문장과 글귀를 그림에 새겨 넣은 것도 특징적이다. 그 밖에 화려한 중국풍의 도자기들도 눈길을 끌며, 지동설로 유명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자필원고나 천문관측 도구들 또한 이번 아니면 보기 힘든 전시품이다.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용맹을 떨치며 전성기 폴란드의 힘을 상징하는 기병대 ‘후사르’가 사용했던 화려한 갑옷과 무기들이 전시된 진열장을 지나면 폴란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전성기의 하이라이트인 <그룬발트 전투> 그림이 통로를 장식한다. 이후부터는 유럽 지도상에 폴란드가 사라져버렸던 18세기 후반이후를 다루는 3부 ‘억압의 시대에 피어난 영혼의 왕국’이 펼쳐진다. 이때부터 나라 없는 민족의 자존심과 애국심이 예술가들의 작품 기저에 깔리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전시실 벽에 새겨진 “예술은 일종의 무기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예술을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폴란드 국민화가 얀 마테이코가 했던 말은 애국심의 발로에서 비롯된 그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글귀이다. 그러나 식민지시대 폴란드 예술은 그 이전보다 더 풍부해지고 화려해졌다.

화가들은 종교미술이나 궁정의 후원을 받은 작품들 대신 조국의 과거 영광을 재현한 역사화나 아름다운 자연풍경, 전통 민속 등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얀 마테이코의 대형 역사화들이 주목할 만한데 바르샤바 왕궁 소장의 <프스코프의 스테판 바토리>는 폭 6미터, 높이 4미터의 크기로 운송을 위해 프레임과 캔버스를 특수 제작하였을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또한 폴란드의 위대한 작곡가인 프레데릭 쇼팽의 친필 악보와 관련 미술품들이 선보이는 전시실로 들어서면 당시의 플레옐(Pleyel) 피아노로 연주한 마주르카의 선율이 흐르며 관람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준다. 그 밖에 17세기 폴란드 영토에서의 전쟁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한 유제프 브란트의 그림들이나 사냥 장면, 폴란드의 타트라 산맥 등을 그린 풍경화들, 민초들의 소소한 삶이 담긴 풍속화들과 신비스런 분위기의 누드화 등도 잔잔한 감상의 재미를 더해주며, 왕궁의 화려한 내부를 엿볼 수 있는 실내풍경화들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시회 포스터를 통해 낯익은 아폴로니우시 켄지에르스키의 <워비치의 소녀>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작품들이 전시된 4부 ‘젊은 폴란드 시대의 예술‘에서는 폴란드 회화의 황금기답게 전통적 방식과 애국이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화가들의 개성이 각기 돋보이는 다채로운 근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중앙에 전시된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아인스키의 <새벽녘의 플란티 공원>은 독특한 색감과 구도에서 묘한 여운을 남기며, 폴란드의 민속적 풍경에 그리스 신화를 결합하여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 독창적인 야체크 말쳬프스키의 그림 또한 강렬하게 각인된다.

마지막으로 ‘20세기의 폴란드 예술’에서는 폴란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1918년 독립 이후 급진적인 유럽 아방가르드 사조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열정이 표출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폴란드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한다. 2차 세계대전, 공산주의 체제를 거치는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도 폴란드 예술가들은 나름의 형식과 개성을 찾아 작품세계를 이루어 나갔다. 특히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 1950~1960년대 폴란드 포스터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조형언어를 통한 지적이고 간결한 메시지 전달로 단순한 선전이나 정보 전달의 도구를 넘어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준다. 이는 ‘폴란드 포스터파’라는 사조를 만들어 낼 정도로 20세기 후반 폴란드 예술을 대표하는 확고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 또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큰 전쟁까지 겪으며 그 과정 중에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나라 밖으로 밀반출되거나 사라져버린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온 폴란드 국민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으며,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며 의구심을 품었던 관람객들이 관람을 마치고 나가며 폴란드라는 이름을 마음 한구석에 새기게 만드는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의 힘은 실로 강력하다. 오랫동안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던 까닭에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인 거리도 멀었던 폴란드. 이번 전시로 그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