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3

배움
유물 타임머신03

호기심 소년의 시간여행 '분청사기편'

호기심소년 : 지금 ‘관요’라고 하셨는데, 그건 뭔가요?
유물박사 : 관요, 조금은 생소하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에 관한 책을 읽거나 전시에 가면 자주 보게 되는 단어죠. 뭘까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조선시대 때, 왕실과 중앙관청에서 사용할 그릇들을 제작하여 제공해 주던 곳을 관요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생산지로 제일 유명한 지역이 어딘지는 알고들 계시죠. 경기도 광주인데요, 토질도 좋고 지리적으로도 서울에 가까이 위치해 있는 이유로, 그곳에 요즘의 ‘국영 도자기 제작소’라 할 관요가 설치되어 조선시대, 왕실의 식사와 궁궐 내의 연회를 주관하던 사옹원에 500년 간 도자기를 제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사용하던 그릇들은 거의 다 이곳에서 제작되었던 것이지요. 그런 인연으로 요즘에도 경기도 광주는 도자기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거고요, 도자기 축제가 자주 열리는 겁니다.
백자 구름 용 무늬 항아리ㅣ조선 18~19세기ㅣ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기심소년 : 와우! 저기 좀 보세요, 선생님. 저 도자기는 뭔데 저렇게 큰 거예요. 저 항아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유물박사 : 아하! 저 항아리는 둥근 몸통이 꼭 보름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故 최순우 선생님이 ‘달 항아리’라고 이름붙인 조선시대 도자기인데요, 아마도 조선시대의 순백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한국적 미의식을 제일 잘 표현하고 있는 항아리라고 할 수 있으며, 국보랑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들도 몇 점씩이나 되는, 우리나라 백자의 대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큰 몸통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진짜 궁금하시죠? 도자기 제작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저렇게 큰 몸통을 한 번에 만들어 내기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워낙 도자기의 몸통이 크기 때문에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따로 만든 뒤 두 부분을 이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항아리에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금방 아시겠지만, 항아리의 중간부위에 몸통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이은 이음자국이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달 항아리는 주로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제작된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좀 전에 말한 경기도 광주에서 주로 만들어 궁궐에서 쓰였지만 조선시대 말기에는 사대부 집안에서도 젓갈이나 간장을 담아 보관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백자 달 항아리ㅣ보물 제1437호ㅣ조선ㅣ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기심소년 : 왕실에서 뿐 아니라 양반들도 관요에서 만든 백자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관요에서 만든 백자를 맘 놓고 사용할 수 있었나요? 그 사람들도 백자에다 간장 같은 걸 담아놓고 살았던 건가요?
유물박사 : 사실 관요에서 만든 백자를 일반 민가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건 조선시대 말기에 가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관요 말고도 각 지방에 ‘지방요’라고 하여 지방의 관청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도자기 제작소’가 또 있었는데요, 일반 평민들은 보통 그곳에서 제작되던 도자기들을 사용했고요, 놋쇠로 만든 유기그릇을 도자기 그릇과 같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질흙을 사용해 분청사기와 백자를 본 따 만든 옹기라는 질그릇이 서민들의 기본그릇으로 활발히 제작되어 널리 사용됐다고 하는데, 옹기는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만 쓰였던 것이 아니라 궁궐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6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궁중숭불도’라는 그림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에서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는 옹기가 백자와 더불어 궁궐과 민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조선시대의 도자기에 대해 이 정도로 끝을 맺고 다음에 한 번 더 만나 조선시대의 다른 백자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조금 더 해볼까 하는데요. 어떠셨어요? 오늘도 재미있으셨나요!
귀때 항아리ㅣ조선ㅣ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글: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MUZINE편집실
1 2 3
TOP

댓글 달기글자수 500자로 제한되며 욕설, 비방글은 삭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