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
64호
  • 이미지 누정문화 땅과물의 경계에서
  • 이미지 누정문화

    누정
    문화

    산야에 피어난 꽃소식이 들려와 들썩이는 마음이 들자 어 느새 경치 좋은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봄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흐르는 맑은 물과 선선한 바람이 부 는 곳을 향하면 대부분 그 길목 어딘가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난다. 관람객이나 등산객을 위하여 길가에 의자 나 전망대를 근래에 조성해 놓은 곳도 있지만, 바라보는 풍 광에서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정자 도 매우 많다. 이렇듯 자연에 둘러싸여 스스로가 자연의 일 부임을 느끼게 하는 정자는 누각( 樓 閣 )과 아울러 누정( 樓亭 )이라 통칭하기도 하는데, 이번호 뮤진에서는 수도 많고 의미도 컸던 누정문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 남원시 소재 광한루

  • 이미지 1.누정을 지은 까닭

    1.
    누정을 지은
    까닭

    누정은 현재 가장 많이 남아있는 우리나라 옛 목조 건축물로, 1970년 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에만 2,122개의 누정이 있다고 하니 일부가 소실되었을 것을 감안 할 때 더 많은 수가 존재했을 것이다. 각종 기록에는 누, 각 외에도 다양한 이름으로 누정을 기록하였는데, 여러 자료를 살펴볼 때 이층의 구조로 평지보다 높게 지어 올린 경우 누각이라고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는 공공의 장소로써 관청에서 세우고 관리하며 행사를 치루는 용도로 쓰이는 곳을 누각으로 칭하며, 개인이 사적인 모임의 용도로 쓸 때 정자로 구분한다.

    - 세검정도 중 부분 |
    유숙(劉淑, 1827-1873

    - 세검정도 중 부분 | 유숙(劉淑, 1827-1873

  • 이미지 생각을 나누다

    누정은 단칸의 정사각형에서부터 직사각형, 육각형, 팔각 형, 십자형, 부채꼴까지 다양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주로 궁이나 관에서 지어 관리하는 경우 다양한 형태와 화려함을 겸비한다. 그리고 누정을 짓는 목적도 다양했는 데 궁궐이나 관아에서는 공식적인 연회의 장소로, 사찰에 서는 입구의 기능과 종교 활동의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또 각종 계의 모임, 교육의 장소, 수련장, 방어와 감시를 위해 건립되기도 하였다.

    특히 누정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경치 감상과 선비들의 교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누정은 주로 산과 강 그리고 바다에 지어졌고 많은 경우에 땅과 물의 경계지점에 지어졌다.

    - 풍악도첩 중'백천교도'부분 | 정선(鄭歚, 1676-1759)

  • 2.
    옛 선인들의
    누정 이용법

    사람들은 보통 녹음이 짙고 물이 맑은 곳에서 휴식을 하고 안정을 얻는다. 선비들도 그러한 장소에서 문인으로서 혹 은 세상에 닥친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으로서의 활동 과 삶의 이치를 생각하기를 즐겼다. 높은 지대에 있는 계곡 의 물은 빠른 속도로 쉼 없이 흘러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아 야 하는 선비가 추구하는 경지로 인식되었고, 길게 뻗은 강 줄기나 끝없는 바다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해지는 자신을 돌 아보며 그 감상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개인이 건립하여 지 인들과 자연을 감상하고 이에서 깨달은 바를 적은 시를 ‘누 정시( 樓 亭詩 )’라고 따로 분류할 정도였는데, 이러한 활동 과 관련한 누정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고, 건축내력 및 일화 가 남아있다. 또한 누정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강학( 講 學 ) 과 친목모임인 계회( 契 會 )의 장소로도 쓰였기에 누정문 화에서 선비들의 활동은 큰 축을 형성했다.

  • 이미지 우리나라의 누정

    우리나라의 누정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 炤 知 王 , 재위 : 479~50 0) 이 488년 정월에 천천정( 天 泉 亭 )에 행차했다는 내 용이며, 천천정은 궁 안에 조성된 연못이나 물가의 가운데 나 곁에 지어진 누정으로 추정된다. 정사를 돌보는 왕과 관리의 휴식처이기도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직무에 임할 수 있는 장소,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자리였을 궁내의 연 못과 정자는 경복궁과 창덕궁 등에서 지금도 그 멋스러움 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미지 3. 박물관에서 체험하는 누정 문화

    3.
    박물관에서 체험하는
    누정문화

    도심을 떠나 먼 거리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의 정자를 찾는다면 더 없이 좋겠으나, 여건이 힘들다면 도심 한복판 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보자. 한국의 토종 식 물들로만 구성된 조경이 마련되어있고 연못과 정자가 있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 위치하여 멀리 남산 N타워까지 비추는 거울 못, 야외석조 물정원 쪽으로 접어들면 도착하는 작은 폭포가 있는 미르 못, 폭포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모이는 나들 못, 그리고 박물 관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면 만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한적 한 후원 못 등 네 개의 연못이 있다.

  • 이중 미르 못과 거울 못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이 조성되어 있는데, 용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미르’로 이름 지은 미르 못은 폭포와 주변을 한국적 산수정원의 핵심인 심산계곡( 深 山 溪 谷 )으로 연출하여 우리 전통 조경을 표현하였고 폭포와 연못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거울 못의 입구방향에는 2009년에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 하여 건립된 청자정( 靑 瓷 亭 )이 있다. 지름 150m에 이르 는 연못을 이 정자에 앉아 바라보면 물 위에 떠 있는 듯 착각 을 하게 되는데 주변을 높은 건물이 에워싸지 않아 바람이 불어오고 연못에 비치는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고 전시 또한 관람할 수 있으니 이 봄에는 박물관의 연못과 정자가 주는 휴식을 꼭 누려보기 를 권한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