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곡( 兮 谷 ) 최순우( 崔 淳 雨 , 1916~1984)는 무엇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가진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그것을 알리는 일에 공헌하였다. 그는 개성부립박물관에 방문 하였다가 우연히 당시 관장이었던 고유섭( 高裕燮)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술사 분야에서 활동하였는데 광복 후에는 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미술과장, 학예수석 연구실장을 거쳐 1974년부터 1984년 까지 제4대 관장을 역임하였다. 탁월한 심미안으로 한국의 도자기, 전통 목공 예, 회화사 분야에 학문적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국외순회전을 기획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데 기여 한 최순우는 미술품 각각에도 애정을 가지고 서술을 하였 다. 그가 쓴 글은 서정성이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전 시품들을 더욱 가까이 느끼도록 하 는데, 국립중앙박물관 곳곳에 자리한 그의 애정이 담긴 전시품들을 그의 설명과 함께 소개한다.
- 최순우 선생 사진
상설전시관 2층 회화실에서는 조선후기 화가 김두량의 그 림을 볼 수 있다. 도화서( 圖 畵 署 ) 별제( 別 提 )를 지낸 김 두량의 그림인 <긁는 개>는 다른 동물화에 비해 동작의 자 연스러움과 정밀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당시의 서양화 법을 받아들여 그린 것인데, 최순우는 이 작품에 대해 “조선 시대 회화에 나타난 차원 높은 해학을 보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가려운 데를 발로 긁적거리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 는 개의 모습에 익살기가 넘치고 있으며 이러한 화흥( 畵 興 )을 일으켰던 남리의 인품이 엿보여지는 듯도 싶다.”고 하여 해학적인 요소를 언급했다.
- 긁는 개 黑狗圖 , 김두량, 조선 18세기
목칠공예실에 전시되어 있는 <나전칠 봉황 꽃 새 소나무무늬 빗접>은 그저 나전칠 목함 같아 보이다가도 “소나무에 대나무 가지가 돋았는가 하고 보면 대나무 가지와 소나무 가지가 아래 위에서 서로 엇갈려서 우연이 아닌 멋가락을 피워 주고 있다. 하늘과 좌우 공간에는 낙엽도 같고 뜬구름도 같아 보이는 조각 구름들이 드문드문 장식되어 있고, 좌우의 가지에는 서로 바라 보며 도란거리는 겉부시시한 새 한 쌍이 있어서 이 풍경이 그 들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다.”라는 그의 서술을 읽으 면 새로운 감성을 느끼게 된다.
- 나전칠 봉황 꽃 새 소나무무늬 빗접, 조선 18~19세기
청동으로 만든 정병인 국보 제92호 <물가풍경무늬 정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당시의 특색 있는 무늬들이 나타나 있다. 특히 몸체에는 물가 생활에 관련이 깊은 소재를 배치함으로써 생동감 있고 조용한 물가 풍경을 주로 나타내는 것이 특징인데, 최순우는 “이 정병은 청동 바탕에 은실로 호수 언저리의 한가로운 자연 정취를 새겨놓은 보기 드문 가작으로 지금은 녹이 나서 연두색으로 변색한 바탕에 수놓아진 은색의 산뜻한 색채 조화가 우선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한다. 수양버들 긴 가지들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늪가에는 갈대숲이 듬성듬성 우거지고, 물 위에는 한가로이 떠 있는 산오리들, 늪으로 날아들고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이 동양화다운 포치로 아취있게 새겨져 있다.”라고 묘사하였다.
-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 12세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복숭아형 백자 연적과 보름달을 닮은 백자 달항아리는 3층 백자실에서 만날 수 있다. <소나무 매화무늬 연적>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이 전시품에 애정을 담뿍 담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고 귀엽지만 시원하게 그려놓은 청화에 대한 그의 서술을 보자.
“이 천도형연적은 크고 안정된 굽다리와 작고 맵시 있는 귓 대부리가 대조적이지만 수수한 몸체에서 돋아난 하나의 애 교로서 그 몸체와 잘 어울리는 것이 미소를 짓게 한다. 조선 초기의 백자연적에 청화 그림을 그린다는 일은 매우 드물며 마치 수묵을 쓰듯 회화적인 감정을 담뿍 싣고 그려 놓은 문 기 높은 청화색 검푸른 소나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속이 후 련해진다. 옛 도공은 이 연적의 주인이 이 그림을 바라보며 조석으로 솔바람 소리를 즐기라고 했다는 말인가.”
- 소나무 매화무늬 연적, 조선, 15~16세기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적인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예술품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 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 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다.”라고 그 정서의 근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는데 규모 때문에 몸통을 반으로 나누어 만들어 붙이는 탓에 그 둥근 형 태가 각각 달라 완벽한 대칭의 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멋을 설 명하고 있는 듯하다.
- 달항아리, 조선 18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