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5~6월, 꽃이 만개하고 그 무게를 못 이겨 고개를 숙입니다. 색색의 꽃과 그 형태는 언제나 눈을 사로잡고 그 향과 의미는 꽃을 기억하게 합니다. 요즈음은 서양의 꽃들을 많이 접하게 되지만, 실제로 문화재를 통해서는 화분이나 꽃다발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꽃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은 어디에 그리거나 새겨 넣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보기에 좋다는 이유에 더하여 각각의 문양이 상징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꽃들도 종류에 따라 각각 장수, 신중함, 자손번성, 미인 등 다양한 대상을 나타냅니다. 이는 건축, 일상의 다양한 배경이나 용품들에 삼다신앙(三多信仰)을 반영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다신앙은 행복하게 자손을 많이 얻고 장수하며 대대손손 잘 살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 삼다신앙에 근거해 다양한 자연의 요소들이 유물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이번호 뮤진에서는 그 중에서도 부귀영화에 대한 바람을 담은 '화중왕(花中王)‘ 모란을 주제로 한 E-특별전을 진행합니다.

중국 수나라 때 재배를 시작하고 당나라 대 크게 유행했던 모란(牧丹)은 그 모양과 상징을 나타내는 아주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요? 화왕(花王), 백화왕(百花王)은 꽃 중의 으뜸이란 뜻이고 부귀화(富貴花), 부귀초(富貴草)와 같이 귀한 이름임을 단 번에 알 수 있는 명칭은 왕과 고위직으로부터 사랑받아온 내력에서 온 부귀영화에 중심을 둔 이름이며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요황(姚黃), 위자(魏紫), 양귀비와 관련 있는 일화에서 비롯된 일녑홍(一捻紅)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또 생김과 목을 혼합하여 부르는 목작약(木芍藥)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모란과 작약을 모두 피오니(peony)로 통칭하고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구별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하나의 꽃이 많은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그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양귀비를 사랑했던 당의 현종(唐玄宗)이 모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기에 미인이라는 의미, 천상이라는 의미에 관련한 이름을 짓고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이 여러 문학작품과 고위층으로 하여금 언급하거나 선호하게 했을 것이며 이런 점이 모란을 부귀의 상징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갖가지 염원을 담아, 바람 하는 바를 담아 그림을 그리고 축하를 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특히 혼례의 배경이 되어 주는 병풍에 장수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그림이 그려진다면 자손번성을 빌어주는 혼례절차와 더불어 더할 나위 없는 삼다신앙의 실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란도는 모란만을 그린 것도 있지만, 괴석과 혹은 사군자와 함께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모란이 괴석과 함께 그려진 경우 ‘석모란도’라고 별도로 칭하기도 하며 색이 다른 두 괴석이 각각 남녀를 의미하여 혼례에 쓰이곤 했습니다. 모란도가 병풍으로 제작될 때에는 몇 가지의 모본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여러 폭의 모란이 유사하게 그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화면 가득히 풍성하게 자리를 잡은 모란꽃은 먹으로 그린 모란도와 달리 민화와 같은 강렬한 색감을 지닙니다.

큰 모란도 병풍은 궁에서 많이 쓰여 따로 ‘궁모란도’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화제에 해당하는 분명한 바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요즘처럼 정보교류가 활발하여 손쉽게 지식을 습득하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대에서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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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에는 산수나 고사를 표현하지 않은 경우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 포도 등의 줄기 혹은 넝쿨과 같은 식물의 문양을 이용한 반복적 장식이 쓰였습니다. 특히 상자에는 유사하게 반복되는 문양이 나타납니다.
나전 모란넝쿨 무늬 상자는 외함이 내함보다 크게 만들어져 내함을 완전히 덮는 형식으로, 다섯 면에 시문이 가능한 상자입니다. 이러한 상자에는 때로는 윗면과 옆면에는 다른 문양이 쓰이기도 하지만 이 상자는 다섯 면이 모두 꽃의 줄기라기보다는 넝쿨이라 할 만한 문양이 모란꽃을 둘러 꾸미고 있습니다. 넝쿨무늬는 지속해서 반복되는 것으로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란은 회화적인 표현에서 보이는 둥글고 흐드러진 형태가 아니라 다소 날카로운 형태로 잎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나전기법의 특성상 여러 잎을 겹쳐 표현할 수 없고 선묘가 되는 경우 완성도가 낮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윗면의 네 모서리는 경계를 알 수 있도록 다른 방식으로 꾸며 옆면과 구분하고 있고, 꽃은 옆면과 동일하게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보도록 배치하고 S자 형태로 두 꽃봉오리를 감싸 돌며 넝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란에 넝쿨이 함께 쓰였다는 것은 부귀영화의 지속을 바란다는 것 이지요. 넝쿨식물이 아니고 줄기는 나무와 같아서 목작약(木芍藥) 이라고도 불리는 모란이니 이러한 조합은 의미의 완성을 위한 의도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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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백자하면 단순한 형태와 기법의 ‘절제미’가 떠오릅니다. 반복되는 모양의 투각 도자기 특히, 청자는 쉽게 떠오르지만 청화백자에 모란 넝쿨무늬를 투각기법으로 게다가 이중기(二重器) 구조라니, 정말 보통의 기술과 정성으로는 제작될 수 없는 항아리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위아래에서는 안정감을 주는 한편 모란 꽃 한 송이의 좌우 꾸밈이 다른 정도의 변화를 주었고, 양감이 가장 좋은 위치에 꽃을 두는 것으로 외부 곡선 실루엣을 최대한 살린 문양의 배치에서 그 세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꽃잎과 넝쿨 표면에 동일한 간격의 선을 방향성 있게 그려 넣어 무늬에 동세를 부여한 점도 장인의 섬세함을 짐작케 합니다. 도장을 찍듯이 완전히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집중을 요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마에서 굽는 동안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손상되지 않을 정도로 기면이 충분히 남았는지 완전히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드는 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상상하게 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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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모양과 닮아서 자라병이라니, 참 직관적이고 편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만큼이나 분청사기라는 형식이나 박지라는 방법, 다소 편안해 보이는 느낌의 선으로 꾸민 모란이 한눈에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안에 든 액체가 쏟아지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목을 쭉 빼서 쳐들고 있는 것 같은 모양입니다. 자라의 배 부분처럼 등보다는 곡률이 낮으며 굽다리가 얕은 아래쪽은 당초문이 둘러져있으나 많이 산화되었습니다. 회청색이 아래와 윗면 경계부분에 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래와 위 각 면 쪽으로 두 개의 선이 밝은 색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모란무늬가 그 위에 표현되어 있어 꽃문양을 살릴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 안쪽으로는 문양 외 부분의 검은 철채(鐵彩)와 모란이 대비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차분한 형태와 색상에 생기를 부여합니다. 정제되어있고 치밀한 선이 아니라 편안해 보이는 열린 면을 포함한 문양에서 왠지 친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부족해서 발생한 틈이 아니라 잘 계획한 가운데 자유로움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끈 하나 동여매고 턱하니 어깨에 걸쳤던 자라병을 내려 술이나 물로 목을 축이는 사람에게 당신이 꾸는 부귀영화의 꿈을 함께 꾸겠노라 말할 것 같은 친숙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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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