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7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II

특별전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표암 강세황

18세기 예원의 총수

전시명
시대를 앞서 간 예술 혼, 표암 강세황 a painters life: kang sehwang and literati culture in the 18th century
전시기간
2013.06.25~2013.08.25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특별전시실
전시유물
강세황 초상 등 보물 6점 포함, 회화 및 자료 103점

올해는 ‘18세기 예원의 총수’라고 불리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의 탄신 3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1700년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서화가이며 동시에 높은 감식안을 지닌 서화 평론가로 활동했던 강세황의 궤적을 따라 18세기 조선의 문예계를 살펴보자.

강세황을 만나다

전시실을 들어서면 유사한 크기의 섬세한 초상화 2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그린 인물화임에도 화면 속의 인물은 놀라울 만큼 유사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을 그린 두 분 모두 대단한 표현력을 지니셨구나 싶으면서 동시에 화면 속의 인물은 실제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가와 입가의 주름으로 보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주인공은 약간 길고 마른 얼굴에서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애로워 보이지만 고집 세 보이는 인상. 표암 강세황의 모습이었다. 바닥에 편히 앉은 자세의 옥빛 도포 속 자화상과 호피의자에 꼿꼿이 앉은 자세의 짙은 녹색 관복 속 초상화는 유사해 보이는 오사모를 공통적으로 쓰고 있었다. 특히 관모와 평상복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자화상에는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조정에 이름이 올랐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두 화면 속 인물이 전하는 공통된 인상과 자화상에 담긴 작가의 생각을 마주하며 주인공 강세황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인물에 대한 이해

전시는 한 시대를 오롯이 살아낸 문인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그의 가문과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사대부집안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강세황은 물론 할아버지 강백년(姜栢年, 1603-1681), 아버지 강현(姜鋧, 1650-1733)의 관직 임명 교지와 각종 필묵이나, 손자 강이오(姜彛五, 1788~?), 강이천(姜彛天, ?~1801), 증손자 강진(姜晉, 1807∼1858)까지 화업을 이어 활동한 모습 등은 평생 시·서·화를 곁에 두고 문인의 삶을 살았던 표암의 삶을 방증시켜 주었다. 특히 조부와 부친에 이어 강세황까지 삼대가 연속으로 70세 이상, 정2품 이상의 관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며 ‘삼세기영지가 三世耆英之家’의 영광을 누렸다는 자료들은 당시 강세황이 속했던 진주 강씨 가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32살이 되던 해부터 30여년을 처가가 있는 안산에서 지냈던 강세황은 처남 유경종(柳慶種, 1714-1784)과 어울리면서 서화 감식안을 키우고, 벗 심사정(沈師正, 1707~1769), 허필(許佖, 1709~1768) 등과 시간을 보내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으며, 안산 지역에서 열리는 시회에 참석하여 훗날 "안산15학사"라 불리는 문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평생을 이어간 다양한 교우관계는 강세황의 문예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강세황의 시(詩) · 서(書) · 화(畫)

우금암도 禹金巖圖 (부분) / 강세황 / 1770~1771년 / 종이에 먹 / 28.6×358.8 cm / 미국 LACMA 소장

강세황은 문인예술의 중심인 시(詩) · 서(書) · 화(畫)가 모두 뛰어난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그가 활동했던 18세기는 유람을 즐기며 실경산수를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강세황 역시 송도(지금의 개성), 전라북도 부안, 금강산 일대 등을 다니며 현장을 꾸밈없이 그대로 사생하였다. 간결한 필치에 맑고 담백한 묵법을 보여주는 그의 산수화는 화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구도와 묘사가 돋보이는데,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소장의 ‘우금암도 禹金巖圖’는 아들이 부안현감으로 재임당시 강세황이 이틀에 걸쳐 전북 부안의 변산 일대를 유람하며 그린 것으로 이 지역을 그린 실경산수화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사군자도나 화조도 등의 그림에서는 소재와 채색 구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추구했던 강세황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봉숭아, 해당화, 무 등 참신한 소재를 선택하고 산뜻한 노란색, 푸른색 등 감각적인 담채를 선보인 그의 그림은 문기를 잃지 않으면서 개성적인 필치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시원시원한 구성과 완숙한 필력으로 스스로도 가장 자신 있는 장르라고 했던 ‘난죽도 蘭竹圖’나 사군자의 의미를 살려 ‘매난국죽 梅蘭菊竹’을 한 벌로 그린 그림 등은 문인화가 강세황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강세황은 한양과 안산에서 폭넓게 교유했던 여러 문사들과 그림을 감상하고 예술을 논하면서 감식안을 키워갔다. 스스로의 작가적 경험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격조 높은 안목으로 다듬어진 감식안은 그가 지닌 문예적 소양을 만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의 화평으로 이어졌다.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강세황의 평가는 솔직한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평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사상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문인이 18세기 화단을 조망한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조선시대 회화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된다.

전시에서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문장을 보여주는 강세황의 자필 화평을 확인할 수 있는 조선 후기 화가들의 작품을 선별하여 볼 수 있다. 작가와 작품을 밀도 있게 파악하고 그 특성을 간명하게 포착한 표암의 평어는 당대인의 시각으로 조선후기 회화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문예전반에서 역동적인 변화가 꿈틀댔던 18세기 조선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리고 전시장을 나올 때쯤이면, 탄생 300년을 맞이한 ‘18세기 예원의 총수’ 강세황의 생각과 사상을 따라 긴 시간여행을 마무리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사람과 자연을 좋아하며 품격 있는 예술세계를 이룬 표암 강세황의 생애와 배경, 사상과 작품을 총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한 시대를 살아낸 문인의 삶을 오롯이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