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7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만남에 앞서

한국 건축의 마음을 읽다

첫만남

우리 옛 건축 연구가

폭넓은 사유와 유려한 문장으로 우리 옛 건축에 생명을 불어 넣는 건축학자 김봉렬 교수님을 만났다. 여름을 향해 치닫던 유월의 어느 봄날, 인터뷰를 위해 찾은 한국종합예술학교 석관동 캠퍼스 미술원 건물에 자리한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고전과 현대물을 가리지 않고 철학, 역사, 미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어 소규모 인문학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군데군데 놓여있던 몇 개의 건축 모형과 스케치, 그림 몇 장이 이 공간의 주인이 건축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케 해주었다.

우리 옛 건축 연구가

양동마을 ‘관가정’ 문화재청 제공

김봉렬 교수는 우리 전통 건축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깊이 있으면서도 쉬운 강연과 저서는 정치와 종교, 문화와 사상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통찰을 기반으로 시각과 청각을 동원하는 감각적 건축체험을 깨우쳐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적인 건축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서구적인 건축물이 유행하던 1980년대 건축학과에서 김봉렬 교수가 우리 옛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된 극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는 대학원 답사로 찾았던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觀稼亭)에서 이전에 체험해 보지 못한 번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의 느낌은 옛 사람들이 살던 주택의 단순함이 주는 복잡 미묘한 다양함이었고, 이는 곧 기술위주의 건물에서 아쉬웠던 공허함을 채워주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날의 설레는 경험은 촉망받던 젊은 학생을 수많은 현장 답사로 이끌었고, 그렇게 직접 익힌 체험을 통해 그에게 우리 옛 건축 이해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건축이란

양동마을 ‘관가정 부엌’ - 문화재청 제공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건축의 가치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가 익힌 옛 건축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몸으로 체득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공간을 가득 채워 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건물은 한 사람의 온전한 삶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건축의 온전한 의미를 찾는 행위는 그 곳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이는 곧 건물이 보여주는 형태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집주인의 생각과 그가 살던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는 것이 옛 건축 이해의 첫걸음이라는 설명이었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옛 건축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여과장치를 거쳐 선택적으로 살아남았으므로 남아있는 유물은 사회적 예술로서 시대의 생각이 담겨 있음을 역설했다. 연구실 공간의 다양한 책이 보여주듯, 김봉렬 교수에게 건축이란 사람이 숨 쉬는 인문학의 결정체였다.

한국 건축의 전통과 계승

양동마을 ‘심수정 전경’ - 문화제청 제공

우리 옛 건축을 바라볼 때, 낯선 감상자의 시선을 넘어 제작자와 사용자의 측면에서 공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김봉렬 교수의 지론은 전통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불교사찰과 유교사원이 다르고, 경화사족의 주택과 사대부의 주택이 다르며 양반과 중인의 공간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배경을 이해하면, 형태나 재료를 넘어 다채로운 사상과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건축물일지라도 한국 전통 건축이 공유하는 특징적인 요소는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건물과 건축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어서 건물과 건물의 관계가 중시되며 이들이 합쳐져 전체 공간을 생성하는 집합적 건축개념이 적용된다는 것과 우리의 건축은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공간이 놓인 환경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전통 한국 건축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개념이며, 또한 우리가 현대 건축에서 전통을 계승하는데 잊지 않아야 할 요소이기도 했다.

김봉렬의 문화재

대동여지도 - 1861년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에 대해 질문을 하니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을 해주었다. 건축은 산줄기와 물줄기를 따라 이 땅의 질서를 읽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라는 부가설명은 우리 산천을 사랑하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건물을 이해하는 옛 건축 연구가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밖에도 김봉렬 교수는 대표적인 건축문화재들로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仙巖寺)와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던 경주 양동마을의 ‘관가정’을 꼽았다. 두 곳 모두 거주하던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주인이 마음이 읽히는 공간일 듯싶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봉렬 교수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개개인은 모두 다르고, 자신이 지내는 공간을 꾸미는 방법 역시 다르기 때문에, 뚜렷한 용도를 가지고 지어진 공간은 지은 사람의 입장에서 느껴보아야 건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 한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옛 건물을 바라 볼 때, 그 건물을 짓고 살았던 주인은 어떤 생각을 했으며, 그가 속해있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해 보는 것이 생활공간으로 건축을 이해하는 바른 길이라는 말씀은 우리 옛 건축을 단순한 관광 상품처럼 대하며 요즘의 시각으로 외관과 멋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 MUZINE 편집실 : 촬영     아메바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