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6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I

특별전.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혼성문화의 결정체, 페라나칸의 전시현장 속으로

전시기간
2013. 3. 19~ 5. 19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전시유물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 산하 페라나칸박물관 소장품 230점

조용하고 단아한 느낌의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실 복도에 강렬한 핫 핑크색 배너가 걸렸다. 진한 노란색으로 쓰인 ‘페라나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 왔다. 산뜻하면서도 낯선 배너와 단어가 궁금해졌다. 상설전시실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전시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사람과 문화를 다루는 전시

전시실 입구 로비에는 천장까지 올라간 하얀 벽면에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다. 어린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흑백과 컬러를 막론하고 일제히 벽을 장식한 사진 아래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출생 등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곁들어져 있었다.

전시실 외벽에 붙은 서문을 읽으니, 싱가포르라는 지역성과 다문화 사회라는 특수성을 포함한 전시의 큰 주제는 사람과 문화였다. 전시 제목에 등장한 ‘페라나칸’은 말레이어로 ‘현지에서 태어난’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해상 무역이 활발했던 싱가포르에서 19세기 영국 식민정부와 강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활약했던 중국계 페라나칸의 문화를 조명하는 전시였다.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전시 포스터

혼례-페라나칸에 대한 이해의 시작

  • 혼례실(신방)
  • 신랑, 신부 소지품, 허리띠 등
  • 신부 머리장식과 머리 띠

전시실로 첫 발을 내딛으면 강렬한 핑크색조의 벽에 그려진 동남아시아의 지도가 눈에 띈다. 지도를 살펴보면 동양과 서양을 잇는 활발한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외국 상인들의 출입이 빈번했던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다른 민족과 문화에 관대한 그들 사회의 개방성을 짐작해본다.

전시실 정면에는 혼례복을 입은 신랑신부의 모습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외국계 아버지와 현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후손을 지칭하는 페라나칸에 대한 전시가 혼례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설명문에 의하면 혼례복에는 중국과 현지 복식 스타일의 영향이 혼합되어 있다고 한다. 현지 여성과 외지 남성의 혼례는 남성이 지녔던 외지의 전통을 현지에서 수용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과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 혼례실(신방)
  • 신랑, 신부 소지품, 허리띠 등
  • 신부 머리장식과 머리 띠

패션과 공예-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현지 여성의 문화

  • 케바야와 사롱(전통의상)
  • 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 송옹시앙의 초상화
  • 꽃이 그려진 주전자와 찻잔 세트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혼례식에서는 외지의 전통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면, 현지 여성과 결혼하고 현지에서 생활하는 다문화 가정의 세부적인 의식주에는 현지의 전통이 더 많이 엿보이기 마련이다. 여성을 지칭하는 뇨냐의 패션과 공예는 페라나칸의 세부문화에 반영된 말레이의 전통을 보여준다.

말레이 전통 복식을 기본으로 한 뇨냐의 패션은 시대에 따라 중국식 혹은 일본식 무늬를 넣은 옷감을 사용하기도 하며, 그들이 착용했던 보석 장신구는 말레이, 중국, 유럽의 영향이 섞인 혼합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공예미술에서도 페라나칸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데, 자수와 구슬 공예품 그리고 그들의 취향을 담아 주문 제작된 화려한 “뇨냐자기”를 감상할 때 즈음에는, 이러한 일련의 ‘뇨냐’문화는 상업을 기반으로 한 페라나칸들의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케바야와 사롱(전통의상)
  • 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 송옹시앙의 초상화
  • 꽃이 그려진 주전자와 찻잔 세트

페라나칸 전시를 돌아보며

페라나칸의 문화는 단순히 중국과 말레이의 문화가 결합된 것을 넘어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실에서는 엘리트 무역상이거나 도시적인 사업가였던 페라나칸들이 유럽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영어를 습득하고 서구식 복장을 했으며, 테니스나 크리켓 등의 스포츠를 즐겼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또한 서구식 주택을 짓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을 풍미했던 아르누보 양식을 받아들이며 국제적인 유행을 따랐던 페라나칸들의 생활상과 함께, 양복을 입고 중국식 의자에 앉은 등의 모습으로 그려진 그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이는 현지의 문화 위에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나가는 페라나칸의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그 자체로 그들의 정체성을 반영한 전시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다문화, 혼합문화를 보여주는 페라나칸 전시는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 형성된 제3의 문화가 편견 없는 수용을 통해 발전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람자에게 개방과 수용에 대한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글-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MUZINE 편집실 / 촬영-아메바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