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일용직 연구원으로 들어와 2003년 '한국문화의 1번지'인 중앙박물관의 수장이 되기까지 33년이란 세월을 박물관과 함께 해오셨 던 이건무 전 관장님. 특히 한국 문화계 최대 사건중 하나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재개관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던 진정한 ‘박물관맨’ 이건 무 전 관장님을 뮤진 MUZINE이 만나보았습니다.
답변 사실 여러 직종을 거치긴 했지만 궁극적인 분야는 하나로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전공이 고고인류학인데요. 제가 졸업 할 당시에 고고학도는 박물관 외에는 취직할 곳이 없었어요.(웃음) 고고학은 옛 사람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해서 현재를 분석 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박물관에서 임시 고용직으로 출발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와 연결된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죠. 박물관장이나 문화재청장 등을 몇 년씩 맡아서인지 저를 ‘문화행정가’로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고고학자로 불리는 것이 더 좋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답변 물론 학예연구사로 제가 발굴에 참여했던 유물들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도 볼 때마다 뿌듯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재개관이 가장 기억에 남죠. 물론 이 사업은 전임 관장님들 때부터 계획되어 저의 관장 재직 당시 에 마무리 된 것이기는 합니다. 당시 다른 많은 직원들과 함께 제때에 문을 열수 있을까 하면서 마음 졸이며 준비해 60년 만에 제대로 보금 자리를 찾아 안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관람객들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박물관이 있었다니!’하면서 감탄해 마지않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국립중앙 박물관 용산 재개관 4첫날 몰려든 관람객들의 행렬
답변 저희 때도 고고학이나 미술사학 전공자들은 박물관이나 연구소 또는 발굴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 정도 밖에 일할 곳이 없었죠.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졸업생들은 전공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유학을 가기도 했고요. 지금은 개발 사업들이 줄어들다보니 발굴현장에서 일할 기회는 많이 줄어든 것 같고, 그런데 박물관 관련학과들이 많이 생겨나 포화상태이다 보니 전공자들이 진출할 곳도 적어지고 대우도 그다지 좋지 않은 편입니다.
사회가 다변화됨에 따라 학교도 학생도 이에 맞추어 전공 주변의 학문에도 관심을 갖고 견문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대학에서는 전공을 너무 세분화해 한계를 긋지 않고 다양한 과목을 학생들이 폭넓게 공부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편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고고학과라 하더라도 박물관학이나 전시기획 같은 분야를 같이 전공하게끔 해서 사회진출의 기반을 넓혀줘야 하는 거죠. 물론 졸업하고 당장 전공을 살리지 못했을 때 많이 괴롭죠. 하지만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견디는 시간을 지나야 하는 것 같습니다.
답변 제가 떠난 이후에 박물관을 지켜보면서 많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좋은 전시로 관람객들도 많이 불러들이고 개편된 시설들이나 증가된 교육프로그램들도 박물관의 발전과 변화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근래에 개최된 특별전들이 해외의 좋은 미술품들을 들여와 국내 관람객들에게 선보여 다양한 문화를 간접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게 보고 있습니다. 다만 전시의 흥행도 좋지만 학예연구사들이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관람객을 배려하여 심도 있게 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만의 전시가 많이 개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이제는 ‘문화행정가’에서 ‘일반인’으로 돌아와 청동기시대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자로서 책 한권을 펴내고 싶다는 바램을 피력하신 이건무 전 관장님. 그와의 인터뷰는 한 분야에서 꿋꿋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내공과 연륜을 엿 볼 수 있었던 마음 충만한 시간이었다. 특히 밑에서부터 차분히 밟아 올라온 그의 외길인생은 ‘박물관人’을 꿈꾸며 자신의 역량을 열심히 갈고 닦고 있을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