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9호



조선 시대에는 재난과 질병으로 뜻하지 않게 죽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절에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불교 의식들이 이루어졌습니다. < 감로도>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이들이 천상의 세계인 극락세계에 갈 수 있도록 기원하며 그려진 불교회화 중 하나입니다. 조선 시대 그려진 이 < 감로도>는 누가 그렸는지 알려지지 않은 필자 미상의 작품으로 삼베에 채색된 것입니다. 부처의 세계, 재단과 법회, 윤회를 반복하는 세계가 상중하로 펼쳐지는 삼단(三段) 구성으로 이루어져 화면 가득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진 < 감로도>를 확대해보겠습니다.

< 감로도>는 효심이 지극한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화면 상단 오른쪽을 보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한 승려가 보입니다. 이 승려는 부처를 따르던 열 명의 제자 중 하나인 목련존자(木連尊者)입니다.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빠진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귀도에 빠지면 늘 굶주림의 고통에 허덕입니다. 목련은 어머니의 고통을 대신하고 싶었지만, 효심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며 현세의 대중 스님들의 위력으로 구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 감로도>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그려진 그림으로 아귀지옥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것입니다.

화면 정면 가운데 원 모양 안에 그려진 것이 아귀입니다. 마치 불길에 사로잡힌 것 같은 모습으로 양손을 모아 곡식을 꼭 쥐고 있습니다. 아귀의 세계는 배고픔의 고통을 가장 극심하게 맛보는 지옥 중 하나입니다. 천상과 대비되는 곳이기도 하며 이 아귀는 목련존자의 어머니이자 모든 영혼을 상징합니다. 이곳으로 온 사람은 먹지 못하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아귀 뒤로 무섭게 타고 있는 불길은 두려움을 느끼도록 표현한 것으로 중생을 선도하는 역할로 더욱 강조되어 표현했습니다.

< 감로도>는 불교의 우주관을 삼단의 공간 확보를 통해 표현하는데 시간의 이동을 수직 상승구조로 한 화면에 모두 나타냅니다. 먼저 화면 하단 오른쪽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고통스러운 경험과 죽음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하단 모서리에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는 중생의 모습을 비롯하여 그 옆으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묘사했습니다. 집이 무너져 깔려 죽기도 하고, 나무에 끈을 매달아 죽는 장면도 있습니다. 주인이 노비를 때려죽이거나, 잘못된 치료로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입니다. 남편이 오른손에 몽둥이를 든 채 부인을 짓밟고 어린아이 둘이 부모의 싸움을 말리기도 합니다. 뜻밖의 죽음 장면은 자연재해, 사고, 자살, 타살 등 여러 가지입니다. 이 모습은 중생의 모습임과 동시에 곧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하단 왼쪽 화면에서는 연희패, 곡예단의 모습이 보입니다. 연희패는 주로 근심을 풀어주는 가무악을 하는 인물입니다. 청중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이들과 함께 굿과 점을 치는 장면도 포함되었습니다. 굿을 하는 무녀, 무악을 연주하는 악사, 줄 위에 물구나무서 다리 벌리는 묘기를 부리는 재주꾼, 그 아래 부채를 펴들고 장고를 맨 사람, 붉은 탈을 쓴 탈광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붉은 부채를 들고 앉아 모닥불을 쬐고 나머지 한 사람은 춤을 춥니다. 탈광대 아래로는 신녀(神女)가 등장합니다. 양 옆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무녀(巫女)와 무부(巫夫)도 있습니다. 춤추는 무녀는 양손에 종이돈 줄을 아래로 향하도록 잡고 있으며 옆으로 각각 징을 치는 사람과 장구재비가 보입니다. 탈광대 위쪽에는 아기가 있는 부부 판수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인이 앉아서 왼손에 반쯤 접힌 부채를 잡고 검은 삿갓을 쓴 남편은 왼손에 산통을 끼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으며 아이가 아비의 지팡이 끝을 잡고 길을 인도하는 중입니다. 이 밖에도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 둘이 지팡이를 짚고 길을 가고 있는 모습 등 다양하고도 사실적인 묘사로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이룹니다.

화면 가운데 왼쪽 가장자리를 보면 형벌을 받는 이들이 보입니다. ‘확탕지옥’이라고 하여 펄펄 끓는 솥에 삶기는 형벌을 당하는 지옥에 있는 사람도 있고, 거센 불길에 사로잡혀 화형 당하는 이들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뱀에 물려 죽는 모습도 그려졌습니다.

불꽃에 갇힌 절박한 아귀상과 그 고통을 헤아리기라도 하는 듯 상단에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는 보살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목련존자 옆으로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며 가운데 일곱 여래는 감로를 베푸는 주체입니다. 상단 좌측의 두 인로왕보살은 죽은 뒤의 영혼을 극락세계까지 안내하는 이들입니다.

이 < 감로도>는 전체적으로 전면에 산악을 배치하고 지그재그로 멀어지면서 산맥을 이루게 하여 깊숙한 골짜기를 연상시키도록 구성하였고 그 사이로 중생의 군상이 펼쳐진 모습을 황토색 바탕에 녹색, 주황색으로 표현하여 선명하고 편안함을 줍니다. 핏자국까지 선명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육도(六道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회화 중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인간의 모습은 불교의 이념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지만 당대의 생활 감정과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풍속화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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