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9호


부채는 예로부터 멋과 풍류가 그득한 선비들의 애용품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 선조는 여름 기운이 시작할 때 즈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더위를 식히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뛰어난 기술로 다양한 부채를 만들었고 또 부채를 통해 멋을 살릴 줄 알았습니다. 부채 면에 시를 적거나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어울리는 시 구절을 함께 적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도구가 아닌 선조의 지혜와 예술적 표현이 담긴 전통 부채의 멋을 E-특별전에서 살펴봅니다.

문인화가로서 시, 서화 삼절의 경지에 오른 강세황이 그린 전체 16점의 부채 그림 중 하나인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입니다. 16점의 그림은 산수 8점, 화조영모((花鳥翎毛) 8점으로 구성되었고 각 그림의 내용에 맞는 시가 적혀있습니다. 현재는 3점만 남아 있으며 그 중 일반산수화로는 유일한 작품입니다. 화면 가까이 보이는 경치에는 나무와 흙으로 쌓아 올린 둑, 중간에는 수면과 산, 그리고 수면 위 작은 배를 그렸습니다. 나무를 크게 그렸으며 멀리 산과 나무 아래 흙으로 올린 둑의 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화면이 평면화되어 보입니다. 수풀과 멀리 마을, 그리고 작은 배 위에서 고기 잡는 어부에게 시선이 옮겨지게 함으로써 아름다운 산수 속에 있는 어부를 부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렸고 그 마음을 담은 시를 오른쪽에 길게 써넣었습니다. 엷은 녹청색과 황색으로 나뭇잎에 색을 넣었으며 선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나무를 그릴 때 찍는 가로 점에서 전형화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강세황의 능수능란한 필선과 담채의 활용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작품으로 산뜻한 가을풍경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부채 면에 나비를 그린 작품입니다. 김홍도는 영모도나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에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개, 고양이뿐 아니라 제비꽃, 나비를 표현한 그림에서도 실물과 같은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오른쪽 하단에 '임인추사능사(壬寅秋士能寫)'의 간기(干紀)와 관서(款署)로 김홍도가 38세에 그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채의 둥근 선, 오른쪽 아래 비스듬히 찔레꽃을 그리고 왼쪽에 호랑나비 세 마리를 그렸습니다. 그 사이 여백을 두어 강세황과 또 다른 인물이 글씨를 남겼습니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은 “나비의 가루가 손에 묻을 듯하다. 인공이 자연의 조화를 빼앗기 족함이 이에 이르러 경탄하여 한 마디 쓴다.”라고 남겼습니다.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산뜻한 구성을 보이고 바탕과 선명한 채색이 함께 어우러져 색채의 아름다움 또한 뛰어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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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이 그린 금강산 진경산수화 중 가장 이른 시기인 30~40대작입니다. 화면에 ‘진주담(眞珠潭) 병윤사(丙閏寫)’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를 보고 병자년 윤유월에 그린 것으로 추측, 금강산 만폭동 팔담(八潭) 중 백미로 알려진 진주담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김윤겸은 금강산 및 관동팔경, 한양 일대를 두루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시와 산문으로 쓰기 시작했고 실제 풍경에 근접한 그림을 함께 그렸습니다. 암벽 사이로 흐르는 폭포, 오른쪽 아래 폭포를 감상하는 인물을 그렸고 그 뒤에 만물상과 금강산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러한 구성은 당시 그려진 그림과 유사하나 경치와 물체가 가진 특성을 강조한 것은 김윤겸만의 특징입니다. 대상의 치밀하지 않은 가벼운 표현과 바위에서 몇 차례 중복한 붓질로 입체감을 표현했으며 이는 습기가 많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바위, 바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소재로 둥글둥글하면서 간략하게 처리한 외곽선과 대상을 생략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기행사경화의 대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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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그림입니다. 9세기 초 신라시대에 창건된 가야산 기슭의 해인사를 그린 것입니다. 정선은 41세에 첫 관직을 얻은 후 영남지방에서 7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하며 일대 명승고적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와 함께 진경산수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으로 해인사를 아주 상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화면의 중심이 부채의 중앙에 있어 마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줍니다. 해인사의 가장 큰 절당인 ‘대적광전’은 그림 속에서 2층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현재는 단층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1817년에 불타버려 이듬해 중건되었으나 정선이 화재 이전에 그린 것이라 2층 대적광전이 더 눈에 띕니다. 해인사 재당을 중심으로 계곡, 단풍 경치를 두드러지게 표현했고 맑은 산과 산 사이에 정형화된 표현, 선면 중앙 실제의 모습을 조금씩 변형해가며 그린 것은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특히 주변 산을 모두 미점(米點)을 써서 표현했으며 색색이 물든 단풍이 가을의 정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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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동과 이도영이 함께 그리고 이들의 스승 안중식이 글을 쓴 기명절지화입니다. 화면에 수박, 산딸기, 옥수수, 주전자, 물고기, 무 등이 그려져 있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주연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측합니다. 하나의 부채에 여러 화가가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며 함께 글과 그림을 넣은 것은 근대기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화면 오른쪽은 이도영이 그린 부분으로 물체의 음영과 입체감이 강조되지 않았지만, 담채의 표현이 아름답고 그의 필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은 고희동이 그렸으며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명암과 색의 표현으로 물체의 공간감을 드러냈으며 대상의 효과적인 배치로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서양화를 주로 그린 고희동과 전통 화법을 계승한 이도영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대조를 통해 조화를 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