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6호


유물박사 교실

뮤진 유물박사 교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곳은 뮤진 사이버 박물관에서 만나보았던 <E-특별전>과 <뮤진 확대경>을 또 다른 시각으로 만나보는 공간입니다. 우리 문화가 지닌 다채로운 매력 속으로 지금 들어가 볼까요?

이번호 뮤진확대경은 은과 동으로 입사한 손화로를 살펴보았습니다. 전면에 다양한 문양을 입사로 표현하였는데, 이번호 유물박사에서는 특히 화로 뚜껑의 사방 측면에 새겨진 박쥐문양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번호 E특별전에서는 겨울의 세시풍속에 해당하는 동지에 관련한 유물과 겨울을 화폭에 담은 풍속화, 세화로서 그려진 호랑이그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유물박사에서는 풍속화 속 인물이 방한용으로 썼던 모자에 대해 설명하면서 새해 왕실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벽사(辟邪)의 의미로 문에 붙이거나 선물했던 그림인 세화와 그 주제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박쥐가 복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박쥐를 뜻하는 한자인 편복의 복자가 행운의 의미와 같은 음이기 때문입니다. 두 마리의 박쥐는 쌍복(雙福)이라 칭했으며, 박쥐를 다섯 마리 표현하거나, 복(福)과 수(壽)자를 가운데 두고 박쥐 네 마리가 둘러싼 모양으로 만들어 오복(五福)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단순한 행운의 의미에서의 복합적인 의미인 오복은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에 의하면, 1은 장수(壽), 2는 부귀(富), 3은 건강하고 마음이 편함(康寧), 4는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음(攸好德), 5는 명대로 살다가 편하게 죽음(考終命)을 뜻합니다. 이 경우 편복문은 당초문이나 인동문의 중앙에 표현되기도 하고, 덩굴문이나 만자문(卍字紋)과 곁들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만대에 이르도록 장수하며 복을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의 박쥐문양은 다른 여러 문양과 합성하여 100여종으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뮤진확대경에서 소개한 화로 뿐 아니라 의복, 장신구, 가구장식, 건축물, 식기, 떡살 등에도 박쥐문양이 새겨졌습니다.
박쥐가 길상의 의미를 가지는 다른 이유는 풍수지리나 도교(道敎)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풍수지리설에서는 산의 모양이 박쥐와 같은 곳에 묘를 쓰면 후손들이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고 부귀를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거꾸로 매달려 자는 박쥐의 특징을 반영해서 박쥐의 복(蝠)자를 거꾸로 붙이면 집안으로 복이 들어온다고 믿기도 하며, 현대에도 드물게 복(福)자를 거꾸로 붙여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풍수지리적인 이유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도교에서는 박쥐를 신선의 화신이자 장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박쥐의 형태와 생태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로초를 닮은 박쥐의 날개나 쥐의 일종이면서 날 수 있고, 흔하지 않은 환경에서 거꾸로 매달려 살아가는 모습 등에서 이러한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박쥐는 야행성이라는 이유로 집을 지켜주는 수호의 상징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파가 매서운 겨울에 신소재를 사용해서 얇고도 따뜻하며 모양도 빼어난 여러 형태의 의복이 있습니다. 열이 발산되는 것을 막고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겨울모자가 있으며 목을 따뜻하게 해 주는 목도리도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방한용 의복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도 비가와도 섣불리 뛰지 않는다는 양반계층의 남성을 위한 방한의복 중 특히 머리와 목의 추위를 막아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휘항’입니다. 호항(護項), 휘양(揮陽), 풍령(風領)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 휘항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호항이란 이마를 두르는 털 머릿수건 같은 것인데 중국의 음으로는 호(護)를 휘(揮)라 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와전되어 휘항이라 하였다. 그 연원이 잘못됨이 이미 오래되었는데 본래 호항이지 휘항은 아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변형되어 사용된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겨울 외출을 위해 누비창의를 입고, 흑립 아래에 휘항을 쓰고 양반계층 남성의 모습을 이번호 뮤진확대경의 풍속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흑립도 때에 따라 다양하게 멋을 부리며 형태가 변하였지만, 다양한 재료를 써서 만들 수 있었던 휘항도 형태나 재료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합니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쓰던 휘항은 머리 윗부분이 트여있고 뒤는 긴 형태가 일반적이었는데, 작은 것은 머리의 뒤쪽과 목까지 오는 정도였으며 큰 것은 어깨, 등을 덮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 턱에서부터 정수리까지를 위해 사용되었던 볼끼를 달아 목덜미와 뺨까지를 싸고, 끈을 목에서 맵니다. 고급의 휘항은 담비가죽으로 만들었으며, 일반적으로는 족제비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모피의 가죽 쪽에는 견이나 비단헝겊을 덧대어 사용했습니다. 품이 넉넉한 한복 안팎에 다양한 소재를 써서 추위를 피할 수 있었겠지만, 고스란히 노출되는 머리와 얼굴, 목은 휘항 같은 소품을 활용하여 추위를 피하였다는 내용을 보니 현대의 남성보다 더욱 멋스러운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 지혜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세화는 새해 첫날 세시풍속의 하나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불행을 예방하고 행운이 깃들기를 소망하는 벽사적(辟邪的)•기복적(祈福的)인 성격을 띱니다.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 세화는 서로 완벽히 같은 의미는 아니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혼용되고 있습니다. 문에 벽사 혹은 기복을 위한 그림을 붙이는 것은 중국 서기전부터 있었던 주술적 관습이 6세기경 새해의 연례행사로 정착되면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해에 외부로부터 집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인 문을 잡귀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되었는데, 궁중으로부터 민간으로 확산되었으며 대문을 가진 집이 이러한 풍습을 지켰습니다. 벽사의 측면에서 세화의 내용은 궁이나 상류층과 민간이 구분되었는데 상류층에서 그려 붙이던 세화는 역귀(疫鬼)를 쫓는 벽사신인 처용(處容)이 조선 초기에 제작되기도 하였지만 주로 당나라 장군인 진숙보(秦叔寶)와 위지공(尉遲恭)에서 유래된 두 장군상을 한 길 즉, 2.4미터~3미터가 넘는 크기로 그려서 붙이고 중문이나 곁대문에는 위정공(魏鄭公)과 종규(鍾馗)가 귀신 잡는 형상을 붙였다고 합니다. 민간에서는 동물 중에서 닭, 호랑이, 해태를 닮은 사자와 개 등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을 그려 붙이기도 했습니다. 기복의 측면에서는 장수를 상징하는 수성(壽星), 선녀나 신선이 가지를 쥐고 학을 탄 모습, 꽃을 들고 사슴을 탄 신선, 용을 탄 신선 그림 등 길상적 성격을 지닌 인물, 화훼, 누각 등을 그렸습니다. 『중종실록(中宗實錄)』 5년(1510) 9월 29일(壬午) 정언 민수천(閔壽千)은 궁중의 공예가 정밀하지 못함을 언급하면서, “세화는 세시에 미리 화사(畵師)로 하여금 각기 화초·인물·누각을 그리게 하고, 그림을 아는 재상에게 명하여 그 우열을 상하 등급으로 매기게 하여 벼슬에 맞게 정하고, 그 그림은 골라서 내용(內用)으로 하고, 나머지는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한다.”고 하였고, 또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도화서(圖畵署)에서 수성(壽星)·선녀(仙女)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하는 것을 이름하여 세화(歲畵)라 한다. 그것으로 송축하는 뜻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신년 초에 도화서(圖畫署)에서 그려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이 이 그림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세화풍습을 지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화는 도화서에서 12월 20일경 진상하였는데, 300장을 그리던 것이 조선 후기에는 600장까지 그려졌다고 전해집니다. 때문에 지나친 세화 제작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여러 가지 제제가 가해져 조선말기까지 폐지되고 부활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민간에서는 세화를 지물포 등에서 구입할 수 있었는데, 매해 새로 붙이기 때문에 전해지는 유물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 중 실제로 남은 그림은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가 가장 많은데, 한 쪽에는 벽사를 위한 호랑이를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오복을 가져다주는 길상의 기능을 하는 용을 붙여 두 가지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세화풍습은 현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의미 있는 그림이 그려진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관련 있는 풍습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번호 유물박사에서는 박쥐문양과 겨울을 나기 위한 방한소품 휘항, 새로운 해의 행운을 위한 세화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서양적인 시각에서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욱 강한 박쥐문양이 어떤 이유로 복을 나타내는 길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점잖고 권위 있어야 했던 양반계층 남성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어떤 소품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새해를 축하하고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은 어떻게 세시풍속이 되었고 또 어떤 것을 내용으로 삼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위의 내용 중 박쥐문양, 세화는 불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바라는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가올 올해 설에 이런 마음을 담아 올해에는 소중한 분들께 전통적인 문양에 마음을 담아 연하장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