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I

‘동양東洋’,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또는 아시아 전역을 가리키는 이 말은 13세기 중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중국 남부의 무역항 광저우(廣州)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섬을 의미했다. 이 단어를 오늘날과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였다. 당시 일본은 유럽 열강을 ‘서양西洋’으로 통칭했고 그것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동양’을 제시했다. 일본은 ‘동양’을 통해 자신들의 전통이 서구의 그것과 동일한 위치에 자리매김 되기를 원했다. 아울러 ‘동양’ 개념 속에는 이 지역에서 중국의 권위를 해체하고 자신들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1920년대까지 동아東亞, 즉 동아시아와 동의어였던 동양은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침략하면서 더 넓은 범위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번 특별전 『‘동양東洋’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는 바로 그 시대의 이 땅에 남은 ‘동양’의 문화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전시는 전시 공간과 그곳에 전시되었던 진열품에 따라 4개 주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주제는 “동아시아의 고대: 조선총독부박물관”이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15년 12월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景福宮)의 전각을 훼철하고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의 시설을 기반으로 개관하였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종합박물관을 지향하는 한편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본의 문화재를 참고품으로 수집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1918년에는 중국에서 직접 진열품을 구입하기도 하였으며, 1923년에는 120여건의 고대 일본 유물을 구입하였다. 중국 문화재 대부분은 한대(漢代)의 것으로 이는 평안남도에서 출토된 ‘낙랑(樂浪)’ 유물과 비교하기 위한 자료였다. 일본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을 설치함으로써 우수한 중국문화가 들어와 한반도의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하였다. 한대의 문화재는 ‘타율적인 조선사’를 강조하기 위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고대 일본의 토기는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토기와 함께 전시되었다. 총독부박물관은 두 지역의 토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과거 두 민족이 매우 친밀한 관계였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두 번째 주제는 “서역 미술: 조선총독부박물관 경복궁 수정전”이다.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일본의 광산재벌 구하라 후사노스케久原房之助(1869~1965)로부터 중앙아시아의 문화재를 기증받았다. 그것은 몇 해 전 교토京都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문주(門主)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1876~1948)가 파견한 탐험대가 수집한 것들이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16년 9월 이 기증품을 경복궁 수정전(修政殿)에서 전시하고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책자 및 사진엽서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조선총독부는 중앙아시아 소장품을 세계적인 문화재로 손꼽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치적(治績)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기증자 구하라는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신으로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와 동향(同鄕)이었다. 구하라 광산은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15년에는 평안남도 진남포(鎭南浦)에 제련소를 건설하는 등 조선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의 기증 이면에는 조선 내에서 사업상 편의를 제공받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 주제는 “불교조각: 이왕가박물관 창경궁 명정전”이다.
이왕가박물관은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으로 1909년 개관했다. 개관 이전 준비 과정부터 진열품을 수집하였으며, 그때부터 중국과 일본의 문화재도 함께 구입했다. 이왕가박물관은 1911년 창경궁(昌慶宮) 언덕에 새로 지은 본관과 함께 명정전明政展, 함인정涵仁亭 등 창경궁의 전각도 전시관으로 활용했다. 명정전에는 1916년 구입한 불비상과 석굴암 모형을 함께 전시했다. 당시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에 비춰 불교미술을 문화 발전의 척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도식을 한국의 역사에 적용하여 조선시대를 문화의 침체기로 바라보았다. 이와 같은 정치적 배경 속에 불상은 박물관의 주요 수집품으로 자리 잡았다.

네 번째 주제는 “일본근대미술: 이왕가미술관 덕수궁 석조전”이다.
구황실의 사무를 담당했던 이왕직(李王職)은 1933년 덕수궁(德壽宮) 개방과 함께 석조전은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당시 일본 거장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석조전에 전시된 일본미술은 일본의 관전(官展), 즉 국가에서 주관한 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이나 수상 작가의 작품이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당시 일본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었으며,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도 심사위원 및 초청작가로 참여했기 때문에 조선의 미술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덕수궁(德壽宮)의 일본미술 전시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조선에 일본미술의 영향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38년 이왕직은 석조전 옆에 신관(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을 지어 이왕가박물관 소장품을 전시하고, ‘이왕가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덕수궁의 일본 미술 전시를 통합하였다. 이로써 이왕가미술관은 ‘옛 조선의 미술’과 ‘당대 일본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두 전시관 사이에 일종의 ‘흐름’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중일전쟁(1937~1945) 이후 이른바 전시 체제로 들어감에 따라 일본과 조선의 미술은 군국주의를 고무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이에 따라 이왕가미술관도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수입하여 전시하였다.

일본은 어떤 이유로 식민지에서 아시아의 문화재를 수집했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맥락에서 관람객과 조우하였을까? 이번 전시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이다. 아시아 문화재 그 자체가 갖는 역사적·예술적 가치는 물론 수집과 전시의 맥락에서 당시의 문화 정책 및 박물관의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글 : 임진아(전시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