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유물박사 교실

뮤진 유물박사 교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곳은 뮤진 사이버 박물관에서 만나보았던 <E-특별전>과 <뮤진 확대경>을 또 다른 시각으로 만나보는 공간입니다. 우리 문화가 지닌 다채로운 매력 속으로 지금 들어가 볼까요?

이번호 뮤진확대경은 말갖춤(馬具) 중 금사와 은사로 표면을 장식한 철제 호주머니형 발걸이(壺鐙)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말을 타는데 있어 양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발명인 발걸이(鐙子) 중에서도 호리병 혹은 박의 모양의 이 발걸이는 그 표면장식이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표면장식에 사용된 기법은 세심한 배려와 간격이 중요한 금속공예기법 입사(入絲)입니다. 그리고 E특별전에서는 우리의 전통 장신구 중 특히 여성장신구 몇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그 중 다양한 방법으로 상징과 바람을 표현한 노리개와 주머니에도 쓰인 매듭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볼 내용이 있습니다. 이번호 유물박사교실에서는 말갖춤과 발걸이, 발걸이의 표면장식의 기법 그리고 노리개의 구성, 주머니와 노리개에 쓰인 매듭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발걸이는 말을 탈 때 말을 제어하기 위해 장착했던 말갖춤(馬具) 중 말을 탄 사람이 말에 오를 때나 말 위에서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안정용(安定用) 마구입니다. 한자어로는 등자(鐙子)로 불리는 발걸이는 유럽에서는 기원전, 동양에서는 중국 주(周)나라 초에 이미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발걸이의 발생에 관련한 이야기 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학설은 중국에서 출토된 말을 탄 형상의 모형인 기마용(騎馬俑)의 왼편에만 묘사된 발걸이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묘사의 말 탄 사람이 발걸이에 발을 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당시의 발걸이는 말을 타고내릴 때만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쌍을 이룬 발걸이는 동진(東晉)시대에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걸이를 처음 사용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적어도 3세기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삼국시대에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된 발걸이는 둥근 원의 형태라서 윤등(輪橙)이라고 합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보이는 가운데가 빈 형태에 발을 넣어 걸치는 부분인 고리부(輪部)와 뮤진확대경에서 언급되었던 자루부(柄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이 모두 말을 탈 때 도움을 받기 위해 한쪽만 사용하지 않고 양쪽 모두에 발걸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쪽 발을 걸쳐 힘을 주면 안정적일 뿐 아니라 움직이는 말 위에서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기마병에게 양손의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발걸이의 등장은 기마 전쟁의 양상에 변화를 주었고, 이것은 세계의 역사에 영향을 끼쳐 세상을 바꾼 100대 발명품에 들 만큼 대단한 일입니다.
발걸이는 말에 오른 사람이 양발로 말의 배를 압박하거나 차서 달리는 속도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또한 양발을 지지해 줌으로써 말 위에서 양 손을 사용해 활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편의는 말 위에서 주된 생활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전투시 기마병의 전투력을 높여주는 매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말갖춤 전체에서 보자면 발걸이가 작은 부분을 차지할 부피이지만, 말을 타고 다양한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입사란 금속기물(金屬器物)의 표면이나 장신구의 표면을 날카로운 작은 정으로 쪼아 다른 금속을 끼워 넣거나 덧씌워 무늬를 만드는 꾸밈법을 뜻합니다. 입사장식은 은(銀)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은사를 덧붙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금(金) 입사로 고급스러움을 더하기도 합니다. 표면을 파고 다른 재료를 넣어 문양을 장식하는 점에서 도자기의 상감기법이나 목공예의 나전칠기와 비슷한 꾸밈법인 입사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정을 이용하여 금속의 표면 무늬를 파낸 홈에 금실, 은실이나 얇은 판을 끼워 넣는 방법으로, ‘끼움입사’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먼저 촘촘히 쪼음질한 금속 표면에 금실과 은실이나 얇은 판을 두드려 박아 넣는 ‘쪼음입사’입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입사공예 유물은 태화(泰和) 4년(369)의 <백제 칠지도七支刀>입니다. 초기 유물에서 보이는 입사는 각종 고리자루칼에 간결한 무늬로 장식되고 있으나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다양한 입사기법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무늬를 넣기에 좋은 쪼음입사식의 은입사 기법을 많이 사용하였고, 각종 생활용품에도 입사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갖가지 무늬에 굵고 가는 선표현이 자유로와 은입사기법이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한복도 시대별로 여러 가지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조선시대의 한복은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져 가슴께에서 맨 옷고름이 치마위로 내려옵니다. 보통 한복의 옷고름은 저고리, 치마와는 다른 색이기 때문에 시선을 끌게 되는데, 노리개는 그러한 옷고름에 좋은 의미가 담긴 상징물을 매 달아 시선을 끌었던 장신구입니다. 왕가, 사대부의 아녀자들은 의례뿐 아니라 평소에도 착용하고, 평민 부녀자들은 결혼 등의 행사에서 착용했습니다. 노리개는 띠돈(帶金) · 패물, 끈(多繪 : 다회) , 매듭 , 술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다회라 불리는 끈은 띠돈과 패물·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매듭 부분이며 띠돈(帶金)은 노리개의 맨 윗부분에 달린 고리로, 옷고름에 달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재료로는 금·은·백옥·비취옥·금패·산호(珊瑚) 등을 주로 사용했으며, 사각형·원형·꽃형·나비형 등의 형태로 만들고 겉면에는 동식물문과 길상문을 새깁니다.
노리개의 중심이 되는 것은 패물인데, 이 패물을 한 개 달면 단작노리개 혹은 외줄노리개라고 하고 세 개의 패물이 한 벌로 구성되면 삼작노리개라 합니다. 패물로는 백옥·청강석 등의 옥석류(玉石類), 산호·진주·호박 등의 보패류(寶貝類)가 사용됩니다. 모양은 동식물형태로 만들어지거나 표주박·장구 등 생활주변에서 얻은 형태, 또 불수(佛手)·염주(念珠) 등의 형태로 만듭니다. 경우에 따라 향주머니나 향갑·장도(粧刀) 등의 용도가 있는 패물을 달기도 합니다.
위아래에는 패물을 돋보이도록 하는 매듭이 있고, 술의 크기는 노리개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매듭과 술은 각각 저고리와 치마의 비례와 같은 정도로 만들어 더욱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붉은 색, 남색, 황색을 기본으로 분홍·연두·보라·자주·옥색 등을 씁니다.
계층을 불문하고 여성들에게 애용되었던 노리개는 친정, 시가의 어른으로부터 예물로 받아 자녀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전해지는 가보로 여겨졌고 길상의 의미가 있는 모양을 넣어 현실에 대한 다양한 바람을 담았던 장신구였습니다.

매듭이란 여러 올의 실로 짠 끈목을 사용하여 매고 조이며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방법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을 뜻합니다. 매듭은 용도에 따라서 실용적인 매듭과 장식적인 매듭으로 구분합니다. 실용적인 매듭은 흔히 볼 수 있는 종이가방 손잡이의 끈처럼 한쪽 끝에 매듭을 지을 때, 두 개의 끈을 맞이을 때 주로 사용되며 장식 매듭은 궁중예식·실내장식·국악기 장식·노리개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애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매듭은 입체조직으로서 명주실을 소재로 하여 색감이나 조형미에서 그 특이성을 찾을 수 있어서 주로 면사(綿絲)를 소재로 하는 평면조직인 서양 매듭과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의 전통매듭은 올 여러 개로 끈목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수십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작은 실수도 없어야 완성도가 높은 끈목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끈목으로 우리의 옛 무늬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나갑니다.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이 매듭은 수요가 많아 조선시대에는 《대전회통(大典會通)》《대동여지비고(大東輿地備攷)》 등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전회통(大典會通)》 공전(工典)에는 끈을 치는 장인(匠人)을 다회장(多繪匠)이라 쓰고 있습니다. 이 장인들이 크고 더욱 중요한 인물이나 행사, 물품을 위한 장식으로 필요한 매듭을 만들었다면, 상궁들은 궁내부의 수요에 따라 소형의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민가에서도 매듭을 찾는 이가 많아 서울 시구문 일대는 실, 끈, 매듭의 본고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매듭은 앞뒤가 같으며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수직으로 연속됩니다. 또한 아무리 복잡한 매듭이라도 중심에서 시작되어서 중심에서 끝이 납니다. 이러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매듭에는 한국 여성의 지혜로움과 정교함이 녹아있어 미감(美感)이 뛰어납니다. 매듭은 맺은 모양에 따라 도래매듭·연봉매듭·생쪽매듭·국화매듭·나비매듭 등 30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이번 유물박사교실에서는 뮤진확대경의 호등(壺鐙)과 같은 발걸이와 표면꾸밈 기법인 입사, 여성장신구 노리개의 구성요소와 매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현재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만으로 그 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에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많은 공예품을 대량생산되는 공정으로 만들어내고 사용하지만 그것이 실용화 된 데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이 기초가 되었다는 것, 아름다움에도 기능이 함께하도록 하는 슬기로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