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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ZINE

50호


기마병 철제금은입사호등

높은 말의 등을 탈 때는 누군가 들어 올려주지 않는 한 먼저 발을 얹어 올라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발걸이가 필요 합니다. 그래서 처음 발견된 발걸이는 한쪽 편에만 있었고 타고 난 후 발을 걸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에 양쪽 발걸이로 발전되었을 때 처음에는 고리형태로 발을 얹을 수 있는 단순한 형태였다가 발을 넣는 앞부분을 감싸는 형태도 생겨났습니다.
발걸이는 한자로 등자(鐙子)라고 하며 고리형 발걸이는 윤등 (輪鐙), 고리형에 덮개 혹은 주머니가 부착된 형태의 발걸이 는 호등이라는 명칭을 씁니다. 호등은 주머니부분(壺部)의 모양에 따라 다시 앞코의 형태가 강조된 삼각추형(三角錐形), 표주박형태로 둥근 모양에 깊이가 있는 표자형(瓢子形) 호등 으로 구분됩니다.

호등의 구조는 크게 고리부와 자루부로 나뉩니다. 발을 끼워 넣는 부분을 고리부, 그 위로 끝까지가 자루부입니다. 자루부 의 상단 끝을 자루 끝(柄頭)이라고 하는데 자루부 바로 아래 에 가죽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가죽구멍이 있습니다. 고리부 의 아래쪽, 디딘 발이 닿는 부위를 답수부(踏水部)라고 합니다.
소개하는 <철제금은입사호등>은 구조의 측면에서 다른 호등 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특징을 보여 줍니다. 일단 다른 호등과 비교했을 때 크기가 큽니다. 입구 의 크기와 깊이를 보면 특히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 니다. 그리고 겉면에서 보았을 때 병부에서 호주머니 표면 으로 내려오는 돌대는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그 부위의 꾸밈은 전혀 없어 다른 호등에서 돌대를 강조하여 꾸미는 것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입구 부위 겉면의 섬세한 꾸밈을 고려해 볼 때 의도된 절제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곡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발등이나 발바닥부분의 형태를 고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면 전체에는 금은 입사의 기법으로 꾸밈을 주었는데, 입구 외면의 장식을 보면, 세 개 의 부분으로 밧줄꼬임과 같은 테두리를 둘렀고, 박락이 많아 형태를 알 수 없기는 하지만 테두리에 이어 자루부까지 금은입사로 장식하였습니다. 가죽끈을 다는 가죽구멍의 아래 에도 장식을 달아 이 호등이 장식에 얼마나 중심을 두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호등은 장식에도 무척 신경썼지만 사용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띕니다. 발걸이를 매다는 가죽구멍은 자루의 두께를 고려해서인지 구멍의 내부를 덧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발의 안쪽은 가죽구멍 주변에 금속을 덧대고 곡선 형태로 두른 후 반복적으로 누르는 방법으로 꾸몄고 바깥쪽 자루에는 같은 형식의 꾸밈이되 가죽구멍과 상관없이 금속 을 부착하였습니다. 현재 박락과 손상이 있어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보기보다 훨씬 표면 장식이 많았음을 짐작할 만합니다.
이 호등의 발을 넣는 입구를 보면 자루에서 연결되어 약간 위로 당겨진 타원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발등에서 발목 으로 이어지는 인체의 모양을 생각해 볼 때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은 발을 딛는 부위인 답수부에서도 드러납니다. 윤등을 쓸 때는 고리에 거는 발의 안정감을 도모하기 위하여 발을 딛는 부위에 못을 2~3개 박아 만들었는데, 이것이 호등에 오면서 는 입구 바깥으로 조금 튀어나와 발을 받치도록 고안되었 습니다. 그리고 이 철제금은입사호등은 다른 호등이 발이 들어가는 부분이 짧기 때문에 발이 딛는 부위가 호주머니의 발바닥모양과 직선이었던데 반하여 살짝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용자의 발꿈치가 자연스럽게 쳐질 것을 고려한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발을 얹었을 때 아래로 향하면서도 미끄러 지지 않도록 격자로 높낮이의 변화를 준 점에서 역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호등의 외부표면은 입사(入絲)라는 기법으로 꾸민 상서 로운 신수(神獸)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주머니형태의 외부 좌,우측을 각각 꾸미되 말의 몸 쪽으로 닿는 부분에는 용을, 그 바깥에는 기린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린은 수컷을 ‘기(麒)’라 하고 암컷을 ‘린(麟)’이라 하고 기다란 뿔이 하나 있는 외뿔잡이 동물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과 비슷한 발굽과 갈기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린의 형태를 다시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한 학술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기린은 사슴형(鹿形), 말형(馬形), 용형(龍形) 으로 구분되며 이 발걸이는 그 중 말과 용형에 해당됩니다.
사슴 형태의 기린은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를 가졌으며 중국 의 경우 주(周)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제작 연대가 분명 한 예는 한(漢)대부터입니다. 말 형태의 기린은 삼국시대 부터 말과 사슴의 혼합형으로 나타나다가 점차 말형으로 변하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완전한 말의 모습이 됩니다. 상서 로운 징조나 성군(聖君)이 나면 출현한다는 점에서 천마(天馬)의 상징과도 닮았지만 모습도 매우 흡사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구름과도 같은 무늬들이 가득하고 4잎의 꽃이나 반복 된 원무의 등의 형태가 있어 환상적이며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용 형태의 기린은 초기엔 사자의 몸에 용의 비늘을 그려 넣었 는데, 이후 용에 사슴이나 말, 사자를 결합하는 등으로 변화 하다가 후대로 갈수록 몸체는 완전히 용과 비슷하게 됩니다. 이 발걸이의 용은 바깥쪽 기린이 면을 입사의 방법으로 채운 데 반해 선 위주로 형태가 구성되어 있으며 표면 철의 부식이 심하고 흙탕물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말갖춤인 다래에 지속 적으로 닿았기 때문에 표면이 많이 닳았습니다. 이로보아 이 호등은 무덤 부장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린과 용이 신성시되어야 하는 것, 상서로운 일 등을 나타내는 상징을 가진 점을 볼 때 이 호등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나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닥가닥의 금실, 은실로 면 전체를 꾸며 어두운 철제 배경에서 더욱 돋보이도록 했고, 두 색의 조화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표면에 생동감을 부여했습니다. 호등 이 말을 탈 때 안정감을 주기 위한 용도임에도 이 화면 자체로 하나의 공예품으로 볼 수 있을만큼 그 표현이 훌륭합니다.

이상으로 살펴본 <철제금은입사호등>은 더 깊이 안락하게 발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발등의 형태 나 미끄러짐을 고려한 모양에서 더욱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표면의 신성한 상상의 동물, 기린과 용을 통해 사용자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고 금은입사로 화려하 면서도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표현하였습니다. 말갖춤에는 많은 구성품들이 있으나 이 호등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정성과 배려가 담기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호등뿐 아니라 기능을 가진 우리나라의 수많은 공예품에는 그 물품의 가치 를 더하는 많은 꾸밈이 있습니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유물의 꾸밈에서 그 모습의 아름다움 너머 에 있는 세심한 배려도 함께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