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복식과 장식구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분, 성별, 상황, 행사에서의 역할 등에 맞추어 다양한 형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꾸밈을 위한 장신구에도 무척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외적으로 아름답도록 다양한 재질과 무늬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몸을 보호하거나 향기를 내는 등의 기능을 가지기도 하는 우리의 전통장신구는 꾸밈의 역할은 물론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공예작품이 됩니다. 특히 여성은 긴 머리를 다양한 모양으로 틀어 올려 다양한 장신구로 고정하기도 하고 가슴 높이에서 매어 떨어지는 옷고름과 함께 시선을 끄는 노리개, 주머니 등을 다양한 양식으로 만들어 꾸미곤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꾸밈이 과한 것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만 합니다. 이번호 뮤진에서는 이렇듯 한복 못지않은 관심의 대상이었고 우리 전통복식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장신구들로 E-특별전을 진행합니다.
이 비녀는 금동봉황잠(金銅鳳凰簪)이라는 명칭을 지니고 있습니다. 봉황은 예로부터 용, 기린, 현무와 함께 신성한 4가지 상상의 동물에 속합니다. 귀하게 여길만한 많은 것들에는 봉(鳳)이라는 글자를 앞에 붙여 격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을 만큼 봉황장식은 그 자체로 고귀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봉황은 군주, 왕가의 상징으로 쓰였는데, 공주가 혼례에서 갖추는 차림새 중 금박에 봉황무늬를 새긴 띠를 봉대(鳳帶)라 했고 비녀 머리에 봉황을 새긴 것을 봉잠이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비녀는 재질, 머리장식을 포함하여 이름을 짓습니다.
잠(簪)이라는 한자는 비녀를 뜻하는 다른 한자 채(釵)와는 모양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잠은 꽂는 부분이 한 가닥, 채는 두 가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정갈하게 틀어 올린 쪽진 머리를 가로지르도록 꽂는 것을 비녀의 일반적인 사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비녀가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머리 형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쪽진 머리와는 다른 모양으로, 세로로 꽂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녀는 머리를 단단히 고정하는 용도에 장식성을 더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절이나 긍지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비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을 표현하는 장신구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허난설헌
(許蘭雪軒)이 지은 <효최국보체(效崔國輔體)> 삼수 중 제 1 수를 보면 기혼자가 되며 비녀를 꽂는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여성이 저고리 안쪽에서 칼을 꺼내어 자신을 방어하거나 자결하는 장면들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곤 합니다. 그 때 화면상에 보이는 칼을 보통 ‘은장도(銀粧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사용하는 칼은 ‘장도(粧刀)’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장도는 상아, 나무, 산호, 은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데, 그 중 은으로 만든 것만 은장도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장도는 겉의 형태를 기준으로 원통형, 4각형, 8각형, 을(乙)자형, 첨자(籤子)형으로 나눌 수 있고, 겉의 표면에 꾸밈이 있는 장도를 ‘갖은도’, 꾸밈없이 매끈한 장도를 ‘맞배기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은제 산호장식 장도라는 이름의 이 장도는 ‘을자형 갖은 은장도’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은장도의 을자형 양쪽 끝의 곡선은 다른 을자형 장도에 비해 곡선이 더욱 둥글려져있어 부드러운 인상을 줍니다. 그 부드러운 곡선의 마무리로 안쪽의 작은 곡면에는 다시 작고 둥근 산호가 물려있습니다. 칼집과 칼자루의 연결부위에도 붉은 산호가 자리 잡아 전체의 균형감을 잡아주면서 중심의 꽃과 잎 장식의 푸른색과 대조를 이루어 꾸밈에 강세를 더해 줍니다. 칼자루와 칼집 전체의 표면은 작은 구슬무늬와 연꽃넝쿨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한층 아름답게 보입니다.
장도를 노리개로 옷고름에 찬 것은 패도(佩刀), 주머니 속에 지닌 것은 낭도(囊刀)라 합니다.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은장도라면 옷고름과 함께 드러나도록 장도노리개로 달았을 법 합니다. 그러나 분명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라는 책에서 임진왜란 당시 위기에 처했을 때 자결하거나 상대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어 노리개처럼 달았더라도 장도의 기능을 하였습니다.
한복과 같은 전통의상에서는 주머니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작은 소지품이라도 품고 다니기 위해 옛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주머니를 달고 다녔습니다. 누구나 지니고 다녔던 만큼 주머니에도 여러 형태가 있고 꾸미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모양을 기준으로 보자면 가장자리가 각지고 아래 양쪽이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귀주머니, 장방형 주머니의 입구부분을 뒤로 젖힌 자라줌치 그리고 이 두루주머니가 있습니다. 두루주머니는 엽낭, 염낭, 낭 등으로 불렸는데, 주머니 입구의 끈을 양쪽으로 당기면 입구가 오므려져 두루뭉술한 형태가 되는 주머니입니다. 이 주머니는 오방정색 즉, 검정색, 파랑색, 붉은색, 흰색 그 가운데 다소 옅긴 하지만 노란색을 사용한 오방낭입니다. 그리고 각 색상의 영역에는 해 ·산 ·물 ·돌 ·소나무 ·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있어 자세히 볼수록 탄성을 자아냅니다. 각 천의 공간을 잘 활용한 도안 중 아래의 빨간색, 파란색 부분은 서로 마주보고 같은 형태를 만들되 색의 변화를 준 감각적인 부분이 놀랍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구의 끈과 매듭, 술까지 색배합과 이 주머니를 만드는 데 든 정성이 더해 어느 누구에게든 내어 보이고 싶은 최고의 장신구역할을 했을 듯 합니다.
한복의 옷고름에 노리개를 단 모습은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노리개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신라시대 허리띠에는 요패(腰佩), 고려시대 귀부인들은 금방울, 향이 나는 비단주머니를 달았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런 꾸밈이 조선시대에 와서 패물을 엮어 옷고름에 다는 형식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노리개는 어떤 패물을 달았느냐, 몇 개의 패물이 달렸느냐에 따라 그 화려함과 장식의 목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 노리개는 향갑(香匣)을 단 향갑노리개로, 향주머니(香囊)와 기능상으로는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로부터 향은 향기를 내는 것으로 현대의 향수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벌레, 뱀 등을 물리치는 역할, 악귀로부터 보호해주는 부적 역할까지 했습니다. 향을 주머니에 가루로 만들어 담거나 조그맣게 잘라서 넣어 향주머니를 채웠는데,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향이 났습니다. 이 백옥 향갑노리개는 향을 주머니가 아닌 옥, 칠보 등으로 여닫을 수 있게 만든 갑에 매듭과 술 등을 연결해 노리개의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위아래 매듭은 국화매듭이며, 부분적으로 금사를 사용하여 세심하게 세부를 장식했습니다. 향갑은 옥을 뚫어 조각(透彫)했기 때문에 옷고름에 달아 움직일 때 마다 그 향이 번졌을 것입니다. 보이는 것에 더하여 기분과 인상까지 아름답게 꾸며주는 멋진 장신구입니다.
장신구는 외양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합니다. 그러나 살펴볼수록 우리의 전통 장신구는 그 아름다움 뿐 아니라 각각의 상징과 기능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상징과 착용자의 마음가짐, 기능을 담았으면서도 함께하는 복식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현대의 장신구도 늘 고민하고 추구하는 지점입니다. 선조들의 실용과 미에 대한 균형 있는 감각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며, 많은 디자인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요소에 더욱 큰 관심과 탐구가 필요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