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계절에 따라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밤이 일찍 찾아오는 등의 계절 변화에 따라 감성적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읽기에 좋은 계절에 편히 책을 펼쳐들면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먼 과거부터 누구에게나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말과 글이 달랐던 때에는 글을 익히기가 너무 어려워 누구나 책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내용을 듣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다 15세기 한글이 반포되고 차츰 실용화되어 한글 설명을 보면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이야기를 글로 써서 사람들과 나누어 읽으면서 한글이 크게 유행을 하게 됩니다. 필사를 하고, 찍어내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도 기록으로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호 뮤진에서는 오는 10월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 제작된, 한글이야기를 담은 유물들로 E-특별전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한글이 창제되고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각종 번역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글을 언(諺) 또는 언문(諺文)이라 불렀는데 한문으로 된 글을 한글로 번역하거나 번역된 책에는 ‘언해(諺解)’라는 명칭을 붙여 썼습니다. 집현전과 언문청을 중심으로 경전과 문학서들이 활발히 번역되었는데, 그 중 우리나라 문학사상 가장 먼저 번역된 시집이 바로 《분류두공부시언해》입니다. 이 책은 다른 이름으로 《두시언해(杜詩諺解)》라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시성(詩聖)이라고도 불렸던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712~770)의 시 1647편과 다른 사람의 시 16편에 주석을 달고 한글로 풀이한 이 책은 처음 간행한 초간본(初刊本)과 같은 내용을 재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이 있습니다.
초간은 1443년(세종 25년) 4월에 만들기 시작한 지 38년후인 1481년(성종 12년)에 비로소 간행되었는데 왕명으로 진행된 사업이었으며 두보의 시에 통달한 사람은 신분과 상관없이 참여했을 정도로 대대적인 번역사업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중간본으로, 책 뒤편의 판각 기록을 보면 초간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작시기로 보았을 때 초간본과 150여 년의 차이가 있어, 그 기간의 언어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 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풍부한 어휘와 옛 문체 등을 통해 중세 국어학 연구와 한시 연구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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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조선중기 최초의 한글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전하는 《홍길동전》은 17세기 실존인물이 언급되는 점 등으로 보아 후대에 추가된 것이 확실합니다.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역과 인쇄 방식에 따른 다양한 이본(異本)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유행했던 당시에는 소설의 해로움을 이야기하며 모두 불태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문인이었던 이식(李植)의 시문집인 ≪택당집 澤堂集≫의 별집(別集) 권15 <산록 (散錄)>에는 《홍길동전》이 인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해 그만큼 그 소설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특히 홍길동전은 재주와 학식이 뛰어나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천대받아야 했던 서자의 입장을 담았고,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응징하는 내용을 영웅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이본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지어진데다 16세기 이후의 농민봉기에 대해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소설이었기에 더더욱 민중들에게 사랑받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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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歌辭)는 사회적 지위와 내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와 마음을 두루 표현하는 글로, 한글 창제 이후 우리말이 지니는 아름다운 어감과 묘미를 살려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한글 가사인 이 《두껍전》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두꺼비설화를 기반으로 한 서민가사이며 직접 붓으로 옮겨 쓴 필사본입니다.
《두껍전》의 내용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러 짐승들이 모여 윗자리 앉기 다툼을 하는 이야기와 인간세상에 태어난 신선이 두꺼비의 탈을 쓰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형태의 이 필사본은 후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식이 없던 양씨 성의 노인이 낚시를 하던 중 두꺼비를 만나 수양아들을 삼게 되고 그 두꺼비가 쌀과 보물을 솟아나게 합니다. 주인공인 두꺼비는 결혼을 하게 되지만 첫날 아내가 자결하려하자 두꺼비 탈을 벗어 보이고 부부로 살게 됩니다. 단지 외모가 흉하다는 이유만으로 비웃음을 사면서도 여러 신비한 능력을 내보였습니다. 결국 자신을 비웃던 동서들을 응징한 후 아내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은 외모상의 열등함, 출신의 천함이 타고난 외모와 출신을 이기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미천한 계층으로 분류되어버린 사람들이 현실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서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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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527호인 김홍도(金弘道)의 《단원풍속도첩》의 〈담배썰기〉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보입니다. 한 손에는 부채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책을 내려 보고 있는 인물과 나머지 세 사람의 입매가 모두 즐거워 보입니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보이는 장면이 이 그림의 주제는 아니지만 그러한 상황이 당시의 풍속임은 틀림없는 듯합니다. 이 풍속도가 제작된 시기와 크게 차이가 없는 시기인 정조14년(1790년) 8월 10일 《정조실록(正祖實錄)》에는 왕이 살인사건을 판결하면서 종로거리의 담배가게에서 소설책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실의에 빠지는 대목에서 어떤 한 남자가 담배 써는 칼로 책 읽는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조선 후기에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왕명으로 지은 시문집 《아정유고(雅亭遺稿)》의 〈은애전(銀愛傳)〉에도 실렸습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소설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기를 즐겨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기수(傳奇叟), 독사인(讀史人)으로 불린 이야기꾼들이 책읽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당시 한글로 쓴 소설이 유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읽기 쉬운 한글로 지은 것을 손으로 옮겨 쓰거나 찍어 인쇄한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 맛깔나게 해주는 이야기를 듣기 즐겼던 것입니다. 그 모습은 각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도 함께 모여 경기를 보고, 영화를 보며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 있어도 글이 달라 뜻을 나누지 못하고 마음을 글로 전하기가 어려웠던 시기를 벗어나 말하는 그대로 글을 써 규칙만 알면 되는 한글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문학, 사회문제, 풍속이 누구나 보고 읽고 즐길 수 있도록 한글로 변환되어 나타났습니다. 누가, 언제,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우리의 한글, 사용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것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반포된 혁신적인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개관하는 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 한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만날 수 있는 전시 관람을 하는 것도 가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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