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만남에 앞서

첫만남

가회동을 가면 기와를 얹은 건축물들이 많아 자연히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편안함을 닮은 골목어귀의 시원스레 창이 나있는 사무실로 들어서니, 잠시 후 편안하면서도 반가운 웃음으로 건축가 조정구선생님이 맞아주신다. 사무실의 곳곳에는 한옥형태의 축소모형들이 자리 잡고 있어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한옥만을 생각하는 한옥전문가는 아니라고 멋쩍게 말씀하시면서도 한옥에 대한 이야기에 따뜻한 시선과 열의를 표현해주신 조정구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우리의 삶의 기반이 되는 집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자리가 되었다.

첫 질문으로 어떤 요소가 한옥을 가장 한옥답게 하는지 생각하시는 바를 여쭤보았다. 조정구 선생님은 구조를 중심으로 생각하느냐 철학적인 지점을 중심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요소를 한옥을 정의하는 기준삼을 수 있다고 하셨다. 다만 본인은 다른 요소 보다는 마당을 먼저 생각하고 작업하신다고 하셨다 한옥요소가 있고 마당이 없는 집과 한옥요소가 보이지 않아도 마당이 있는 집 중 꼽으라면 후자가 더욱 한옥답다고 할 만큼 마당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특히 우리 옛집에서의 마당은 관계와 소통의 중심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대 도시형한옥으로 변화할 때 다른 구조들이 축소되었어도 마당을 품은 작은 ㅁ, ㄴ자 구조가 남았다고 말씀하셨다.
꾸며놓고 바라보는 마당이 아니라 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열린 하늘을 즐길 수 있는 소통의 장소로서의 마당이 중요하다. 수돗가를 놓든 좋아하는 취미생활 대상을 놓든 집에 사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일상을 지내는 ‘쓰는 마당’이 한옥의 정체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병원을 전통 목구조의 한옥으로 건축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정리해두신 이미지를 보며 이야기를 들으니 한눈에도 친근하고 편히 느껴져서 가서 거닐어보고 싶을 만큼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그 건물의 용도가 병원이라니, 정말 병원이라면 떠오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친숙함이 가득한 건물이었다. 한국의 건축은 긴장을 완화하고 따뜻함을 느끼게 하며 특히 목구조의 힘과 따뜻함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전에는 대기시간이 15분만 지나도 항의가 있었는데 한옥형태로 바뀌고 나서 그 시간이 4배가 길어진 한 시간이 지나가도 환자가 화내고 채근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목구조의 장점은 선생님께서 구성하고 실현한 9미터폭의 진관사(津寬寺) 건물에서도 드러난다. 500여명을 수용할 정도의 이 어마어마한 크기는 충분히 압도적인 태도로 방문자들 앞에 버티고 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만큼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문을 열면 주변의 자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부 나무구조가 환경과의 어울림을 쉽게 하고 크기의 위압감을 중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전통 목구조 건물의 장점이라는 선생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구 선생님은 운영하시는 guga도시건축의 직원들과 답사를 다니고 그것을 꼼꼼히 기록한다. ‘이어붙이는 답사’라고 이름붙인 그 답사는 함께 정한 지역을 답사하면, 다음에 그 지역과 접한 지역을 돌아보며 이어가는 형식이다. 이는 ‘삶의 형상을 찾아서’라는 모토에 충실하기 위한 근본이 되는 작업이다. 답사의 과정에서 만나는 지역주민과의 교류는 환경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 한옥만을 찾아보거나 목적을 가지고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캔하듯 지역을 훑으며 건축적 시선을 담는다.
바꾸고 새 것을 추구하기보다 고치고 보완해서 쓰는 쪽을 선호하는 선생님은 지역의 집들을 고쳐서 쓰는 대안적인 마을개발로 유명한 장수마을 프로젝트에도 6년간 참여하셨다. 이 마을역시 수차례의 답사 끝에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이후 성곽길 정비차원에서 흥미롭던 마을이 사라진 것을 보고 일방적인 재개발이 아니라 대안적인 마을개발을 해 나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집이 지역의 생체조직과 같아서 무조건 들어내고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처럼 고쳐가며 쓰는 것이 좋다고 여기신다. 그 생각을 반영하여 장수마을 주민들의 생활편의 개선과 지역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런 활동들은 마치 선생님의 답사처럼 ‘시간의 켜를 보여주는 나이테를 누빈 기록’이 되어 지역의 생체조직을 기록한 의료차트, 다음의 개선을 위한 바이탈기록이 되어간다.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올 때는 건물을 새로 지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의 건물과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그 건물이 이미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존중한다. 서구적이거나 일본식 건축물이 함께 있다면 한국적인 요소의 건물을 마당을 중심으로 구획하고 다른 양식의 건물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필요하다면 서양건축의 볼륨감과 건물용도에 맞는 지점을 과감히 수용하는 것이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건축구조물의 경우 산세를 따라 짓는데, 주변 환경 중 가장 경관이 좋은 면을 향한다. 현재는 세 개의 일자형태 건물이 한 중심에 맞물린 모습으로 각각 다른 자연환경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산의 곡면을 따라 각도를 달리하며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구조로 원하는 환경에 맞추어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다. 마음을 담은 구조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증식해간다는 특징은 앞서 집은 지역의 생체조직이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한옥이 가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생님은 선암사(仙巖寺, 사적 제507호)를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로 꼽았다. 선암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진입로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람배치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비탈진 산에 축대를 쌓아가며 20여개의 동을 형성했고, 그 배치가 기존의 절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선암사의 전각구조는 유독 ㅁ자형이 많다. 안마당 쪽에 넓은 대청이 있어 사찰의 전각임에도 민가와 비슷하다는 점이 다른 사찰의 건물구조와 구별되는 점이다. 개축이나 증축을 하기보다 필요한 부분들을 보수하며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연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이 남다르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로 꼽으신 것은 백자(白磁)이다. 그 이유는 지금은 문화유산으로 귀하게만 여기지만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담백함을 즐겨 쓰고 사랑했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가만히 보면 이 두 문화재는 모두 조정구 선생님의 건축을 대하는 자세와 같은 흐름을 가진다. 마당을 중시하고, 고쳐 유지하고, 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즐겨 쓰는 건축에 대한 애정과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거주하는 곳을 한옥이라 말한다면, 지금 우리들에게는 정말 마당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배척하기보다는 열어주고, 모셔두기보다는 함께 쓰고, 새로 짓기보다는 고쳐 쓰는 우리의 것을 쉽게 놓지 않는 태도가 바로 건축가 조정구 선생님의 건축이 표방하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보편적인 삶과 가까운 건축을 하고 싶다하시면서 우리시대의 집을 만드는 것을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그 마음을 따라, 개인, 가족, 골목, 지역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멋진 집들이 앞으로 건축가 조정구 선생님을 통하여 더욱 많이 지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