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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ZINE

50호


뒤로 다소 흐리게 능라도가 보이는 부벽루는 짙고 위풍당당하게 화면의 전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물 안에 연회의 주인공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평안감사가 앉아있고 좌우로는 기생과 보안을 담당하고 있는 듯 칼을 차거나 활을 든 관졸, 무인들과 초대받아 상석(上席)에 가장 가까이 앉은 선비들, 좋은 집안 자제들일 것이 분명한 아직 상투를 틀지 않은 소년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평안감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헌반도(獻蟠桃)를 추고 있습니다. 헌선도 라고도 불리는 이 춤은 본디 왕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왕모(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천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복숭아인 천세영도(千歲靈桃)를 헌상(獻上)하는 내용인데, 이것이 지방이나 고위관직의 도임축하연에서 행해졌다는 것은 그의 부귀와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다른 춤에 비해 더욱 직접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담은 춤이라 할 수 있지요. 그보다 뒤로는 처용무(處容舞), 포구락(抛毬樂), 검무(劍舞), 무고(舞鼓)를 추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실제로는 이 춤들을 모두 한꺼번에 추게 하고 감상하지는 않았겠지요. 가장 멀리 보이는 6명의 악사와 연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타악기인 박(拍)을 든 악사가 연주하는 하나의 음악으로 춤을 추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 부벽루연회도의 춤은 지난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평양정재-부벽루 연회>라는 제목으로 재연되어 공연이 될 정도로 고증의 근거로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재(呈才)’라 불리는 연회에서 추는 춤에 대해 매우 중요도가 높다하니, 이 부벽루연회도가 얼마나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되었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평안감사와 마주하고 있는 맨 끝의 악사 좌우로는 기생들이 많았던 평양답게 기생들이 열지어 앉아있고 그를 감싼 외부로 대와 깃발을 든 관졸 등이 도열하고 공간을 철저히 구분하고있습니다. 그 바깥쪽의 인물들은 단속하는 관졸들 사이사이로 공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멀찍이 나무아래 앉아있거나 나무에 오른 사람들, 이미 취기가 가득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옷매무새가 흩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연회장에 술이 당도하지도 않았건만 어디서 저리도 취한 걸까했더니 저 뒤편에는 이미 술자리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연회의 부차적인 요소들이 작게 여기저기 포진해 있습니다. 부벽루의 오른편으로 난 내리막길을 보니 개다리소반, 교자상에 잔뜩 얹은 음식과 술이 오고 있으며, 이 모습을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음식상 가까이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곳곳에는 아마도 엿장수쯤 되는 사람들이 좋은 길목을 차지하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등에 손을 얹고 지팡이를 짚은 노파도 계단을 오르며 이 행사를 보려고 하지요. 아직 춤추는 기생들을 쳐다보는 사람과 일행인 듯한데 돌아서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시끌벅적하게 열리는 행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 바깥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더 열심히 보고 즐기려는 사람과 이렇게나 보기 어렵고 또 짐작할만한 내용이라면 하던 일을 마저 하러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그림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우리는 여전합니다. 이 연회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우리는 더 지금의 우리 같습니다.

이제 그림의 중심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서 자칫 그 의미를 축소해버리기 쉬운 화면의 외곽에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연회를 바라보거나 이제 막 돌아선 구경꾼들의 바깥에는 연회와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있는 인물들이 보입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은 인물들이 연회와 상관없는 시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소소한 다툼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심히 그 모습을 보는 사람과 외면하는 사람, 말리거나 혼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 군상의 모습에 대한 관심 그리고 묘사력이 공존하기에 가능한 세부들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화면의 여기저기에는 마부와 가마꾼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그들의 행동이나 시선에서 다시 고되어지기 전에 쉬는 모습, 여기저기서 모인 가마꾼들끼리 담소를 주고받거나 잠시 말을 세워두고 조금 멀찍이 앉아 쉬는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연회는 그들에게 기운을 쓰고 끝날 때가지 대기해야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 부벽루의 연회는 그저 먼 이야기일 뿐입니다. 어떤 평안감사가 온다하더라도 각자의 일상이 달라질 리 없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자신이 늘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낚시질하고 나룻배에 손님을 태우고 소소한 뱃놀이나 돈벌이를 하는 어부들도 보이고 능라도에서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쟁기질하는 모습이 배경인 듯하면서도 존재감 있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색은 화려하지 않게 표현되었지만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습니다.

<연광정연회도>는 보다 생활에 밀접한 환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부의 작은 연못을 포함하는 부분이 연회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고, 화면 좌우측 말단은 거리와 가옥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연회장인 연광정내부는 <부벽루연회도>나 <월야선유도>에서 보였던 배치와 유사하며 방향만 다소 다른 모습입니다. 평안감사의 정면으로 초입에 여섯 명의 악공이 자리 잡고 그 앞으로는 두 기녀가 춤을 추고 있으며 곧 사자춤이 진행될 예정으로 보입니다. 잡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가 있는 이 사자춤은 평안감사부임이 마을의 평안을 가져오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를 담은 하나의 유희일 테지요. 아래에는 다음의 공연이 줄지어 대기 중입니다. 작은 연못의 둘레로는 호기심 어린 모양새로 시선을 들어 연광정 내부를 바라보는 인물들이 열 지어 웅성이는 모습부터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까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벽루는 연회의 장소와 평안감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데 반하여 측변을 보여주고 있는 연광정연회도는 볼수록 연회자체보다 주변에 눈이 갑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 아래쪽에서는 이미 포졸들이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 지점을 기준으로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질렀을 때 오른편에는 다시 이 연회와 관계없는 듯이 일상을 지내는 백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머리에 양동이를 인 아낙들, 물지게를 지고 대동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곳이 대동강변이기 때문일까요?

지난 호에 이어 살펴본 <평양감사향연도>의 세 작품은 김홍도(金弘道)의 작품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아마도 연회의 세세한 부분, 인물표현에 작가의 역량이 표현되어서이기도 하겠으나 백성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화려한 춤을 추고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연회에 집중하기도 하겠으나, 하루하루를 변함없이 살아내야 하는 백성들이 분명히 연회장 주변과 너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화면은 이 두 표현이 대비를 이룹니다. 형식과 주제에 맞는 내용이 분명히 중심에 있으나 작가 본연의 시선까지 담아낸 평양감사향연도를 향연 외의 모습까지 찬찬히 한 번 살펴주세요. 시간을 초월한 친근함이 여기저기에서 시선을 기다립니다.